뮌헨=정석범 기자
뮌헨=정석범 기자
뮌헨 지도를 펼쳐보면 도시 오른쪽의 거대한 녹지 공간에 입을 딱 벌리게 된다. 도시를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4㎢가 넘는 이 엄청난 규모의 영국식 정원(자연미를 강조한 정원)은 18세기에 바바리아 왕실 정원을 대대적으로 확장한 것이다.

뮌헨 시민들의 약속 장소로 유명한 이 정원은 너무나 넓어 한 번 길을 잘못 들면 빠져나오기 어렵다. 정원의 백미는 뭐니 뭐니 해도 바바리아 선제후가 거주하던 레지덴츠 궁전 옆의 호프가르텐. 이 사각형의 정원 한가운데에는 사냥의 여신 다이아나를 모신 원형의 아름다운 석조건물이 서 있다. 방사상으로 뻗쳐 나간 잔디밭에는 사시사철 울긋불긋 제철 꽃들이 만발해 방문자의 경탄을 자아낸다.

그러나 이 아름다운 정원은 2차 세계대전 때 나치 선전 활동의 중심지였다. 이방인의 눈에는 그저 아름다운 정원으로 비치지만 뮌헨인들에게는 착잡한 과거의 역사를 떠올리게 하는 트라우마의 장소인 것이다. 그래서일까. 화단에 만발한 화려한 꽃들은 그런 상처를 잊기 위해 뮌헨인들이 심어 놓은 자기 치유의 꽃으로 다가온다.

정석범 문화전문기자 sukbum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