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선 한 번도 미국처럼 연방정부의 ‘셧다운(일부 폐쇄)’ 사태가 일어난 적이 없다. 국회에서 여야가 치고받고 싸우면서도 회계연도 개시일인 1월1일까지는 어떻게든 예산안을 통과시켜왔기 때문이다. 만약 1월1일을 넘기더라도 셧다운을 피할 방법은 남아 있다. 한국엔 임시방편으로 예산을 운영할 수 있는 ‘준(準)예산’ 제도가 있어서다.

준예산은 한 국가의 예산이 법정기간 내 처리되지 못한 경우 정부가 전년도 예산에 따라 잠정적인 예산을 집행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헌법 제54조에 근거해 준예산을 편성할 수 있는 항목은 △헌법 또는 법률에 의해 설치된 기관의 유지·운영 △법률상 지출의무 이행 △계속비 사업 등 세 가지다. 이에 따라 예산안 처리가 법정처리 시한을 넘기더라도 정부 공무원들이 강제 휴가를 떠나는 일은 발생하지 않는다.

그러나 한국이 준예산을 편성한 적은 아직 없다. 준예산만 믿고 예산안 처리를 미루다가는 주요 국가사업 시행에 악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우선 신규 사업의 경우 본예산이 통과될 때까지 편성이 불가능하다. 일자리 창출과 사회복지시설에 대한 지원도 끊긴다. 지방자치단체는 자체 예산을 편법으로 편성해야 한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준예산은 최소한의 국가 기능을 유지하는 선에서만 예산 투입을 허용하는 것이기에 한국도 미국과 같은 혼란을 겪을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최근 10년간 한국의 예산 처리는 한 번의 예외도 없이 법정시한을 넘겼다. 원래 국가재정법상 예산안 처리시한은 회계연도 개시 30일 전인 12월2일인 만큼 예산안 ‘늑장 처리’가 관행처럼 굳어진 셈이다. 여야 간 정쟁과 기싸움으로 시간을 허비하다가 회계연도가 시작되는 새해를 코앞에 두고서야 처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심지어 올해 예산은 헌정 사상 최초로 해를 넘겨 새해 첫날 처리되기도 했다.

정부 관계자는 “미국처럼 셧다운까진 일어나지 않겠지만 예산 처리가 늦어지는 것은 한국 경제의 불확실성을 키우는 악재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고은이 기자 koko@hankyu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