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국민을 비굴하게 만들지 말라
A: 남에게 도움을 받는 것은 좋은 일일까?

B: 아니지.

A: 그럼 국가에서 도움을 받는 것은 어때?

B: 글쎄…. 공짜라면 마다할 일은 아니지….

A: 먹고 살 만한 사람이 공짜를 바라면 되겠어?

B: 공짜라는데 뭐….

A는 강하고 B는 약하다. B는 대답을 하면서도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원래 공짜는 없는 것이다. 누구 지갑에서 돈이 나오는지 보이지 않을 뿐. 그런데 그 돈이 내 지갑에서 나온다고? 그러다 모자라면 빚낸 돈으로 주는데 그 빚은 우리 자식들이 갚아야 한다고? 에이, 이 사람, 그럼 이야기가 다르지. 달라도 많이 다르지.

지금 50대 이상은 사실 나라 도움을 받은 기억이 거의 없다. 국공립학교 등록금이 사립보다 쌌던 것 말고는. 잘사는 사람이나 못사는 사람이나 자기 인생의 미래는 자기가 노력해서 만들어 가기 나름이라고 알고 있었다. 부모님들도 돈이 없었고 삼촌도 가난했고 친구는 더 말 할 나위조차 없었다. 내가 뼈 빠지게 열심히 살지 않으면 식구들 입에 거미줄 치는 거였다. 잘되도 내 탓, 못되도 내 탓,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였다. 슬프고 힘든 적도 많았지만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한 조직의 일원으로서 성실했고 그래서 당당했다.

그게 버릇이 돼서 65세 ‘지공(지하철 공짜)’의 나이를 앞두고도 나는 그냥 돈 내고 탈 거야, 카드 안 받을 거야, 70은 돼야지, 염치가 있지 등등의 다소 비이성적 발언을 쏟아내곤 한다. 지하철공사 적자가 크다는데 하는 주제넘은 소리까지.

이 세대들은 젊은 시절 외식을 몰랐고 스타벅스를 몰랐고 자가용을 몰랐다. 국민연금도 퇴직연금도 없었고 의료보험도 취약하던 시절, 열심히 벌어 아껴 먹고 자식 교육시키고 그러고도 또 아껴 집 한 칸 장만하려고 저축하는 것이 그네들의 삶이었다. 그래서 지금 50대 이상의 세대가 소유하고 있는 집은 눈물로 지은 집이요, 다 자란 20대 30대 자식들은 내 피 팔아 키운 자식과 다름없다.

이 세대들은 불행할까? 아마 그렇기도 할 것이다. 집 값은 떨어지는데 팔리지도 않고, 푼돈 예금에 붙어 나오는 이자는 쥐꼬리만 하고, 자식들 취직 걱정에 결혼 걱정에 세상 근심 혼자 다 짊어지고 앉았으니 그리 삶이 즐겁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간과하지 말라. 이 세대들은 자신들의 피와 땀과 눈물로 이뤄 낸 자기의 삶과 그를 통해 성취한 대한민국의 성공에 대해 무한한 자부심을 갖고 있는, 단군 역사 이래 가장 당당한 한국인이라는 것을.

지하철도 공짜로 타기 미안해 하는 세대인지라 이들은 앞으로 30년, 40년 살아갈 노후가 답답해도 나라에 대고 뭐 어찌해 달라고 큰소리칠 줄도 모른다. 사실 경우를 따진다면, 힘 있고 앞날이 구만리 같은 젊은 세대들은 제 힘으로 벌어 제 식구 먹이고 제 자식 교육시키는 것이 옳다. 스타벅스 마실 돈 아끼고, 외식비용 아끼고, 휴대폰 전화비용 줄이고, 자가용 처분해서 자기 앞가림 자기가 하는 게 순리란 말이다.

그런데 웬 무상급식에 무상보육 타령인가. 젊은 세대들이 촛불 켜고 달려들면서 요구한 것인가, 아니면 정치인들이 표 좀 얻어보려고 퍼부은 것인가.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했다. 가난은 하느님도 구제하지 못한다 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멀쩡한 사람이 남의 도움에 기대 살려는 것을 경계한 것이다. 자꾸 도움을 받다 보면 도움 받는 것을 당연시하게 되고, 더 게을러지고, 더 많은 도움을 기대하게 된다. 그리고 도움을 받는 사람들은 당당해지기 어렵다.

우리 사회에는 나라의 도움을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다수 있다. 한정된 복지재원은 이들을 위해 집중적으로 쓰여짐이 마땅하다. 그 외에 자기 앞가림을 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까지 보편적 복지라는 미명하에 나라 돈을 퍼붓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더욱이 그 돈이 우리 자식들 주머니에서 빌려 온 것이라면 더더욱 못할 짓이다. 단군 이래 가장 융성한 국가를 맨손으로 일구어 낸 국민을 더 이상 비굴하게 만들지 말라.

황영기 < 법무법인 세종 고문·객원논설위원 ykhwang01@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