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통합진보당 분당 사태를 불러온 ‘4·11 총선’ 대리 투표와 관련해 서울중앙지방법원이 7일 대리투표자들에게 무죄 판결을 내렸다. 통진당의 대리투표 행위와 관련해 지금까지 나온 1, 2심 판결 가운데 무죄 판결은 이번이 처음이어서 논란이 예상된다. 검찰은 “헌법에 나와 있는 직접선거 원칙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판결”이라며 항소 의사를 밝혔다.

○“통진당 대리투표 45명 전원 무죄”

통진당 경선 대리투표 '엇갈린 판결' 논란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부(부장판사 송경근)는 대리투표 혐의로 기소된 전·현직 통진당원 45명에 대해 이날 전원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정당의 공직선거 후보자 추천을 위한 당내 경선의 경우 민주적 기본질서에 반하거나 선거 제도의 본질적 기능을 침해하지 않는 이상 선거의 4대 원칙이 그대로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고 판단했다.

선거의 4대 원칙은 헌법에 명시돼 있으며 이 가운데 ‘직접선거 원칙’이 있다. ‘유권자는 반드시 자신이 직접 투표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내용으로 이 원칙에 따라 한국에서는 대리 투표는 물론 미국 대선과 같은 간선제도 금지된다. 재판부는 이런 헌법상 원칙이 공직선거가 아닌 정당 내 선거에서는 예외가 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이런 전제에 따라 재판부는 전·현직 당원들의 대리투표가 통진당의 기본 방침과 어긋났는지를 살폈다. 직접선거가 통진당의 ‘헌법상 의무’가 아니어도 당헌 당규가 이를 명시하고 있었다면 형법상 업무방해죄를 적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통진당은 직접선거를 하려고 했는데 당원들이 이를 어김으로써 통진당의 업무를 방해했다”는 논리의 적용 여부가 관건이었다.

그러나 이 부분에서도 재판부는 △통진당의 당헌·당규 등에 이를 명시적으로 금지하는 내용이 없고 △통진당 경선업무 담당자들이 가능성을 인식하면서도 스스로 통제를 포기 또는 감수했다는 등의 이유로 무죄로 판단했다.

○법원 따라 직접투표 등 쟁점 오락가락

지난해 통진당의 부정경선 의혹을 수사해 총 510명을 기소한 검찰은 판결 직후 강력 반발했다. 검찰은 “선거의 4대 원칙은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정당의 비례대표 경선에도 당연히 적용돼야 한다”며 “전국 법원에서 지금까지 유죄가 확정된 사람만도 11명에 달한다”고 강조했다. 검찰이 같은 혐의를 적용한 다른 기소 건에서 대구지법, 부산지법, 광주지법 등은 검찰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법원은 그동안 대리투표 행위로 인한 업무방해 혐의를 모두 유죄로 인정하고 개별적인 사정을 양형에 참작해 판결해 왔다. 대구지법은 지난 1월 대리 투표한 허모씨에게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항소심도 같은 내용으로 판결했다. 재판부는 “헌법에 규정된 선거의 원칙은 근대의 선거 제도를 지배하는 기본원리로서 선거 전반에 적용되고 당내 선거라고 해서 예외일 수 없다”며 “더구나 당내 경선은 간접적으로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절차의 성격”이라고 판결했다.

광주지법은 8명을 대신해 투표한 나모씨 등에게 벌금 200만원을 선고했다. 이 법원 역시 “다른 당원이 직접 투표한 것처럼 통진당 선거관계자를 오인하게 한 것은 위계에 해당한다”며 업무방해죄를 인정했다.

이번 무죄 선고가 현행 법의 한계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로 검찰이 형법상 업무방해죄를 적용한 이유는 다른 법으로는 당내 대리투표 행위를 처벌할 수 없기 때문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는 “선거법 47조는 정당의 민주적 활동 의무를 규정하고 있지만 직접선거를 해야 한다고 명시한 것이 아닌 데다 처벌 조항도 없다”고 말했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