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결국 '美 베끼기'…부동산 살리기 나서
유럽 각국 정부가 침체에 빠진 부동산 시장을 살리기 위해 ‘미국 따라 하기’에 나섰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네덜란드, 영국 등이 내집 마련의 상징이자 2008년 금융위기의 씨앗이 된 미국의 패니메이와 프레디맥과 비슷한 제도를 잇따라 도입하고 있다고 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네덜란드 정부는 최근 ‘네덜란드식 패니 앤드 프레디’를 개발하겠다고 발표했다. 은행들의 재무건전성 압박을 덜고 주택시장 활성화를 추진하겠다는 취지에서다. 영국과 이탈리아 정부도 정부가 대출금 일부에 대한 보증책임을 지고 국민들의 ‘내집 마련 꿈’을 돕겠다고 나섰다.

영국 재무부는 8일 특정 대출을 정부가 담보하는 ‘헬프 투 바이’ 정책의 세부사항을 발표했다. 이 계획안에 따르면 주택 구매자는 60만파운드 이상의 자산을 담보로 5%의 보증금을 내면 대출을 받을 수 있다. 정부는 대출금의 15%를 보증해준다. 영국 주택가격은 최근 상승세를 타고 있으나 2007년 최고점에 비해 40% 정도 떨어진 상태다.

WSJ는 미국 연방주택청과 매우 비슷한 방식으로 유럽 정부가 부동산 시장을 살리려는 움직임은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고 지적했다. 은행이 신용대출에 대한 책임을 정부와 나눠 갖게 되면 도덕적 해이에 빠질 수 있고, 과거 미국과 같은 부실 사태를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필립 부스 영국 카스 경영대 리스크 매니지먼트과 교수는 “완전히 무책임한 정책”이라며 “은행들이 적극적으로 고객의 신용을 관리할 동기를 상실케 할 뿐”이라고 지적했다.

패니메이의 뿌리는 1930년대 경제공황기에 민간 주택담보대출을 사들일 목적으로 출범한 정부기관인 미국 연방저당권협회다. 프레디맥은 주택담보대출을 보다 쉽게 하기 위해 1970년 만들어진 미국 연방주택금융저당회사다. 둘 다 민영회사지만 정부 주택금융 안정화에 기여한다는 명목으로 정부보증기관(GSE)으로 불리며 준정부기관 대접을 받아왔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은 주택담보대출 부실의 중심에 선 대형 금융회사 중 하나였으나 미국 정부는 두 회사가 파산을 선고할 경우 파장이 너무 클 것을 우려해 1500억달러에 달하는 구제금융을 지원했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