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49주년 - 독주하는 국회권력] '의원입법' 벼락치기·베끼기…결국엔 누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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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주먹구구 입법
'15~29세' 청년고용법 졸속 통과…30세이상 반발에 "그럼 39세까지…"
정년연장법·유해화학관리법…
사회적 파장 많은 법안인데도 충분한 논의과정 거치지 않아
대리점에 대한 본사 횡포 막는 법 등
대중적 인기 끌겠다 싶으면 문장 한 두개 고쳐 '붕어빵 발의'
'15~29세' 청년고용법 졸속 통과…30세이상 반발에 "그럼 39세까지…"
정년연장법·유해화학관리법…
사회적 파장 많은 법안인데도 충분한 논의과정 거치지 않아
대리점에 대한 본사 횡포 막는 법 등
대중적 인기 끌겠다 싶으면 문장 한 두개 고쳐 '붕어빵 발의'
“청년고용촉진특별법 일부 개정 법률안은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심사 보고한 대로 우리 위원회 안으로 채택하고자 하는데 이의 없으십니까?”(신계륜 국회 환경노동위원장) “없습니다.”(의원들) “가결됐음을 선포합니다.”(신 위원장)
지난해 11월26일 국회 환노위 전체회의의 한 장면이다. 청년고용촉진특별법 개정안은 공공기관과 지방공기업이 내년부터 2016년까지 매년 정원의 3%에 해당하는 청년층을 의무고용토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고용시장에 상당한 영향을 줄 수 있는 법안이지만 입법 과정은 말 그대로 주먹구구였다. 이 법안이 발의된 것은 대선을 앞둔 지난해 5~9월. 이 기간에 모두 12건의 유사법안이 의원발의로 국회에 올라왔다. 대선을 앞두고 청년층 표심을 잡기 위해 여야 할 것 없이 비슷한 법안을 쏟아낸 것.
법안 심사 과정에서 정부는 반대 의견을 냈다. 청년 고용을 의무화하면 다른 계층이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의원들은 이를 묵살했다. 지난해 9월18일과 11월21일 두 차례에 걸쳐 열린 환노위 법안심사소위원회의 논의 시간은 고작 66분이었다. 이후 환노위 전체회의, 법제사법위원회, 국회 본회의는 일사천리였다. 지난 4월30일 열린 국회 본회의는 단 한 번의 토론도 없이 재석의원 231명 중 찬성 227명, 기권 4명의 압도적 표차로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렇게 주먹구구로 만들어진 법안은 곧바로 ‘사고’로 이어졌다. 청년고용촉진특별법은 의무고용 대상이 되는 청년의 범위를 시행령에 위임하고 있는데 시행령상 청년은 15~29세로 제한된다는 사실이 부각되면서다. 30대를 중심으로 “가뜩이나 취직하기 어려운데 청년고용촉진특별법 때문에 취업난이 더 심해질 것”이라는 불만이 들끓었다.
의원들은 뒤늦게 바빠졌다. 지난해 6월 청년 고용을 의무화하는 법 개정안을 발의한 A의원이 올해 6월 또다시 법 개정안을 내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이번엔 청년층의 범위를 아예 법에 못박아 15~39세로 확대하자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정치권에서조차 “여론을 의식한 눈치보기”라는 비판이 나왔다. 결국 뒷수습은 정부 몫이었다. 고용노동부는 30대의 반발을 고려해 청년층 범위를 15~34세로 확대하는 시행령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국회의 졸속 입법은 일일이 열거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많다. 청년고용촉진특별법과 같은 날 국회를 통과한 정년연장법도 그런 사례다. 이 법은 2016년부터는 300인 이상 사업장, 2017년부터는 국내 모든 사업장에 대해 근로자 정년을 60세로 정하는 파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근로 환경을 뒤흔들 수 있는 법안이지만 공청회 한 번 없이 뚝딱 처리됐다. 지난 5월7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유해화학물질관리법도 마찬가지다. 화학 물질 유출 사고를 낸 기업에 매출의 최대 5%를 과징금으로 부과하는 이 법안은 지난 4월5일 처음 발의될 때만해도 ‘매출의 50% 이상’을 과징금으로 매기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이후 4월23일 법안심사소위에서 과징금 규모가 ‘매출의 50% 이하’로, 다음날인 4월24일 환노위 전체회의에선 ‘매출의 10% 이하’로 조정됐고 5월6일 법사위에선 ‘매출의 5% 이하’로 다시 낮아졌다.
과징금 비율을 왜 이렇게 정했는지에 대한 제대로 된 설명은 환노위 단계에선 거의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저 ‘50%는 너무 많으니 10%로 하자’는 식이었다. 그나마 법사위에서 기업 경영에 대한 부담을 감안해 과징금 비율을 낮췄지만 과잉규제 논란은 여전하다. 당시 회의에 참석한 박원주 산업통상자원부 산업정책관은 “(매출의) 1%를 넘어서면 굉장히 강한 규제”라는 의견을 고수했다.
의원들 간에 ‘법안 베끼기’도 극성이다. ‘남양유업 사태’가 불거진 지난 5~6월 국회에 올라온 4건의 ‘대리점 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이 단적인 사례다. 이 법안은 대리점에 대한 본사의 횡포를 막는 내용을 담고 있다. 민주당에선 이종걸 의원을 시작으로 이언주·이상직 의원이 잇따라 법안을 냈고 진보정의당에선 심상정 의원이 법안을 발의했다. 발의자는 다르지만 4건의 법안 모두 △정보공개서 제공 의무화 △표준대리점 계약서 사용 권장 △불공정거래행위 금지 △대리점계약 해지 제한 △대리점 사업자 단체 구성 허용 등을 핵심 조항으로 담고 있어 ‘붕어빵’이나 다름없다. 이들 법안의 일부 문구는 아예 토씨 하나 틀리지 않다.
이런 현상은 의원입법 증가와 무관치 않다. 의원입법은 정부 입법과 달리 부처 간 협의, 입법예고, 규제 심사 등이 필요 없는 탓에 태생적으로 부실 가능성이 높다. 16대 국회 때 1912건이던 의원입법은 17대 6387건, 18대 1만2220건으로 늘었고 19대에선 개원 1년4개월여 만에 6409건에 달했다. 이런 추세라면 19대 국회 전체로는 2만건에 육박할 전망이다. 의정활동을 질보다 양으로 평가하는 정치 풍토도 문제다. 입법 실적을 숫자로만 따지다 보니 문구 몇 개만 바꾼 ‘한건주의 법안’이 쏟아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특별취재팀
지난해 11월26일 국회 환노위 전체회의의 한 장면이다. 청년고용촉진특별법 개정안은 공공기관과 지방공기업이 내년부터 2016년까지 매년 정원의 3%에 해당하는 청년층을 의무고용토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고용시장에 상당한 영향을 줄 수 있는 법안이지만 입법 과정은 말 그대로 주먹구구였다. 이 법안이 발의된 것은 대선을 앞둔 지난해 5~9월. 이 기간에 모두 12건의 유사법안이 의원발의로 국회에 올라왔다. 대선을 앞두고 청년층 표심을 잡기 위해 여야 할 것 없이 비슷한 법안을 쏟아낸 것.
법안 심사 과정에서 정부는 반대 의견을 냈다. 청년 고용을 의무화하면 다른 계층이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의원들은 이를 묵살했다. 지난해 9월18일과 11월21일 두 차례에 걸쳐 열린 환노위 법안심사소위원회의 논의 시간은 고작 66분이었다. 이후 환노위 전체회의, 법제사법위원회, 국회 본회의는 일사천리였다. 지난 4월30일 열린 국회 본회의는 단 한 번의 토론도 없이 재석의원 231명 중 찬성 227명, 기권 4명의 압도적 표차로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렇게 주먹구구로 만들어진 법안은 곧바로 ‘사고’로 이어졌다. 청년고용촉진특별법은 의무고용 대상이 되는 청년의 범위를 시행령에 위임하고 있는데 시행령상 청년은 15~29세로 제한된다는 사실이 부각되면서다. 30대를 중심으로 “가뜩이나 취직하기 어려운데 청년고용촉진특별법 때문에 취업난이 더 심해질 것”이라는 불만이 들끓었다.
의원들은 뒤늦게 바빠졌다. 지난해 6월 청년 고용을 의무화하는 법 개정안을 발의한 A의원이 올해 6월 또다시 법 개정안을 내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이번엔 청년층의 범위를 아예 법에 못박아 15~39세로 확대하자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정치권에서조차 “여론을 의식한 눈치보기”라는 비판이 나왔다. 결국 뒷수습은 정부 몫이었다. 고용노동부는 30대의 반발을 고려해 청년층 범위를 15~34세로 확대하는 시행령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국회의 졸속 입법은 일일이 열거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많다. 청년고용촉진특별법과 같은 날 국회를 통과한 정년연장법도 그런 사례다. 이 법은 2016년부터는 300인 이상 사업장, 2017년부터는 국내 모든 사업장에 대해 근로자 정년을 60세로 정하는 파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근로 환경을 뒤흔들 수 있는 법안이지만 공청회 한 번 없이 뚝딱 처리됐다. 지난 5월7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유해화학물질관리법도 마찬가지다. 화학 물질 유출 사고를 낸 기업에 매출의 최대 5%를 과징금으로 부과하는 이 법안은 지난 4월5일 처음 발의될 때만해도 ‘매출의 50% 이상’을 과징금으로 매기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이후 4월23일 법안심사소위에서 과징금 규모가 ‘매출의 50% 이하’로, 다음날인 4월24일 환노위 전체회의에선 ‘매출의 10% 이하’로 조정됐고 5월6일 법사위에선 ‘매출의 5% 이하’로 다시 낮아졌다.
과징금 비율을 왜 이렇게 정했는지에 대한 제대로 된 설명은 환노위 단계에선 거의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저 ‘50%는 너무 많으니 10%로 하자’는 식이었다. 그나마 법사위에서 기업 경영에 대한 부담을 감안해 과징금 비율을 낮췄지만 과잉규제 논란은 여전하다. 당시 회의에 참석한 박원주 산업통상자원부 산업정책관은 “(매출의) 1%를 넘어서면 굉장히 강한 규제”라는 의견을 고수했다.
의원들 간에 ‘법안 베끼기’도 극성이다. ‘남양유업 사태’가 불거진 지난 5~6월 국회에 올라온 4건의 ‘대리점 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이 단적인 사례다. 이 법안은 대리점에 대한 본사의 횡포를 막는 내용을 담고 있다. 민주당에선 이종걸 의원을 시작으로 이언주·이상직 의원이 잇따라 법안을 냈고 진보정의당에선 심상정 의원이 법안을 발의했다. 발의자는 다르지만 4건의 법안 모두 △정보공개서 제공 의무화 △표준대리점 계약서 사용 권장 △불공정거래행위 금지 △대리점계약 해지 제한 △대리점 사업자 단체 구성 허용 등을 핵심 조항으로 담고 있어 ‘붕어빵’이나 다름없다. 이들 법안의 일부 문구는 아예 토씨 하나 틀리지 않다.
이런 현상은 의원입법 증가와 무관치 않다. 의원입법은 정부 입법과 달리 부처 간 협의, 입법예고, 규제 심사 등이 필요 없는 탓에 태생적으로 부실 가능성이 높다. 16대 국회 때 1912건이던 의원입법은 17대 6387건, 18대 1만2220건으로 늘었고 19대에선 개원 1년4개월여 만에 6409건에 달했다. 이런 추세라면 19대 국회 전체로는 2만건에 육박할 전망이다. 의정활동을 질보다 양으로 평가하는 정치 풍토도 문제다. 입법 실적을 숫자로만 따지다 보니 문구 몇 개만 바꾼 ‘한건주의 법안’이 쏟아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특별취재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