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49년 - 독주하는 국회권력] 포퓰리즘 법안 남발하는 野…그보다 더 세게 나가는 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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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그들만의 포퓰리즘 - 票 앞에 정체성은 없다
정권 잡게 해줄 표에만 관심
여당이 정리해고 요건 더 강화
'하도급 근로자의 정규직 대우' 법안, 새누리 중진의원이 대표 발의
경제살리기 법안엔 무관심
외국인투자법 석달째 국회서 낮잠
금융위, 산업은행법 개정 추진…법안 발의할 의원 못구해 '발 동동'
정권 잡게 해줄 표에만 관심
여당이 정리해고 요건 더 강화
'하도급 근로자의 정규직 대우' 법안, 새누리 중진의원이 대표 발의
경제살리기 법안엔 무관심
외국인투자법 석달째 국회서 낮잠
금융위, 산업은행법 개정 추진…법안 발의할 의원 못구해 '발 동동'
근로기준법에는 ‘경영상 이유에 의한 해고 제한’ 조항(제24조)이 있다. 기업이 어렵더라도 ‘긴박한 상황’이 아니면 정리해고를 자제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어떤 상황이 긴박한지에 대한 규정은 없다. 그런데 작년 하반기부터 이 조항을 좀 더 엄격하게 개정하려는 입법안이 쏟아졌다. A의원은 작년 7월 정리해고 요건을 ‘사용자는 더 이상 사업을 계속할 수 없는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 이외에는 해고를 하지 못한다’로 바꾸자는 법안을 냈다. 사실상 회사 문을 닫기 전엔 정리해고를 하지 말라는 얘기다. 그러자 B의원은 올해 4월 A의원 법안에 더해 ‘정리해고를 하기 전에 △자산 매각 △근로시간 단축 △신규 채용 중단 △업무 조정 및 전환배치 등의 노력을 해야 한다’는 점을 강제한 법안을 발의했다. 이런 노력을 하지 않으면 정리해고를 못한다는 강제 규정으로, A의원 안보다 더 엄격한 규제다.
두 의원 모두 진보 성향의 야당 소속인 것 같지만 A의원은 심상정 정의당 의원, B의원은 김성태 새누리당 의원이다. 야권 내부에서는 “김성태 의원 안이 야당 안보다 훨씬 광범위하게 정리해고를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며 ‘참 잘 만든 법안’이란 칭찬이 한동안 이어졌다.
한국 국회에서 여야를 구분하기는 쉽지 않다. 보수와 진보의 경계도 흐려졌다. “공약만 보면 누가 보수정당인지, 진보정당인지 모르겠다”(조동근 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는 지적처럼 이념과 정책이 갈수록 닮아간다. 19대 국회 들어 여야의 ‘동질성’은 더욱 심화되는 추세다.
표 좇아가는 정치권
여야 정체성이 모호해진 사례로 ‘사내하도급 근로자 보호법’도 있다. 19대 국회가 문을 연 작년 5월30일 이한구 새누리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법안이다. 이 법안의 골자는 사내하도급 인력을 사용하는 기업(사용사업자)은 하도급 근로자에게 정규직과 같은 임금, 성과급, 상여금 등을 지급할 것을 의무화하는 것이다. 사내하도급 근로자가 원사업자(하도급 인력공급업체)로부터 임금을 못 받을 경우 연대 책임을 지도록 하는 내용도 담겨 있다. 재계단체 관계자는 “이 의원 입법안은 사실상 모든 기업에 사내하도급 근로자 사용을 하지 말라는 것이나 다름없다”며 “야당 의원도 내지 않는 법안을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당헌으로 정한 새누리당 중진 의원이 내는 게 지금 한국 정치권의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이런 사례는 비일비재하다. 본지가 19대 국회가 개원한 작년 5월부터 올해 9월까지 국회에 제출된 경제민주화 관련 법안을 분석한 결과, 여야 의원들은 총 276건의 규제법안을 제출했다. 대기업 지배구조 개선, 비정규직 보호, ‘갑을(甲乙) 논란’을 유발한 가맹점사업자 처벌 등 하나같이 기업 경영활동을 위축시키는 법안들이다.
이 가운데 새누리당 발의 건수는 87건, 민주당은 128건이었다. 나머지 61건은 다른 정당 의원들과 정부 발의안이다. 새누리당이 민주당보다 상대적으로 적게 발의했지만, 내용을 살펴보면 민주당 의원 안과 비슷하거나 더 강도 높은 규제를 담은 법안도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관계자는 “여야가 대기업 대 중소기업, 사용자 대 근로자 등 이분법적 사고로 모든 현안을 처리하다보니 이런 현상이 계속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뒷전에 밀린 민생
지난 8월8일 정부가 내놓은 내년 세법개정안을 둘러싼 소동도 표(票)만을 좇는 정치권의 행태를 여실히 보여준다. 야당이 기획재정부가 낸 세법개정안 중 근로소득세 개편 내용을 ‘중산층·서민 증세’라고 비판하자 새누리당도 뒤늦게 기재부를 성토하고 나섰다. 결국 발표 닷새 만에 대통령이 원점 재검토를 지시하는 것으로 일단락됐다. 이 과정에서 여야 내부에선 내년 지방선거 표심에 미칠 영향을 파악하느라 분주했다. 이인실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는 “근로소득세제는 세금 납부 면제 대상이 지나치게 많고 공제 혜택도 해마다 늘어나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며 “합리적인 논의를 통해 손질해야 하는데, 여야가 ‘누가 서민을 위한 정당이냐’는 경쟁에만 빠져 있다”고 꼬집었다.
문제는 표 되는 법안이나 정책에 대해선 앞다퉈 나서는 여야가 경제살리기엔 무관심하다는 것이다. 국내 기업과 외국 기업의 합작사 설립 요건을 완화하는 내용의 외국인투자촉진법 개정안(손자회사가 증손회사를 설립할 때 100% 지분을 보유하도록 하는 조항)은 지난 6월 국회에 제출된 지 석 달이 지나도록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GS칼텍스와 SK종합화학 등의 2조3000억원 투자 계획이 발목을 잡혔다.
이뿐만이 아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8월 산업은행과 정책금융공사를 통합한다는 방침에 따라 한국산업은행법 개정을 추진했으나 두 달 가까이 법안을 발의해줄 의원을 못 구해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최소 4개월이 걸리는 정부입법 대신 의원입법으로 법 개정을 추진해야 하는 상황에서 부산지역 새누리당 의원들이 산업은행과 통합하는 대신 부산에 정책금융공사를 내려보내야 한다는 조건을 내세워 협조하지 않고 있어서다.
■ 특별취재팀
손성태 차장, 김재후 이태훈 기자(이상 정치부), 주용석 차장대우, 런던·헬싱키=김주완 기자(이상 경제부), 이태명 기자(산업부), 장진모 워싱턴 ·안재석 도쿄 특파원, 남윤선 기자(이상 국제부)
두 의원 모두 진보 성향의 야당 소속인 것 같지만 A의원은 심상정 정의당 의원, B의원은 김성태 새누리당 의원이다. 야권 내부에서는 “김성태 의원 안이 야당 안보다 훨씬 광범위하게 정리해고를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며 ‘참 잘 만든 법안’이란 칭찬이 한동안 이어졌다.
한국 국회에서 여야를 구분하기는 쉽지 않다. 보수와 진보의 경계도 흐려졌다. “공약만 보면 누가 보수정당인지, 진보정당인지 모르겠다”(조동근 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는 지적처럼 이념과 정책이 갈수록 닮아간다. 19대 국회 들어 여야의 ‘동질성’은 더욱 심화되는 추세다.
표 좇아가는 정치권
여야 정체성이 모호해진 사례로 ‘사내하도급 근로자 보호법’도 있다. 19대 국회가 문을 연 작년 5월30일 이한구 새누리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법안이다. 이 법안의 골자는 사내하도급 인력을 사용하는 기업(사용사업자)은 하도급 근로자에게 정규직과 같은 임금, 성과급, 상여금 등을 지급할 것을 의무화하는 것이다. 사내하도급 근로자가 원사업자(하도급 인력공급업체)로부터 임금을 못 받을 경우 연대 책임을 지도록 하는 내용도 담겨 있다. 재계단체 관계자는 “이 의원 입법안은 사실상 모든 기업에 사내하도급 근로자 사용을 하지 말라는 것이나 다름없다”며 “야당 의원도 내지 않는 법안을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당헌으로 정한 새누리당 중진 의원이 내는 게 지금 한국 정치권의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이런 사례는 비일비재하다. 본지가 19대 국회가 개원한 작년 5월부터 올해 9월까지 국회에 제출된 경제민주화 관련 법안을 분석한 결과, 여야 의원들은 총 276건의 규제법안을 제출했다. 대기업 지배구조 개선, 비정규직 보호, ‘갑을(甲乙) 논란’을 유발한 가맹점사업자 처벌 등 하나같이 기업 경영활동을 위축시키는 법안들이다.
이 가운데 새누리당 발의 건수는 87건, 민주당은 128건이었다. 나머지 61건은 다른 정당 의원들과 정부 발의안이다. 새누리당이 민주당보다 상대적으로 적게 발의했지만, 내용을 살펴보면 민주당 의원 안과 비슷하거나 더 강도 높은 규제를 담은 법안도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관계자는 “여야가 대기업 대 중소기업, 사용자 대 근로자 등 이분법적 사고로 모든 현안을 처리하다보니 이런 현상이 계속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뒷전에 밀린 민생
지난 8월8일 정부가 내놓은 내년 세법개정안을 둘러싼 소동도 표(票)만을 좇는 정치권의 행태를 여실히 보여준다. 야당이 기획재정부가 낸 세법개정안 중 근로소득세 개편 내용을 ‘중산층·서민 증세’라고 비판하자 새누리당도 뒤늦게 기재부를 성토하고 나섰다. 결국 발표 닷새 만에 대통령이 원점 재검토를 지시하는 것으로 일단락됐다. 이 과정에서 여야 내부에선 내년 지방선거 표심에 미칠 영향을 파악하느라 분주했다. 이인실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는 “근로소득세제는 세금 납부 면제 대상이 지나치게 많고 공제 혜택도 해마다 늘어나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며 “합리적인 논의를 통해 손질해야 하는데, 여야가 ‘누가 서민을 위한 정당이냐’는 경쟁에만 빠져 있다”고 꼬집었다.
문제는 표 되는 법안이나 정책에 대해선 앞다퉈 나서는 여야가 경제살리기엔 무관심하다는 것이다. 국내 기업과 외국 기업의 합작사 설립 요건을 완화하는 내용의 외국인투자촉진법 개정안(손자회사가 증손회사를 설립할 때 100% 지분을 보유하도록 하는 조항)은 지난 6월 국회에 제출된 지 석 달이 지나도록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GS칼텍스와 SK종합화학 등의 2조3000억원 투자 계획이 발목을 잡혔다.
이뿐만이 아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8월 산업은행과 정책금융공사를 통합한다는 방침에 따라 한국산업은행법 개정을 추진했으나 두 달 가까이 법안을 발의해줄 의원을 못 구해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최소 4개월이 걸리는 정부입법 대신 의원입법으로 법 개정을 추진해야 하는 상황에서 부산지역 새누리당 의원들이 산업은행과 통합하는 대신 부산에 정책금융공사를 내려보내야 한다는 조건을 내세워 협조하지 않고 있어서다.
■ 특별취재팀
손성태 차장, 김재후 이태훈 기자(이상 정치부), 주용석 차장대우, 런던·헬싱키=김주완 기자(이상 경제부), 이태명 기자(산업부), 장진모 워싱턴 ·안재석 도쿄 특파원, 남윤선 기자(이상 국제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