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과 맛있는 만남] 유상호 한국투자증권 사장 "모태 금융맨…7년 장수 CEO 비결은 지피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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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자 지배하는 선진국 대신 베트남같은 신흥시장서 승부
30년 후, 한국본사만큼 성장 확신
증권맨은 '갑을병정' 중 '정'…무엇보다 소통할 줄 알아야죠
최선 다하고 기분좋게 내려올 것
30년 후, 한국본사만큼 성장 확신
증권맨은 '갑을병정' 중 '정'…무엇보다 소통할 줄 알아야죠
최선 다하고 기분좋게 내려올 것
"증권업은 타이밍과 정확성이 중요한 업입니다. 특히 타이밍에 더 많은 비중을 둡니다. 증권사는 100을 기준으로 80만 채워도 정확한 시간에 업무를 마무리할 수 있는 사람을 필요로 합니다."
유상호 한국투자증권 사장은 명함에 이사, 전무 직함을 써 본 적이 없다. 부장에서 사장까지 워낙 초고속으로 승진하다 보니 생긴 일이다. 처음으로 최고경영자(CEO) 자리에 올랐을 때 그의 나이는 47세였다. 올해로 7년째 한국투자증권을 이끌고 있다. 현직 증권사 사장 중에선 최장수다. 월급쟁이들에겐 부럽기만 한 기록이다. 정답이 있을 리 없으나 비결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유 사장의 10년 단골집 서울 연희동 ‘동해 가진항’이란 횟집에서 소주잔을 기울이며 지난 25년간 증권맨으로서의 삶을 들어봤다.
◆금융은 나의 운명
유 사장은 서애 류성룡 집안의 15대손이다. 그의 본가는 서애 대감의 종가인 충효당과 류운룡 선생(류성룡의 형)의 고택인 양진당을 제외하고 안동 하회마을에서 세 번째로 크고 유서 깊은 고택이다. 경북 안동에서 태어났지만 부모가 일찍 서울로 올라와 어린 시절 수시로 외가가 있는 안동에 내려갔다. 맛집 선택도 당연히 안동과 관련된 곳이리라 여겼는데 특이하게도 횟집을 골랐다.
작년까지만 해도 연희동 ‘동해 가진항’은 강원 고성군 동해 앞바다, 진짜 가진항에 있었다. 등산을 좋아하는 유 사장이 설악산을 오를 때 한두 번 찾다가 단골이 된 집인데 사정상 가게를 옮기려 하자 유 사장이 서울에 터를 잡으면 어떻겠느냐고 해서 올초 연희동에 둥지를 틀었다. 그래서인지 이곳, 진짜배기다. 동해 바닷물과 자연산 해산물을 직접 공수한다니 앉아서 동해의 맛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집중하지 않고선 알아듣기 어려운 주인아주머니의 강원도 사투리도 감칠맛 난다.
유 사장은 ‘모태 금융인’이다. 부친을 비롯해 외가 쪽 윗대 어른들이 은행에서 한평생을 보냈다. 자연스럽게 대학도 연세대 경영학과를 택했고, 첫 직장 역시 한일은행이었다. “금융을 하려면 우선 상업은행의 생리부터 알아야 한다”는 판단에서였다. 행원 생활은 ‘공부를 더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로 유학을 떠나면서 약 1년 반 만에 끝났다.
◆“인생도 사업도 멀리 보고 계획해야”
유 사장이 목이 칼칼하다며 ‘폭탄주’를 직접 제조했다. 그는 타고난 술꾼이다. 본인도 주량을 모른단다. 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원칙은 ‘짧고 굵게’다. 매일 한 시간씩 전력질주하다시피 운동도 거르지 않는다. 그렇게 매일같이 마셔도 직원들보다 늘 먼저 출근한다.
그 많은 술이 들어가도 자세는 한 점 흐트러짐이 없다. 앞에 놓인 그릇 잔 수저 등이 조금이라도 제자리를 벗어나 있으면 곧바로 원래 위치로 되돌려 놓는다. 두 손을 사용해 줄을 맞춰 가지런히 정리하면서도 그는 상대방을 보며 항상 웃는다. 남에겐 관대하되 본인에겐 엄격한 외유내강형 성격을 잘 보여주는 습관이다.
안주로 쥐치회와 비단멍게 전복 소라 등 해산물 모둠이 나왔다. 쥐치회는 바닷가 근처 횟집이 아니면 보기 힘든 메뉴다.
귀국 후 유 사장은 대우증권에 입사해 국제부, 런던법인 부사장 등을 거치며 1999년 대우그룹이 외환위기로 공중 분해될 때까지 대우증권에 몸담았다. 새로운 직장을 잡게 된 데엔 황건호 전 금융투자협회 회장과의 인연이 계기가 됐다. “당시 대우증권 뉴욕 사무소에 있던 황 회장을 유학 시절에 만났는데 그분이 대우증권 입사 추천서를 직접 써주셨습니다.”
입사 후 나갈 때까지 대우증권 CEO는 고 김창희 사장이었다. 매우 엄격한 CEO로 잘 알려진 경영인이다. “임원들이 서류 보고하러 가려면 벌벌 떨었다고 해요. 하지만 한번 믿으면 끝까지 맡기는 스타일이었습니다. 런던 지사에 나갔을 때도 길어야 4년 임기인데 저한테는 실적이 좋아지니까 1992년부터 무려 7년간 기회를 줬습니다.”
런던에 근무할 땐 그야말로 살얼음판이었다. 유 사장의 임무는 글로벌 ‘큰손’들의 자금을 유치하는 것. 한국이란 변방 출신 증권맨을 상대해 줄 리 만무했다. 그러던 차에 쿠웨이트투자청의 매니저를 알게 됐다. 런던에 있는 모든 증권사가 매달렸지만 2년 동안 주문 한 장 나오지 않자 다들 떨어져 나갔다. 유 사장은 때를 기다리고 계속 관계를 유지했다. 그리고 외환위기가 한창이던 1998년 한국 정부가 달러 유치에 발 벗고 나서자 그때부터 쿠웨이트투자청의 주문은 유 사장이 독차지했다.
대화가 무르익을 즈음, 자연산 떡마림이와 광어회가 메인 메뉴로 나왔다. 유 사장의 동해 횟감 예찬도 이어졌다. “회라는 게 찬물에서 잡히는 게 맛있고, 광어도 서해안산과 동해안산이 맛이 확연히 다릅니다. 저는 물론 동해 쪽을 좋아해요.” 마림이는 방어과의 일종으로 ‘가진항’이 아니면 맛보기 어려운 생선이다. 이름에 걸맞게 떡처럼 차진 식감이 그만이다.
◆유 사장의 경영철학 ‘옵티멀 솔루션’
한국투자증권과 인연을 맺게 된 건 대우증권을 나와 메리츠증권 상무로 있을 무렵이다. “황건호 사장이 메리츠로 옮기면서 함께 이직을 했습니다.” 그러던 차에 2001년 잘 알고 지내는 후배를 통해 김남구 한국금융지주 부회장(당시 동원증권 사장)으로부터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한국증권업의 발전 방향에 대해 서로 의견을 나눴습니다. 그랬더니 동원에 와서 그 꿈을 이뤄달라고 하더군요.”
당시 동원증권은 국내 증권업계 6위 수준. 메리츠 임직원의 만류에다 황 사장과의 인연도 있어 유 사장은 장문의 편지를 김남구 부회장한테 쓰면서 미안함을 전달하고, 영입 제의를 고사했다. 6개월이 흐른 뒤 다시 한번 제의가 왔다. 유 사장은 그제서야 메리츠 임직원에게 이직 뜻을 전하고 2002년 동원증권 부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2007년 3월엔 한국투자증권 CEO에 선임됐다.
그가 선장을 맡은 후로 한국투자증권은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2011, 2012회계연도에 2년 연속 순이익 기준으로 국내 증권사 가운데 1위를 고수했다. 성공의 비결을 묻는 질문에 “전략을 세우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지피지기(知彼知己)”라며 “남을 알면 자신의 능력을 정확하게 알 수 있다”고 답했다.
유 사장의 경영 철학으로 ‘옵티멀 솔루션’이란 개념이 자리 잡은 배경이다. “베스트가 될 수 없으면 그 다음을 찾아야 한다”는 얘기다. 앵글로 색슨계와 유대계 금융회사가 지배하고 있는 선진 시장에서 이기지 못할 싸움을 하느니 베트남 같은 새로운 시장에서 승부를 걸겠다는 게 그의 전략이다. “베트남 한국투자증권 현지법인은 한국 본사의 아바타가 될 겁니다. 30년 뒤면 베트남에 지금의 한국투자증권 같은 회사가 생길 거라 확신합니다.”
‘옵티멀 솔루션’ 철학은 인재를 고를 때도 적용된다. “증권업은 타이밍과 정확성이 중요한 업입니다. 특히 타이밍에 더 많은 비중을 둡니다. 증권사는 100을 기준으로 80만 채워도 정확한 시간에 업무를 마무리할 수 있는 사람을 필요로 합니다. 게다가 증권맨은 갑을병정의 ‘정’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을 내세우기보다 고객을 우선하고 무엇보다 커뮤니케이션에 능해야 하죠. 그러려면 상황에 맞게 차선책을 찾을 줄 알아야 합니다.”
◆내려올 때를 알 수 있도록 “마음 훈련 중”
마지막 메뉴로 매운탕이 나왔다. 된장을 풀어 깊은 맛이 우러나는 게 여느 집 매운탕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렇게 많이 먹고도 쓱쓱 밥을 말아 한 그릇 뚝딱 해치울 수 있을 정도다. 음식도 다 나왔겠다 가장 어려운 ‘돌직구’성 질문을 날렸다. “(대형 증권사 사장 중에)가장 이른 나이에 사장에 올라 가장 오래 하고 있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이었다.
그의 대답은 의외로 담담했다. “사장이란 자리가 본인이 더 하고 싶다고 더 하거나 싫다고 쉽게 그만둘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고 했다. “겨울이 되면 산에 가는데 내려올 때 늘 스스로를 되돌아봅니다. 오늘처럼 내려올 때 기분 좋게 내려오자고요. 괜히 안 내려오려고 버둥거려봤자 절벽에서 떨어지기밖에 더 하겠습니까. 능력이 되는 한 열심히 하고, 나보다 더 잘하는 사람이 나오면 언제든지 물려준다는 마음으로 일합니다. 나 스스로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고 생각할 때가 내려 올 적기지요.”
아내를 언급할 땐 말끝에 애정이 뚝뚝 묻어났다. 대학 2학년 시절에 만난 아내와는 인연이 특별하다. “대학 간 연합동아리에서 만나 첫눈에 반했습니다. 3년 군대 생활도 묵묵히 견뎌줬고요. 제가 유학이다 런던 근무다 밖으로 돈 탓에 정작 본인은 일을 중간에 그만둬야 했습니다. 그만큼 미안한 마음뿐이라 아내 말은 잘 듣습니다.”
유 사장의 인생 설계에서 개인적인 꿈은 무엇일까. 그는 은퇴 후 “명화와 함께하는 세계여행을 주제로 책을 쓰고 싶다”고 말했다. “어릴 때부터 영화광이었어요. 부업으로 영화 평론가를 해봐야겠다고 생각했을 정도입니다. 여행도 좋아하는데 여행지를 고를 때 그곳을 배경으로 찍은 유명한 영화들을 몇 번씩 보고 갑니다. 사운드 오브 뮤직을 무척 좋아해서 잘츠부르크엔 여덟 번이나 다녀왔습니다.”
유상호 사장의 단골집 서울 연희동 '동해 가진항'
동해 가진항서 횟감 직송…새콤한 물회 '별미'
‘동해 가진항’은 서울 연희동 교차로 부근에 있다. 10년 넘게 강원 고성군 가진항 회센터에서 영업을 해 온 유명 횟집이나 단골손님들의 요청으로 지난해 서울로 이사해 왔다. 매일 동해에서 갓 잡아 올린 신선한 횟감을 가진항에서 바닷물과 함께 직송해 온다. 그 날 잡은 생선만 상에 올린다는 게 동해 가진항 사장의 철칙. 100% 동해 특선 자연산 회는 물론 회무침 물회 매운탕까지 모두 맛볼 수 있다. 잡어 오징어 전복 등 갖은 해산물과 채소, 매콤한 양념육수와 함께 국수를 말아먹는 물회가 이 집의 별미. 회정식은 버금(5만원, 1인 기준), 으뜸(7만원), 수라(10만원)로 나뉘며, 매운탕 물회 회무침은 각각 1만5000원. (02)334-3399
박동휘/안상미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