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추덕영 기자 choo@hankyung.com
일러스트=추덕영 기자 choo@hankyung.com
“예산안이 통과가 안 되면 정부가 운영될 수 없잖아요. 의회에서 어떻게든 힘을 합쳐 시한 내에 통과시킵니다.” 스웨덴 여당인 중도당의 여란 페테손 의원은 기자와 만나 이렇게 말했다. 스웨덴에서도 예산안 처리는 난제다. 정치적 이념이 다른 정당들이 돈 쓰는 문제에 대해 쉽게 의견을 모으는 건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웨덴에서는 치열한 토론을 거치고, 가능한 한 모든 프로세스를 국민에게 공개해 정해진 시간에 예산안을 통과시킨다. 영국, 독일, 프랑스 등 대부분의 선진국들에서도 예산안 처리가 법정 기한을 넘기는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

예산안 지연처리 거의 없어

스웨덴 정부의 최종 예산안은 늦어도 9월20일까지 의회에 제출해야 한다. 의회에 제출된 예산안은 의원발의로 제출된 대체 예산안과 관련 기관들의 의견을 종합해 최종 처리된다. 매년 예산안의 주무부처인 재무부 장관은 보자기에 싼 예산안을 들고 내각과 의회 사이에 있는 다리를 건너가 제출한다. 이 과정은 TV로 생중계된다. 예산안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모으기 위함이다. 쟁점사안은 별도로 다룬다. 사회적으로 쟁점이 있는 법안이나 예산안은 국가특별보고서(SOU·Statens Offentlig Utredning)라는 형식을 통해 별도로 의회에 보고된다. 이 사안은 시한을 정하지 않고 1~2년간 논의되며, 심사 일정을 의회에서 별도로 정한다.

올해는 스웨덴에서도 골치 아픈 한 해다. 정부가 제출한 예산안이 야당안과 300억크로나(약 5조373억원) 정도 차이가 난다. 소피아 아르켈스텐 중도당 의원은 “결국은 TV 중계로 국민들이 보는 가운데 본회의에서 5분 정도의 투표로 결정이 날 것”이라며 “반대든 찬성이든 계속 붙잡고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일정에 따라 표결로 해결한다”고 강조했다.

법적으로 예산안 지연처리를 차단한 프랑스.  한경DB
법적으로 예산안 지연처리를 차단한 프랑스. 한경DB
프랑스는 법적으로 예산안 지연 처리를 근본적으로 차단하고 있다. 프랑스 정부는 10월까지 예산법안을 마련해 의회에 제출하고, 의회는 이를 70일 내에 처리하도록 돼 있다. 만약 처리하지 않으면 정부안은 ‘법률명령’으로 그대로 발효된다. 법률명령이란 국정수행을 위해 법률의 소관사항을 국무회의 의결만으로 발효시키고, 사후적으로 의회의 승인을 받는 형식이다.

영국은 예산안 처리 일정 자체가 법률로 정해져 있지 않다. 하지만 의회가 정부 예산안에 대한 수정 권한이 없어 처리 시간이 늦어질 일이 없다.

예외적인 사례는 미국이다. 미국 의회는 정부 예산안에 대한 전면적인 수정 권한이 있다. 올해 정부 ‘셧다운(일부 폐쇄)’과 같은 사례도 그래서 발생했다. 하지만 이들 국가 모두 한국보다 예산안 검토 기간이 길다는 공통점이 있다. 한국 국회의 예산안 심사기간은 60일이다. 반면 프랑스는 약 70일, 스웨덴은 90일, 영국과 미국은 각각 120일, 240일이다. 더 심도 있는 토론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이창수 국회예산정책처의 런던 파견관은 “영국, 독일, 프랑스 등은 예산에 대한 의회의 권한이 제한된 것이 특징”이라고 말했다.

미국 1월3일에 자동으로 국회 문 열어

대부분의 선진국에선 개원 협상이란 게 없다. 국회 문 여는 것을 놓고 한 달씩 시간을 끄는 일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정해진 일정대로 문을 연다. 미국은 1월3일 자동적으로 국회를 시작한다. 특히 미국은 다수당이 모든 상임위원장을 독식하는 구조라 상임위원장 자리를 놓고 한 달씩 신경전을 벌이는 한국의 밥그릇싸움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다른 선진국도 비슷하다.

선진국 국회엔 사·보임(辭補任)이란 개념 자체도 없다. 의원들의 소속 상임위를 지도부 임의로 바꾸는 것 자체가 상식과는 거리가 멀다. 정치 싸움에서 밀리지 않기 위한 ‘저격수 배치’ 차원인 사보임은 말 그대로 선진국에선 낯설기 만한 한국 정치의 어두운 단면이다.

선진국들은 의원의 겸직 금지 조항도 엄격하게 적용한다. 미국은 의원 연봉의 15%가 넘는 외부 수입은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독일 등 유럽 국가도 겸직 수익이 일정 수준을 넘으면 신고하도록 규제하고 있다. 의원들의 겸직 현황을 홈페이지에 투명하게 올리는 것도 주요 선진국들의 특징이다. 바른사회시민회의에 따르면 미국과 영국은 홈페이지를 통해 의원의 겸직 내용과 겸직으로 얻는 수익을 볼 수 있다. 독일, 캐나다 등은 공개하지는 않으나 시민의 요청이 있으면 열람이 가능하다. 공보에만 겸직 내용을 기록해 일반 시민들의 열람이 사실상 불가능한 한국과는 다른 모습이다.

특별취재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