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49년 - 독주하는 국회권력] 3만5000원 배지 달면 200가지 특권이 쏟아진다

지난해 A의원은 소득세와 지방소득세로 710만원을 냈지만 연말정산 때 모두 돌려받았다. B의원은 682만5354원을 세금으로 냈다가 682만5350원을 환급받았다. 실제로 낸 소득세는 단돈 4원에 불과하다.

국회 사무처가 국회의원 300명을 대상으로 지난해 소득세 납부액을 조사한 결과 전체의 17%인 51명이 10만원 미만을 낸 것으로 나타났다. 소득세를 한 푼도 내지 않은 국회의원도 37명에 달했다.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국회의원의 특권에 면세(免稅) 항목을 추가해야 할 판이다. 일반 봉급생활자에 비해 턱없이 낮은 소득세는 스스로 급여(세비)를 정하는 국회가 일반수당 등 과세 항목은 소폭 올리고, 입법활동비 등 비과세 항목을 대폭 올리는 ‘꼼수’를 쓴 결과다. 지난해 국회는 일반수당과 입법활동비를 각각 3.5%와 65%씩 차등 인상했다.

국회는 ‘특권 1번지’

“배지를 달면 100가지가 달라진다”는 말이 있다. 국회의원에게 주어진 권한 중 대표적인 것이 면책특권과 불체포특권이다. 두 특권의 존폐를 두고 잦은 논란이 빚어지지만, 한편으로는 입법권을 가진 그들의 직무수행에 필요한 권한이라는 주장도 있다.

‘금배지’를 단 뒤 이들이 받는 갖가지 혜택은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다. 국회의원이 받는 세비(일반수당)는 월 646만4000원으로 높은 편이 아니다. 하지만 여기에 관리업무비 정액급식비 입법활동비 특별활동비 등 비과세 항목들이 덕지덕지 붙어 의원 1인이 받는 월 평균 급여는 1100만원 수준으로 뛴다. 뿐만 아니다. 정근수당(연 646만4000원)과 명절휴가비(연 776만8000원)를 두 차례에 걸쳐 나눠 받는다. 여기에 가족수당(매달 배우자 4만원, 자녀 1인당 2만원)과 자녀 학비 보조수당(분기별 고등학생 44만6700원, 중학생 6만2400원)도 추가해야 한다.

이것은 모든 의원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급여 및 비급여 항목이고, 의원에 따라 연수입은 천차만별이다. 출판기념회나 후원회 등을 통해 연간 1억5000만원(선거 때 3억원)까지 주머니를 불릴 수 있어서다. 2000억여원을 들여 리모델링한 의원회관에 45평 규모의 널찍한 사무실에서 9명의 전용 보좌관을 두는 것도 다른 나라 국회에서는 보기 힘든 특권 사례로 꼽힌다. 사무실 운영비는 물론 9명 보좌관의 인건비도 전액 국가에서 지원한다. 의원 1인당 보좌진 급여 지원은 연간 3억6880만원에 달한다. 유류비와 차량 지원비(렌트비)도 월 145만8000원씩 지급된다.

이 밖에 철도·선박 무료 이용과 해외 출장 시 항공기 비즈니스석 무료 제공, 입출국 시 공항 수속 약식 처리, 보안검색 약식, 공항 귀빈실 이용, 골프장 이용 시 회원 대우, 연 2회 해외 시찰 국고 지원, 국회 내 편의시설 무료 이용 등….

한 시민단체는 일반인들에게 노출된 ‘금배지 특권’만도 200여개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특권 내려놓기” 셀프 개혁은 말뿐

올해 국회가 민생을 외면하고 정쟁만 일삼는다는 비난이 들끓으면서 의원들이 누리는 온갖 특혜에 여론의 집중포화가 쏟아졌다. “하는 일이 없는 만큼 세비를 절반으로 낮춰야 한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18대 국회에서 발의된 1만3913건의 법안 중 6301건이 상임위에서 논의조차 하지 않고 폐기됐다. 19대 들어서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특히 올 들어서는 여야가 ‘강(强) 대 강’ 대치 상황을 맞아 9월 한 달간 허송세월 보낸 후 여전히 민생 현안보다는 정쟁으로 일관하고 있다.

여론의 비난이 거세지자 국회는 지난 8월 국회쇄신특별위원회를 의욕적으로 출범시켰다. 위원회는 그동안 논란이 돼온 두 가지 특권을 손질하는 ‘셀프 개혁안’을 내놓고 흐지부지 활동을 멈췄다. 개혁안에는 국회의원 겸직 금지와 국회의원 평생연금 지급 중단이 포함됐다.

국회법 일부 개정안에 따르면 국회의원은 앞으로 국무총리 또는 국무위원, 공익적 활동이 목적인 명예직, 법률상으로 국회의원에게 임명 또는 위촉되는 직, 정당 직을 제외한 모든 종류의 겸직과 영리 목적의 업무를 겸직할 수 없다. 공무원, 농업협동조합, 수산업협동조합 및 중앙회 임직원, 교수들도 차후 당선되는 의원들의 경우 임기 개시일 전까지 해당 직을 사직해야 한다.

65세까지 전직 국회의원에게 지급되던 120만원의 평생연금제도도 19대부터 폐지하기로 했다. 월평균 소득액이 도시 근로자 가구당 월평균보다 낮은 전직 의원으로 자격 요건을 제한했고, 국회의원 재직이 1년 미만이거나 유죄판결 전력자 등은 연금수령 대상에서 빠졌다. 매년 1회 지급 대상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필요한 조사 및 소득조사도 실시하기로 했다. 하지만 19대 국회가 의원 1인당 세비를 18대에 비해 20% 인상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눈 가리고 아웅’ 식의 셀프 개혁안이란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됐다.

■ 특별취재팀

손성태 차장, 김재후 이태훈 기자(이상 정치부), 주용석 차장대우, 런던·헬싱키=김주완 기자(이상 경제부), 이태명 기자(산업부), 장진모 워싱턴 ·안재석 도쿄 특파원, 남윤선 기자(이상 국제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