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관계의 힘
1995년 미국 매사추세츠 메모리얼 병원. 쌍둥이 자매가 예정일보다 12주나 일찍 태어나는 바람에 인큐베이터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언니는 다행히 건강해졌지만 동생은 위태로워졌다. 의사들도 가망이 없다고 했다. 급기야 동생의 인큐베이터에서 긴박한 경고음이 울렸다. 그때 한 간호사가 언니를 동생 옆으로 데려가 눕혀 줬다. 뒤이어 놀라운 광경이 벌어졌다. 언니가 몸을 돌려 아픈 동생을 껴안아 주자 동생의 심장박동이 정상으로 돌아오는 게 아닌가.

최근 출간된 《관계의 힘》에서 이들의 사진을 보고 감동을 받았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포옹이 가장 위대한 기적을 만들어내는 장면이었다. 이 책의 주인공인 신팀장도 과거의 상처 때문에 사람들을 두려워하며 미숙아처럼 위태롭게 살아간다. 그러다 괴짜 노인으로부터 ‘우리 사이의 보이지 않는 끈을 아름답게 가꾸는 것이 곧 인생의 전부’라는 것을 배운다. ‘관심, 먼저 다가가기, 공감, 진실한 칭찬, 웃음’의 다섯 가지 법칙도 깨닫는다.

이 중에서도 말 못할 아픔이나 상처를 부드럽게 감싸안는 것은 공감이라는 끈이다. 공감은 ‘안에서 느끼다’라는 독일어에서 왔다고 한다. ‘아, 그럴 수 있겠구나’ 하는 공감능력은 곧 치유의 한 방법이다. 경기소방재난본부의 한 소방수가 인터넷 서평에 남긴 사연도 그렇다. 그는 재난 현장의 극심한 스트레스 때문에 힘들어하는 선후배들을 치유하는 동료상담지도사 얘기를 들려준다.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극한 상황에서 먼저 관심을 가져주고, 먼저 다가가고, 공감하며, 칭찬하고 웃는 과정을 통해 서로를 되살린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직장인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게 ‘일’보다 ‘관계’라고 한다. 10명 중 8명이 동료나 선후배와 불화를 겪고 3명 정도는 집에서도 가족과 대화를 하지 않는다니 참으로 각박하고 외로운 ‘불통의 시대’다. 그러나 “지식인은 어떤 사실을 알고 있고, 성공한 인물은 어떤 사람을 알고 있다”(존 디마티니)고 하지 않았던가. 철학자 키에르 케고르도 “행복의 90%는 인간관계에 달려 있다”고 했다. 그러니 《관계의 힘》에 나오는 것처럼 내가 먼저 마음을 열어보자. 실제로 만 명의 인맥보다 한 명의 친구를 갖는 게 더 소중하다고 한다.

오마르 워싱턴은 ‘나는 배웠다’라는 시에서 ‘아무리 마음 깊이 배려해도/ 어떤 사람은 꿈쩍도 않는다는 것’과 ‘신뢰를 쌓는 데는 여러 해가 걸려도/ 무너지는 것은 한순간이라는 것’을 깨닫고 나서 ‘남보다 내가 먼저 움직여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고 했다. 인간관계 역시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에게 대접하라’는 명구에 달렸다. 그래서 이를 황금률이라고 하지 않는가.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