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이 갖고 있던 시장을 외국계와 중견기업이 나눠 가진 것뿐입니다. 달라진 건 없습니다.”

지난 8월 정부세종청사 2단계 구내식당 위탁운영자를 뽑기 위한 입찰설명회에는 국내 중소 급식업체 20곳이 참석했다. 하지만 이들 대부분은 입찰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정부가 제시한 식단가 3500원을 맞추기도 어려웠지만 아라코와 동원홈푸드, 풀무원 계열의 ECMD 등이 각축전을 벌이는 자리에 들러리만 설 뿐이라는 판단에서다.

○약진하는 외국계 급식업체


정부가 지난해 3월 대기업의 공공기관 구내식당 위탁운영을 금지한 후 1년6개월이 지났지만 시장은 정부의 기대와는 딴판으로 움직이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건 외국계 기업의 약진이다. 이번에 세종청사 급식권을 따낸 아라코는 지난해와 올해 신용보증기금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기술보증기금 도로교통공단 다산콜센터 등 대형 공기업의 구내식당 운영권을 확보했다. 모두 삼성에버랜드와 동원홈푸드 등 국내 기업이 갖고 있던 급식 인원 500명을 훌쩍 넘는 노른자 사업장이다. 아라코는 지난해 12월 세종청사 1단계 입주 당시 구내식당 입찰에 참여했다. 이때는 동원홈푸드에 밀려 운영권을 얻지 못했지만 1년 만에 정부 청사의 급식권을 따냈다.

한 중견 급식업체 관계자는 “올 들어 아라코가 사업권을 따낸 공공기관이 알려진 곳만 10곳이 넘는다”며 “정부의 대기업 배제 방침 이후 시장점유율이 무서울 정도로 상승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라코의 지난해 매출은 945억원에 불과하다. 하지만 100% 지분을 가진 미국 본사인 아라마크는 연매출 15조원 규모의 글로벌 기업으로 해외 20여개국에 진출해 있다. 아라마크 외에도 연매출 25조7000억원 규모의 프랑스 급식기업 소덱스도 국내에 진출, 시장을 빠르게 잠식하고 있다.

○중소 급식업체는 여전히 찬밥


지난해 서울시가 운영하는 다산콜센터 구내식당 운영권 입찰에는 아라코와 풀무원 두 곳만 참여했다. 한 중소 급식업체 S사 관계자는 “식단가와 품질, 식품위생에서 우리는 외국계와 도저히 경쟁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결과가 뻔한데 뭣하러 헛돈을 쓰겠느냐”고 말했다. 다른 중소기업 관계자도 “대형 공기업은 하루평균 1000명 이상 급식사업 경험자나 매출 300억원 이상 업체 등으로 입찰 참가 자격을 원천적으로 제한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자산 규모 5조원 이상 상호출자제한 대기업에 대해 공공부문 급식시장 퇴출을 결정한 지난해 3월 기획재정부의 결정은 중소기업에 아무 효과가 없다는 푸념이 나오고 있다. 상위 5개 업체가 차지하고 있던 75%의 시장점유율을 중견기업과 외국계 기업이 잠식하는 구도로 변화됐을 뿐, 중소업체가 끼어들 틈은 전혀 없다는 얘기다.

○예상치 못한 결과에 정부도 당황

업계 1위인 아워홈은 정부의 방침이 나온후 급식인원 1100명인 국립중앙도서관을 비롯 수출입은행(350명) 한국전력기술(740명) 일산직업능력개발원(350명) 등 계약 기간이 끝난 공공기관의 구내식당 운영권을 동원홈푸드와 ECMD 등에 뺏겼다. 정부가 의도한 중소 급식업체에 운영권이 돌아간 곳은 한 군데도 없다. 한국전력 구내식당은 업계 5위인 CJ프레시웨이에서 동원홈푸드로, 한국가스공사는 한화에서 LSC푸드 등 중견기업으로 넘어갔다.

당초 예상과 달리 중견기업과 외국계 기업으로 공공기관 급식시장이 쏠리자 정부도 곤혹스럽다는 반응다. 기재부 관계자는 “공공기관 자체적으로 외국계는 제외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하지만 아라코 측은 “외국계 기업과 국내 기업을 차별한다면 좌시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한 대기업 급식업체 관계자는 “정부의 근시안적인 정책으로 다른 정부 조달 분야와 마찬가지로 안방시장만 외국계에 내준 꼴”이라고 비판했다.

이심기/ 최만수/ 김우섭 기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