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 펑크로 갑자기 맡게된 리골레토 질다役, 늘 내 자리라 생각하고 준비하지 않았더라면…"
소프라노 신영옥 씨(사진)에게 ‘질다’라는 배역은 남다른 의미가 있다. 베르디의 오페라 ‘리골레토’에 등장하는 비련의 이 여주인공 역을 세계 최고 오페라극장인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메트)에서 100번 이상 연기했기 때문이다.

그가 2003년 이후 국내에서 10년 만에 질다로 분해 한국 관객들과 만난다. 15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콘서트 오페라를 통해서다. 콘서트 오페라는 연주회 형식으로 진행되는 공연으로 무대 세트 없이 전 곡을 들려준다. 공연을 앞두고 신씨와 이메일 인터뷰로 만났다.

“모든 작품에 애착이 가지만 특히 지금의 저를 있게 만들어준 질다는 참 고마운 역할입니다. 메트 콩쿠르 우승 이후 처음 맡은 여주인공 역이 질다였어요.”

그가 질다 역을 처음 맡은 것은 일종의 ‘사고’였다. 1991년 1월 메트에서 열린 리골레토의 질다 역은 동양인 최초로 메트에서 주역을 맡은 소프라노 홍혜경 씨의 것이었다. 신씨는 객석 3층 단원석에서 선배의 공연을 지켜보고 있었다. 1막이 끝나자 연출진이 그를 분장실로 불렀다. 감기에 걸려 공연을 계속할 수 없던 홍씨 대신 질다를 맡으라는 것이었다. 순식간에 드레스를 입고 가발을 쓰고는 무대로 뛰어나와 “나의 아버지!”라는 첫 대사를 외쳤다. 공연은 호평이었고 신씨는 다음 시즌부터 메트의 주역 배우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리골레토는 특히 좋아하는 오페라여서 언젠가 무대에 오르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준비를 철저히 했어요. 질다 역은 늘 제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정말 떨리면서도 제가 원하는 무대에 섰다는 자체만으로 행복하고 신났죠.”

평소 꾸준한 연습으로 예기치 않은 기회를 거머쥘 수 있었다는 뜻이다. 1997년 메트에서 공연한 벨리니 오페라 ‘청교도’ 때도 마찬가지였다.

“공연 전날 밤 메트의 캐스팅매니저가 전화해 내일 공연할 제1 소프라노가 감기에 걸렸고 커버 배우도 아프다는 거예요. 연기는 하지 않고 오케스트라에 맞춰 노래만 해도 좋으니 맡아달라는 얘기였죠. 평소 연습을 많이 한 곡이어서 밤 12시가 넘게 책을 보고는 오케이했어요.”

신씨는 다음날 한 시간 정도만 맞춰보고 무대에 올랐다. 그는 “다른 출연자들과 리허설할 시간도 없었으니 정말 무대 위를 제 마음대로 꾸미고 다녔다”며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용감했는지 모르겠다”고 떠올렸다.

이번 리골레토 공연(3만~12만원)은 신영옥과 함께 바리톤 프란체스코 란돌피, 테너 션 매테이가 무대에 설 계획이다. 스티븐 로드가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를 지휘한다.

이승우 기자 lees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