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액연봉 대명사 로펌도 '허리띠 졸라매기'
한 대형 로펌에 다니는 변호사 A씨는 최근 미국 법학석사과정(LLM) 이수를 포기하고 국내 한 대학원에서 전문 연수를 받기로 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100% 가까이 해외 연수를 택했지만 최근 사측에서 국내 대체 연수 과정을 신설하고 이를 권장해 마음을 바꿨다. A씨는 “사내 인사 평가에서 더 유리하다는 얘기도 있어 대체 연수를 고민하는 동료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대형 로펌들이 잇따라 해외 연수를 중단하거나 봉급을 줄이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 불황이 이어지면서 ‘해외 연수 100%’, ‘고연봉’이라는 업계 공식이 깨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해외 연수 대신 국내 연수로 대체

13일 법조계에 따르면 최근 법무법인 태평양은 해외 연수 대신 선택할 수 있는 유급 휴가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1년간 해외 연수를 가는 대신 현금 1억원과 3개월의 휴가를 받는 것이다. 한 로펌 관계자는 “1인당 연간 해외 연수 지원 비용이 1억원을 훌쩍 넘는 데다 3개월 만에 업무에 복귀하기 때문에 로펌 입장에선 효율적”이라고 평가했다.

입사 6년차 이상 변호사를 대상으로 미국 LLM을 운영해온 김앤장 법률사무소도 내년부터 대체 프로그램을 도입한다. 외국 로펌에 1~2년간 파견을 가거나 조세, 공정거래 등 특정 분야 전문 과정 연수를 선택할 수 있다. 김앤장 측은 “‘쉬고 오는’ 연수 대신 각자의 경력과 전문 분야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다각도로 개발 중”이라고 설명했다. 세종, 바른 등도 최근 국내 석사과정이나 중국 일본 등 아시아권 단기 연수 프로그램을 도입해 권장하고 있고, 화우도 내년 시행을 위해 대체 프로그램 개발에 들어갔다.

○초봉 삭감, ‘봉급 몰아주기’도

초봉을 삭감하거나 연봉 제도 자체를 손질해 비용 대비 효율을 높이려는 로펌도 늘고 있다. 대형 로펌의 초봉은 지난해까지 월 800만~1000만원(세후)이 많았지만 최근 들어 줄고 있다. 중대형 로펌 중 S사와 K사, H사 등은 올 들어 각각 봉급을 월 100만~300만원 삭감했다. D로펌은 최근 개인이 월급의 7분의 1을 반납하고 매달 성과가 가장 좋은 변호사에게 모두 지급하는 ‘몰아주기형’ 인센티브 제도를 도입했다. 한 로펌 파트너 변호사는 “주로 연차가 높은 중견 변호사들을 대상으로 ‘적자생존식’ 연봉제를 도입하는 곳이 많다”고 전했다.

○인수합병 등 주요 소득원 줄어

이 같은 변화는 경기 불황이 이어지면서 로펌의 재정 부담이 커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불황 여파로 부동산·기업 파이낸싱(금융), 해외 기업 인수합병(M&A) 분야 사건 수임 급감이 큰 요인이라고 법조계에서는 지적했다. 최근 대기업 형사 사건이 크게 늘면서 일부 로펌이 특수를 누리고는 있지만 이는 법무법인의 일부 팀에 한정된 것이어서 업계 전체적인 분위기와는 다르다는 게 법조계의 설명이다. 한 중소 로펌 대표 변호사는 “외국계 로펌의 국내 시장 진출이 본격화하고 있는 데다 지난해부터 매년 로스쿨 졸업생들이 쏟아지는 것도 한 원인”이라며 “당분간 허리띠를 졸라매는 데 고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소람 기자 r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