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연장근로, 노사합의 필요한 이유
프랑스의 좌파 사회당 정권이 1998년 주당 법정 근로시간을 39시간에서 35시간으로 단축시키는 ‘오브리법’을 통과시켰을 때, 프랑스 기업들 사이에선 “기업 해먹기 힘들게 됐다”는 우려가 터져 나왔다. 당시 마르틴 오브리 노동부 장관은 노동시간을 10% 단축할 경우 비용을 더 들이지 않고도 70만개의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되고, 10%까지 치솟은 실업률은 상당 부분 해소될 것이라고 장담했다.

하지만 2000년부터 시행된 이 제도로 인해 일자리가 생기기는커녕 인건비만 증가하고, 기업 경쟁력은 갈수록 떨어졌다. 그녀에게는 ‘프랑스병(病)의 근원’을 제공한 장본인이란 비난이 쏟아졌다. 2003년 8월 프랑스 여론조사기관인 SCA가 일반국민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67%가 “근로시간 단축이 일자리 창출에 전혀 도움이 안된다”고 응답했다.

명분 집착하면 부작용 초래

고용 창출과 ‘노동자 삶의 질 향상’이라는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운 오브리법은 결국 수술대에 오르는 운명을 맞았다. 우파 시라크 정권은 2005년 연간 130시간에 묶여 있던 초과근로시간을 220시간으로 확대했고, 주당 초과근로시간도 13시간까지 허용키로 해 주 35시간 근무제를 사실상 폐지했다.

현실을 외면한 정치적 선택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대만에서도 근로시간 단축은 정치권의 뜨거운 관심사다. 2000년 선거에서 ‘근로시간 단축’을 약속한 천수이볜 민주진보당 당수가 정권을 잡은 뒤 2001년부터 주 48시간의 근로시간을 ‘2주 84시간’으로 줄였다. 국민당의 마잉주는 지난해 1월 선거에서 2주 84시간인 근로시간을 주당 40시간으로 줄이겠다는 공약을 내세워 승리했다. 하지만 기업 부담을 우려해 총통 취임 후 근로시간을 단축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 새누리당과 정부가 2016년부터 주당 근로시간을 현행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단축하는 내용의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마련, 올 정기국회에서 처리하기로 했다. 근로시간 축소에 따른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노사가 합의할 경우 연장근로를 늘리는 방안도 함께 도입키로 했다.

노사 자율결정에 맡겨야

정치권은 프랑스와 대만의 사례에 눈을 크게 떠야 한다. 현실을 외면한 채 정치적 명분에만 집착할 경우 실패의 전철을 밟을 게 뻔하다. 그런 점에서 상당히 현실적으로 근로시간을 줄여온 일본의 사례를 교과서로 삼으면 어떨까.

일본은 전체 근로자의 연간 근로시간이 2010년 기준 1754시간으로 한국(2193시간)보다 400시간 정도 짧다. 그런데 일본에선 파트타임 근로자가 전체 근로자의 24%에 달할 정도로 많은 반면 제조업의 실(實)근로시간은 2100시간을 넘을 정도로 생산활동도 왕성하다.

전 세계 자동차 판매시장에서 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일본 도요타 역시 평균 근로시간은 연간 2100시간을 넘는다. 일본에선 노사가 자율적으로 합의하면 장시간 연장근로도 가능하다. 주당 60시간 이상 일하는 근로자 비중이 전체 근로자의 9.5%로 500만명에 육박한다. 근로시간은 줄어야 한다. 하지만 규제를 통한 근로시간 단축은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근로시간 단축제도가 연착륙하기 위해선 일본처럼 권고안을 만든 뒤 노사 자율결정에 맡길 필요가 있을 것이다.

윤기설 좋은일터연구소장·노동전문기자 upyk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