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 매키니 전 HP 수석부사장은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손에 잡을 수 없는 것은 혁신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필 매키니 전 HP 수석부사장은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손에 잡을 수 없는 것은 혁신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미국 정보기술(IT) 거대 기업 휴렛팩커드(HP) 수석 부사장 겸 최고기술책임자(CTO). 미국 IT업계에서 ‘혁신의 예언가’로 통하는 필 매키니가 2년 전까지 가졌던 직함이었다.

한창 HP에서 활약하던 2008년 6월 매키니는 “사람들은 개인의 콘텐츠를 실시간 공유하려는 욕구를 폭발시킬 것이며 앞으로 모바일 인터넷 장비와 같은 관련 부문이 크게 발전할 것이다”라고 내다봤다. 그리고 이 말은 구글과 페이스북의 성공, 애플과 삼성의 스마트폰 경쟁 등으로 점점 현실화됐다. 매키니의 시장 예측력은 한층 더 인정받았고, 그의 몸값도 덩달아 올라갔다.

하지만 2011년 매키니는 남들이 선망하는 HP 부사장직을 갑자기 내던지고, HP보다 훨씬 규모가 작은데다 인지도도 낮은 중소기업 케이블랩의 최고경영자(CEO)가 됐다. 그리고 자신이 늘 꿈꿨던 ‘혁신 전도사’로서의 길을 택했다. ‘질문을 디자인하라’의 저자인 매키니와 지난주 전화 인터뷰를 했다.

[월요인터뷰] 필 매키니 전 HP 수석부사장 "스스로 천장을 깨부수는 혁신, 기업과 개인 모두에게 이젠 생존의 문제"
▷안정적인 HP 수석부사장직을 왜 떠났나?


“HP 부사장으로 9년4개월을 일했다. 나만의 새로운 일을 하고 싶었다. HP에서든 케이블랩에서든 나는 변한 게 없다. 케이블랩 CEO로서도, 혁신의 정신을 전파하는 코치로서도 열심히 살기에 전혀 아쉬울 게 없다. 지금도 HP 경영진과는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HP는 대기업이지만 창업 때부터 혁신의 정신이 충만한 회사다. HP의 시작이 1939년 창업주인 빌 휴렛과 데이비드 팩커드가 빌린 캘리포니아 팰로앨토의 한 창고에서였단 건 잘 알려진 이야기다. HP는 회사 전체에 혁신을 중시하는 분위기가 흐른다. 혁신 프로그램 오피스(Innovation Program Office·IPO)를 처음 만들었을 때도 경영진은 별 거부감 없이 받아들였다.”

▷평소 강조하는 혁신이란 무엇인가.


“혁신에 대해선 이미 수많은 정의가 있다. 그래서 나로선 거창하게 ‘혁신은 이것’이라고 던질 무거운 메시지가 있는지 모르겠다.(웃음) 하지만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기업이라는 조직에서 실현되는 혁신의 형태다. 비즈니스 무대에선 그저 머릿속에 맴도는 아이디어에만 그치는 것을 결코 혁신이라 부르지 않는다. 아무리 새로운 생각이라 해도 손으로 만질 수 있고 눈으로 볼 수 있는 제품이나 제도로 만들어져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는 게 아니라면 그것은 혁신이 아니다. 또한 기존의 것을 약간 변형한 것만 가지고는 혁신이라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진정한 혁신은 기존에 없던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과거에 존재하지 않던 것을 떠올려 만들어낸다면 그것이 바로 혁신이다.”

▷혁신에서 ‘킬러 퀘스천’을 강조하는데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다. 내가 ‘킬러(killer)’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킬러 퀘스천이 기존의 고정관념을 전부 부수고자 하는 목적을 가진 질문이란 의미를 분명히 나타내기 위함이었다. 일상적인 질문 모두를 킬러 퀘스천으로 만들기 위해 애쓸 필요는 없다. 지금 인터뷰를 위해 나누는 질문은 중요한 질문이지만 킬러 퀘스천은 아니다. 기자와 인터뷰하면서 나누는 질문이 킬러 퀘스천이 되면 서로 얼마나 머리가 아프겠나. 내가 말하는 킬러 퀘스천이란 뭔가를 만들어내기 위한 브레인스토밍을 위한 질문이다. 이 과정에서 사람들의 통념을 깨고, 물음과 대답을 멈출 수 없도록 만드는 질문이다.

▷좋은 킬러 퀘스천의 예를 든다면?

“좋은 킬러 퀘스천은 ‘왜(why)’가 아니라 ‘어떻게(how)’를 묻는 것이다. 전자가 어떤 일의 결과를 묻는 것이라면, 후자는 그 일이 벌어진 과정을 알고 싶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과정을 알면 그 속에서 또 다른 질문과 해답을 얻을 수 있다. 예를 들어 ‘고객이 왜 이 제품을 싫어할까?’와 ‘고객이 어떻게 해서 이 제품을 싫어하게 됐을까?’란 두 가지 물음은 다른 차원의 질문이다. 앞의 질문을 받은 사람 대부분은 받자마자 거부감을 느껴 변명성 대답을 한다. 하지만 뒤의 질문을 받은 사람들은 그렇게 된 경위를 설명한다. 두 대답은 매우 엄청난 차이의 결과를 낳는다.”

▷킬러 퀘스천의 세 가지 키워드로 ‘누구·무엇·어떻게’를 꼽았다.


“대부분의 기업이 ‘무엇(what)’에만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레스토랑을 예로 들어보자. 만일 레스토랑에서 어떤 음식을 만드는지에만 신경을 쓴다고 생각해봐라. 사람들이 레스토랑에 무조건 밥만 먹으러 가나? 연인과 데이트를 하거나, 공적인 회의를 하는 등 다양한 목적이 있을 것이다. 레스토랑에 주로 오는 고객이 어떤 사람들인지 생각해야 한다. 그것이 ‘누구(who)’다. 누가 주 고객층인지를 따져 거기에 맞춰 레스토랑의 콘셉트를 만들고 그에 맞는 혁신을 해야 한다. 그리고 ‘어떻게(how)’는 레스토랑 홀 뒤의 주방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을 총칭한다고 보면 된다. 주방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어떤 위기 상황이 닥칠지도 모른다. 그것에 항상 대비해야 한다. 이 세 가지를 따지지 않는 비즈니스는 성공하지 못한다고 본다. 정말 간단한 키워드지만 많은 사람과 기업들이 이것을 실천하지 못한다.”

▷‘혁신의 단계에서 가장 어려운 건 실천’이라 말했다.

“두려움과 오만함 때문이다. 둘 중 하나때문만일 수도 있고, 두 가지 이유가 뒤섞일 때도 있다. 조직이 작을수록 두려움이, 클수록 오만함이 실천의 방해요인이 될 때가 많아진다. 하지만 내 생각엔 이 오만함도 결국엔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다른 형태로 나타나는 것과 같다고 본다. 동전의 양면처럼.”

▷혁신의 4단계로 꼽은 ‘파이어(FIRE)’란 무엇인가?

“집중(focus)과 아이디어 창출(ideation), 아이디어 등급 평가(ranking)와 실행(execution)의 네 가지 머리글자를 따온 것이다. 내 생각엔 이건 개인이든 중소기업이든 대기업이든 국가든 어느 주체든 상관없이 똑같이 적용된다고 본다. 대부분의 경우 ‘R 단계’까진 잘 나가다가 ‘E 단계’, 즉 실천에서 좌절한다. 결단을 못하기 때문이다. 결단을 내릴 수 있도록 옆에서 조언하는 것이 나의 역할이다.”

▷책에서 말한 ‘핵심 인재’와 ‘기업 항체’의 차이는 무엇인가?

“아마 ‘기업 항체(corporate antibody)’란 말이 낯설기 때문에 한 질문같다. 내가 항체란 표현을 쓴 이유는 조직에서 ‘기업 항체’ 유형의 사람들이 새롭고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마치 외부의 병균처럼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우리 몸에선 병균이 침입할 경우 항체를 동원해 방어막을 형성한다. ‘기업 항체’들도 혁신을 대할 때 이와 똑같은 기제로 움직인다. 혁신을 극도로 싫어한다. 그들을 죽일 수도 있는 세균과 같은 존재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핵심 인재와 ‘기업 항체’의 차이점은 새로운 일을 추진할 때 닥칠 지 모를 위험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알 수 있다. 핵심 인재들은 자신의 아이디어와 그에 따른 위험을 감수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하지만 ‘기업 항체’는 기득권을 지키려는 성향이 강하기 때문에 그럴 수 없다.”

▷조직에서 ‘기업 항체’가 핵심 인재로 대접받는 경우도 많지 않은가.

“맞다. 그런 경우가 매우 많다. 그 이유는 조직에선 ‘기업 항체’의 논리가 훨씬 더 효율적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기업 항체’들은 자신이 그동안 쌓아온 명예와 권력을 무너뜨리지 않기 위해 어떤 일이든 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조직에서 ‘기업 항체’의 힘이 매우 막강할 경우 될 수 있는 한 싸우지 말고 유연하게 대처하되 정 안 되면 피하는 방법을 택하라고 권한다. 안타깝지만 그것이 현실이다. 중요한 포인트는 어떤 상황에서든 혁신의 정신만큼은 잃지 않는 것이다.

▷핵심 인재를 길러내는 교육도 중요할 텐데, 현재 교육 시스템을 어떻게 보나?

“세계적으로 너무나 유감스러운 상황에 처해 있다. 최근 세계 각국 교육의 가장 큰 문제점은 비판적 사고 기술을 가르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혁신을 할 수 있는 사람을 키우는 게 아니라 그저 노동자를 길러내는 교육이다. 이것이 가장 큰 걸림돌이다. 교육은 혁신과 킬러 퀘스천의 존재와 실천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건이다. 혁신에 필요한 핵심 인재를 길러내는 일은 개인과 가정, 학교와 정부 국제기구 등 모두가 조화로운 팀이 돼야 비로소 가능하다. 하지만 지금으로선 이런 교육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교육 현장에서 ‘현실에 안주하라’고 가르치는데 무엇이 되겠나.”

▷그렇다면 성인들도 새로운 교육이 필요하다는 뜻인가?

“맞다. 이것은 비단 청소년에게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금융위기 후 5년이 지났다. 모든 것이 변했다. 과거의 기준은 전부 무너져내렸다. 특히 내가 속해 있는 IT업계는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기기가 나오고 패러다임이 변한다. 이런 상황에선 자기 스스로 천장을 깨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창조 경제’가 화두인 한국에 조언을 한다면.


“한국은 과거 패스트팔로어(fast follower, 빠른 추격자)의 전형으로 평가받았다. 하지만 삼성 LG와 같은 기업을 보면 한국은 이제 반도체와 전자기기 부문을 중심으로 혁신을 일궈가고 있다. 사실 국가가 모든 분야에서 혁신을 추진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국가적 측면에선 자국의 특화 분야를 정해 패스트팔로어 전략을 적절히 구사하다가 혁신을 이루는 것도 좋은 전략이라고 본다. 한국은 이미 그 전략에 성공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창조 경제란 것이 단숨에 되는 것은 아니란 점을 유념했으면 한다. 창조 경제란 1년이나 3년, 5년 안에 이뤄지는 게 아니다. 적어도 10년 이상은 걸리는 장기 프로젝트로 작업을 해나가야 한다. 5년 안에 뭔가를 해낼 수 있으리라는 것은 착각이다.”

■ 필 매키니는

필 매키니(53)는 미국 시카고 일리노이주립대(UIC)에서 정보공학을 전공했고, 미국 정보기술(IT) 컨설팅 기업 CSC와 텔리그넷 등을 거쳐 2002년부터 2011년까지 9년간 휴렛팩커드(HP) 수석 부사장 겸 최고기술책임자(CTO)로 일했다. HP 부사장 시절 HP 내에 혁신 프로그램 오피스(IPO·Innovation Program Office)를 설치, ‘메타워치’ 등 다양한 신제품 개발을 이끌었다.

현재는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있는 IT 중소기업 케이블랩의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로 재직 중이다. 또 연간 100여차례 기업과 대학 등을 대상으로 워크숍을 하고, 팟캐스트 ‘킬러 이노베이션’을 운영하고 있다. 아울러 트위터와 페이스북, 자신의 홈페이지(philmckinney.com)를 통해 활발하게 대중과 소통한다. 미국 월간지 베니티 페어에선 그를 ‘이노베이션 구루(현자)’라고 칭했다.

그의 책 ‘명확함을 넘어서(Beyond the Obvious)’는 이달 초 한국어판 ‘질문을 디자인하라(한국경제신문)’는 제목으로 출간됐다.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