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49주년 - 기로에 선 신흥국…20억 시장을 가다] 숨은 '규제의 칼'에 위협받는 비즈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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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공서들 뒷돈 요구하거나 에어컨·컴퓨터 설치 바라기도
기업 진출땐 세제혜택 환상 접어야
기업 진출땐 세제혜택 환상 접어야
법 따로 현실 따로 은행 최소자본금 법엔 1500만弗, 실제론 3억弗 요구
차값보다 세금이 더 비싸 현대차 투싼 차값 2만7670弗에 세금 3만1101弗
고용 규제가 기가막혀 주재원 2명 이상 두면 1명당 터키근로자 5명 뽑아야
외국인 이중잣대는 흔한 일 월세 1000弗 집, 계약하러 가면 2000弗 불러
“터키 은행법상 은행업에 필요한 최소 자본금은 3000만리라(약 1500만달러)입니다. 그런데 터키 금융당국이 실제 요구하는 자본금은 3억달러 이상입니다. 3억달러나 내고 터키에서 장사할 국내 은행이 어디 있겠습니까.”
지난 1일 이스탄불에서 만난 이종상 외환은행 현지 사무소장은 터키의 은행업 규제에 불만을 털어놨다. ‘법 따로, 현실 따로’라는 것이다. 한때 이스탄불에 지점 설립을 추진했던 우리은행, 산업은행이 이 규제에 막혀 터키에서 철수했다. 현재 터키에 남아 있는 국내 은행은 외환은행 한 곳뿐이다. 이스탄불 시장 동향을 체크하는 ‘연락 사무소’ 수준으로 직원은 한국인 주재원 1명과 현지 직원 1명뿐이다. 이 소장은 “터키에 진출한 한국 기업이 100여곳에 불과하고 교민도 2400명 정도”라며 “3억달러나 내고 장사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터키에는 밖에서 보면 잘 드러나지 않는 ‘숨은 규제’가 많다. 현지에 진출한 국내 기업들은 “생각만큼 비즈니스하기가 쉽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무엇보다 갑작스런 정책 변경이 문제다. 작년 말 터키 정부는 소형차(배기량 1600㏄ 미만)에 붙는 특별소비세를 차값(출고가)의 37%에서 40%로 올렸다. 국민 생활에 밀접한 세금을 올리면서 사전 입법예고조차 없었다. 소형차를 주로 판매하는 현대차 터키 법인엔 날벼락이었다. 진병진 현대차 이즈미트 공장장은 “정부 정책에 맞춰 사업계획을 짜는데 하루아침에 정책이 바뀌면 황당하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터키의 자동차세는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이다. 현재 소형차는 차값의 40%, 중형차(1600㏄ 이상~2000㏄ 미만) 80%, 대형차(2000㏄ 이상)는 130%의 특별소비세가 붙는다. 또 차값과 특별소비세를 더한 가격의 18%가 부가가치세로 붙는다. 이렇다보니 중·대형차는 차값보다 세금이 더 비싸다. 예컨대 현대차가 판매하는 중형차 ix35는 원래 차값이 2만7670달러인데 세금이 3만1101달러나 된다. 최종 소비자 판매가격은 5만8771달러로 껑충 뛴다. 서민들에겐 그림의 떡일 수밖에 없다.
외국 기업 주재원은 자동차세를 일부 감면받을 수 있긴 하다. 하지만 일단 세금을 낸 뒤 나중에 출국할 때 돌려받는 방식이어서 자동차 구매 단계에서 ‘목돈’이 있어야 한다. 게다가 기름값도 L당 4.8리라(약 2650원·휘발유 기준) 수준으로 한국보다 비싸다.
고용 규제는 까다롭기 짝이 없다. 외국 기업이 주재원 2명 이상을 둘 경우 주재원이 1명 늘 때마다 터키 근로자를 5명 이상 채용해야 한다. 주재원이 1명이면 터키 근로자를 고용하지 않아도 되지만 주재원이 2명이면 터키 근로자 5명, 주재원이 3명이면 터키 근로자 10명을 뽑아야 한다. 이 때문에 터키에는 주재원이 1명뿐인 1인 사무소가 많다.
기업의 사회보장세 부담도 크다. 연금, 의료보험 등 사회보장세는 근로자 연봉의 36.5%에 달한다. 이 중 기업이 지급해야 할 몫은 20%가량이다. 한국에선 4대보험료(국민연금, 건강보험, 고용보험, 산재보험) 비율이 근로자 연봉의 23%(제조업 기준) 수준이고 기업 부담이 15%가량인 것과 비교하면 기업 부담이 크다.
관공서들이 기업에 ‘뒷돈’을 요구하기도 한다. 터키에 진출한 국내 기업 관계자는 “지역 공공기관이나 경찰서에서 자기들 사무실에 컴퓨터나 에어컨을 설치해달라고 요구하거나 심지어 돈을 달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고 귀띔했다.
생각만큼 사업 기회를 잡기도 어렵다. 건설 부문이 대표적이다.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보스포루스해협 제3대교 공사 현장에서 만난 김정훈 SK건설 부장은 “터키는 인프라가 부족해 사회간접자본(SOC) 공사가 많지만 일부 고난도 공사를 제외하면 한국 건설업체가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터키 건설업체의 기술력이 한국의 80~90% 수준인 데다 터키 정부가 자국 건설업체를 우대하기 때문이다.
세제 혜택에 대한 환상은 접는 게 좋다. 이상광 KOTRA 이스탄불 무역관장은 “터키는 전국을 지역별로 1~6등급으로 나눠 투자 기업에 대한 법인세 감면율을 차등 적용한다”며 “이스탄불 같은 대도시에 투자하는 기업은 연구개발(R&D) 투자 등 일부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세제 혜택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외국인에 대한 이중잣대도 흔하다. 이스탄불에 거주하는 홍승현 포스코 이즈미트 공장 영업부장은 “부동산 중개업소에 알아보면 분명 월세 2000리라짜리 집인데 한국인이 계약하러 가면 월세가 2000달러(약 4000리라)로 바뀐다”며 “집주인이 외국 주재원에게는 단위를 (리라에서 달러로) 바꿔 부른다”고 혀를 내둘렀다.
이스탄불·앙카라·이즈미트=주용석 기자 hohoboy@hankyung.com
특별취재팀 브라질=남윤선 기자, 박래정 LG경제硏수석연구위원, 인도네시아=김보라 기자, 이지선 선임연구원, 멕시코=노경목 기자, 김형주 연구위원, 터키=주용석 차장대우, 정성태 책임연구원, 인도=이정선 차장대우, 강선구 연구위원
차값보다 세금이 더 비싸 현대차 투싼 차값 2만7670弗에 세금 3만1101弗
고용 규제가 기가막혀 주재원 2명 이상 두면 1명당 터키근로자 5명 뽑아야
외국인 이중잣대는 흔한 일 월세 1000弗 집, 계약하러 가면 2000弗 불러
“터키 은행법상 은행업에 필요한 최소 자본금은 3000만리라(약 1500만달러)입니다. 그런데 터키 금융당국이 실제 요구하는 자본금은 3억달러 이상입니다. 3억달러나 내고 터키에서 장사할 국내 은행이 어디 있겠습니까.”
지난 1일 이스탄불에서 만난 이종상 외환은행 현지 사무소장은 터키의 은행업 규제에 불만을 털어놨다. ‘법 따로, 현실 따로’라는 것이다. 한때 이스탄불에 지점 설립을 추진했던 우리은행, 산업은행이 이 규제에 막혀 터키에서 철수했다. 현재 터키에 남아 있는 국내 은행은 외환은행 한 곳뿐이다. 이스탄불 시장 동향을 체크하는 ‘연락 사무소’ 수준으로 직원은 한국인 주재원 1명과 현지 직원 1명뿐이다. 이 소장은 “터키에 진출한 한국 기업이 100여곳에 불과하고 교민도 2400명 정도”라며 “3억달러나 내고 장사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터키에는 밖에서 보면 잘 드러나지 않는 ‘숨은 규제’가 많다. 현지에 진출한 국내 기업들은 “생각만큼 비즈니스하기가 쉽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무엇보다 갑작스런 정책 변경이 문제다. 작년 말 터키 정부는 소형차(배기량 1600㏄ 미만)에 붙는 특별소비세를 차값(출고가)의 37%에서 40%로 올렸다. 국민 생활에 밀접한 세금을 올리면서 사전 입법예고조차 없었다. 소형차를 주로 판매하는 현대차 터키 법인엔 날벼락이었다. 진병진 현대차 이즈미트 공장장은 “정부 정책에 맞춰 사업계획을 짜는데 하루아침에 정책이 바뀌면 황당하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터키의 자동차세는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이다. 현재 소형차는 차값의 40%, 중형차(1600㏄ 이상~2000㏄ 미만) 80%, 대형차(2000㏄ 이상)는 130%의 특별소비세가 붙는다. 또 차값과 특별소비세를 더한 가격의 18%가 부가가치세로 붙는다. 이렇다보니 중·대형차는 차값보다 세금이 더 비싸다. 예컨대 현대차가 판매하는 중형차 ix35는 원래 차값이 2만7670달러인데 세금이 3만1101달러나 된다. 최종 소비자 판매가격은 5만8771달러로 껑충 뛴다. 서민들에겐 그림의 떡일 수밖에 없다.
외국 기업 주재원은 자동차세를 일부 감면받을 수 있긴 하다. 하지만 일단 세금을 낸 뒤 나중에 출국할 때 돌려받는 방식이어서 자동차 구매 단계에서 ‘목돈’이 있어야 한다. 게다가 기름값도 L당 4.8리라(약 2650원·휘발유 기준) 수준으로 한국보다 비싸다.
고용 규제는 까다롭기 짝이 없다. 외국 기업이 주재원 2명 이상을 둘 경우 주재원이 1명 늘 때마다 터키 근로자를 5명 이상 채용해야 한다. 주재원이 1명이면 터키 근로자를 고용하지 않아도 되지만 주재원이 2명이면 터키 근로자 5명, 주재원이 3명이면 터키 근로자 10명을 뽑아야 한다. 이 때문에 터키에는 주재원이 1명뿐인 1인 사무소가 많다.
기업의 사회보장세 부담도 크다. 연금, 의료보험 등 사회보장세는 근로자 연봉의 36.5%에 달한다. 이 중 기업이 지급해야 할 몫은 20%가량이다. 한국에선 4대보험료(국민연금, 건강보험, 고용보험, 산재보험) 비율이 근로자 연봉의 23%(제조업 기준) 수준이고 기업 부담이 15%가량인 것과 비교하면 기업 부담이 크다.
관공서들이 기업에 ‘뒷돈’을 요구하기도 한다. 터키에 진출한 국내 기업 관계자는 “지역 공공기관이나 경찰서에서 자기들 사무실에 컴퓨터나 에어컨을 설치해달라고 요구하거나 심지어 돈을 달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고 귀띔했다.
생각만큼 사업 기회를 잡기도 어렵다. 건설 부문이 대표적이다.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보스포루스해협 제3대교 공사 현장에서 만난 김정훈 SK건설 부장은 “터키는 인프라가 부족해 사회간접자본(SOC) 공사가 많지만 일부 고난도 공사를 제외하면 한국 건설업체가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터키 건설업체의 기술력이 한국의 80~90% 수준인 데다 터키 정부가 자국 건설업체를 우대하기 때문이다.
세제 혜택에 대한 환상은 접는 게 좋다. 이상광 KOTRA 이스탄불 무역관장은 “터키는 전국을 지역별로 1~6등급으로 나눠 투자 기업에 대한 법인세 감면율을 차등 적용한다”며 “이스탄불 같은 대도시에 투자하는 기업은 연구개발(R&D) 투자 등 일부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세제 혜택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외국인에 대한 이중잣대도 흔하다. 이스탄불에 거주하는 홍승현 포스코 이즈미트 공장 영업부장은 “부동산 중개업소에 알아보면 분명 월세 2000리라짜리 집인데 한국인이 계약하러 가면 월세가 2000달러(약 4000리라)로 바뀐다”며 “집주인이 외국 주재원에게는 단위를 (리라에서 달러로) 바꿔 부른다”고 혀를 내둘렀다.
이스탄불·앙카라·이즈미트=주용석 기자 hohoboy@hankyung.com
특별취재팀 브라질=남윤선 기자, 박래정 LG경제硏수석연구위원, 인도네시아=김보라 기자, 이지선 선임연구원, 멕시코=노경목 기자, 김형주 연구위원, 터키=주용석 차장대우, 정성태 책임연구원, 인도=이정선 차장대우, 강선구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