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문·이과 융합 준비가 먼저다
배고프고 추워도 자식 공부만은 포기하지 않던 시절이 있었다. 부모의 교육열과 교육자의 헌신은 개천에서 용이 나게 했고, 우수인재 양성으로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의 밑바탕이 됐다. 과거 교육은 부모와 학생의 희망이고 나라의 미래였다. 지금은 어떠한가. 올해 ‘스승의 날’을 맞아 교총이 전국 초·중·고 교원, 학부모, 학생 총 2866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교원의 38.6%, 학부모의 59.3%, 학생의 49.7%가 ‘교육으로 고통스럽다’고 응답했다. 특히 고교생 10명 중 8명이 교육 고통을 호소했다. 학생, 학부모 모두 ‘명문대 등 학력 위주 교육 풍토’를 교육 고통의 가장 큰 원인으로 꼽았다. 이처럼 교육 고통지수 상승, 공교육 약화 및 사교육비 부담 등 우리가 당면한 교육 문제의 꼭짓점에 대학입시가 자리잡고 있다.

대입제도는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현재까지 ‘시험’을 기준으로 16번, 작은 개편까지 합치면 40여차례 바뀌었다. 대입제도가 이렇듯 조령모개식으로 바뀌는 탓에 학생, 학부모는 물론 학교 현장은 극심한 대입 개편 피로감을 느껴 ‘바꾸지 않고 제발 그냥 두었으면 좋겠다’라는 여론 또한 강하다. 지난 8월, 교육부가 대입전형 간소화와 문·이과 융합을 골자로 하는 2017학년도 수능체제 개편안을 발표했고, 이달 안에 최종 확정발표가 있을 예정이다. 현재의 문·이과 구분안과 일부 융합안, 완전 융합안 중 어느 것으로 결정하든 논란은 계속될 전망이다. 대입제도안 확정발표를 앞두고 교육부가 고려해야 할 몇 가지를 제안하고자 한다.

첫째, 학교 현장과 학생, 학부모의 준비성을 우선 고려해야 한다는 점이다. 2002년 7차 교육과정 개편으로 문·이과 구분은 교육과정상 없어졌지만 수능과 대입시에서는 엄연히 존재한다. 미래사회가 요구하는 융합적 사고력을 갖춘 인재 양성을 위해 문·이과 융합 방향은 필요하다. 그러나 당장 내년도 고교 신입생이 2017학년도 문·이과 융합 수능을 대비하기 위해서는 교과서 준비와 수업이 진행돼야 한다. 문제는 통합사회, 융합과학을 위한 교과서 준비와 교사 연수가 돼 있지 않다는 점이다. 교육 내용의 준비 없이 평가방법을 먼저 바꾸게 되면 큰 혼란이 발생한다. 이런 이유로 학교 현장은 문·이과 융합안이 바람직한 방향이라는 데는 공감하지만 ‘시기상조’라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둘째, 수능의 성격 규정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수능은 지금까지 ‘정상적인 교육과정을 이수한 사람이면 누구나 풀 수 있는 시험’으로 성격 규정이 돼 왔다. 그러나 매년 ‘불 수능’ ‘물 수능’으로 대별되는 난이도 논란과 우수학생을 뽑고자 하는 대학의 욕구와 변별력 확보라는 이유로 고등사고력을 요구하는 시험이 됐다. 이에 따라 고교 교육의 비정상화, 학생의 학습 부담 강화, 사교육비 부담 등 부작용의 근본적 원인이 되고 있다. 수능은 고등사고력 측정시험에서 탈피해 고교 수업 내용 기반의 국가기초학력평가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셋째, 무엇보다 대학의 책무성이 강조돼야 한다. 고등사고력은 고등교육기관인 대학에서 길러내야 한다는 점에서 보통교육에 고등사고력 자체를 지나치게 요구해서는 안 된다. 논술은 공교육 체제에서 대비 가능한 수준으로 난이도를 조정하고, 변별력을 위한 고난도의 문제 출제는 대학 스스로 자제해야 한다. 궁극적으로 논술 폐지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올해 63만명인 고교 졸업자 수가 2023년엔 40만명으로 줄어들게 된다. 따라서 대입제도 개선은 학교 교육 정상화와 교육 고통을 덜면서 학생 수 감소까지 감안한 장기적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 5년 단임제 정권은 임기 내 업적에 집착하게 된다. 그러나 대입제도는 땜질식 처방으로 성과를 낼 수 없다. 기본으로 돌아간다는 자세로 접근해야 한다.

안양옥 < 한국교총 회장, 서울교대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