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공동생활공간인 ‘초록반디의 집’의 보수 전(오른쪽)과 보수 후(왼쪽) 모습.
장애인 공동생활공간인 ‘초록반디의 집’의 보수 전(오른쪽)과 보수 후(왼쪽) 모습.
“엄마, 학교 다녀왔습니다~!”

18일 찾은 경기 안산시 초록반디의 집. 오후 3시가 되자 이곳에 사는 한솔이(10·가명)가 하교 차량에서 내려 집으로 들어왔다. 뇌병변장애1급인 한솔이는 다리가 불편하지만 큰 도움은 필요 없었다. 그는 출입구의 빗면을 따라 워커(보행 보조기구)를 끌고 와 신발을 벗은 후 벽을 따라 설치된 안전바를 힘줘 잡고 들어왔다. 한솔이는 준비된 간식을 먹으며 “오늘은 발야구 경기를 했는데 친구들이 웃긴 행동을 해서 재미있었다”며 “빨리 체육시간이 오면 좋겠다”고 활짝 웃었다.

오봉욱 초록반디의 집 원장은 “집이 바뀐 후엔 혼자서도 저렇게 뭐든 잘하고 표정이 밝아졌다”며 “생활 환경이 사람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고 말했다.

○맞춤형 리모델링으로 삶의 질 높여

2008년부터 운영돼 온 초록반디의 집은 뇌병변, 자폐, 지체 등 생활 수급 중증장애인이 사는 그룹홈(공동생활공간)이다. 현재 초·중등학생 5명과 원장, 보육교사가 함께 지낸다. 2010년 시설 개·보수에 나서기 전까지만 해도 이곳은 장애 아동들이 살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공간이었다. 작은 집 두 곳을 연결한 형태로, 가운데 통로가 좁아 휠체어가 다닐 수 없었다. 내부엔 안전바가 없어 바닥을 기어다니던 아이들이 문고리를 잡고 일어나려다 넘어져 다치기 일쑤였다. 겨울엔 방열이 안 돼 늘 찬 바닥에서 입김을 불며 생활해야 했다.

오 원장은 “화장실 욕조가 좁아 바닥에 매트를 깔고 씻겨야 하는데 여유 공간이 비좁고 바닥이 차가워 아이들을 씻길 때마다 큰 고생을 했다”며 “아이들 방에 있는 창이 작은 탓에 밖을 보기 힘들어 아이들이 늘 우울한 표정이었다”고 회상했다.

2010년 복지재단 따뜻한동행은 CM관리업체인 한미글로벌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이곳을 전면 개·보수했다. 들어오는 입구 계단과 턱을 모두 없애고 이동할 때 잡을 수 있도록 방마다 안전바를 설치했다. 방의 창문을 문 크기로 크게 내 채광과 통풍성을 좋게 하고, 아이들이 누워서도 자연을 볼 수 있게 했다.

한미글로벌 관계자는 “화장실은 욕조를 없앤 대신 장애인 전용 목욕 공간을 만들고 바닥 난방을 넣어 추운 겨울에도 따뜻하게 씻을 수 있다”며 “아이들 방에는 자연 색채로 벽을 마감하고 간접 조명을 설치해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꾀했다”고 설명했다.

○장애인들에게 새 삶을

집이 바뀌자 아이들의 생활도 눈에 띄게 달라졌다. 화장실 용무를 혼자 볼 수 있게 된 것은 물론, 학교 친구들을 집에 초대해 데려오기 시작했다. 자폐장애가 있는 민수(12)는 늘 교실에서 소변을 바지에 지려 말썽을 피웠지만 요즘은 그런 일도 줄고 행동이 차분해졌다. 얼마 전엔 처음으로 ‘먹고 싶다’는 표현까지 먼저 꺼냈다. 김진희 따뜻한동행 팀장은 “장애인 맞춤형 시설 개·보수를 통해 장애인들의 육체적 어려움을 덜 수 있는 것은 물론 태도 변화도 이끌어 낼 수 있다”고 말했다.

오 원장은 “계단이나 턱 등 비장애인에 맞춰 설계된 시설에 사는 탓에 외부와 단절된 채 홀로 사는 장애인 가정도 많다”며 “많은 장애인이 희망을 되찾을 수 있도록 기부가 활성화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정소람 기자 r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