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은 ‘세입자의 천국’으로 불린다. 공공임대주택 비율이 20%에 달하는 데다 지방정부가 적정 임대료까지 정해 세입자 보호에 나서고 있어서다. 그만큼 주택 구매 수요는 적고 부동산 시장도 안정돼 있다.

그런 독일 주택시장이 최근 심상치 않다. 독일 중앙은행인 분데스방크는 21일(현지시간) 월간보고서를 통해 “베를린, 뮌헨 등 7대 도시의 부동산값이 20% 정도 과대평가돼 있다”고 밝혔다. 2010년 대비 매매가가 평균 25% 상승했다는 것이 이유다.

분데스방크는 연 0.5%로 사상 최저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기준금리에 화살을 돌렸다. 유럽중앙은행(ECB)의 양적완화로 시중에 풀린 돈이 독일 주택시장으로 흘러들고 있다는 것이다. 옌스 바이트만 분데스방크 총재는 “양적완화 효과는 갈수록 줄어들고 금융시장 안정성도 위협받을 것”이라고 불편한 심기를 표출했다. 부동산 가격 상승은 경제 운용에 또 다른 걸림돌이기 때문이다.

미국 중앙은행(Fed)의 양적완화 축소가 예상되면서 세계 투자자들의 돈이 안전자산에 몰리고 있는 것도 이유다. 홍콩 부동산은 2008년 금융위기 이전 기록을 넘어섰으며 런던 신축 주택의 4분의 3은 외국인이 사들였다. 뉴욕과 로스앤젤레스 등 미국 대도시의 고급주택에도 투자 수요가 몰리고 있다. 분데스방크는 “미국과 유럽의 부동산 거품 붕괴 이후 수년간 조용하던 외국인 투자자들이 독일시장에 매력을 느끼고 있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독일이 ECB의 금리 인상을 이끌어내기는 힘들어 보인다. 스페인과 네덜란드 등 다른 유로존 주요 국가들이 여전히 경기침체에 시달리고 있어서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은행에 주택담보 대출과 관련된 준비금을 더 쌓도록 하는 등 미시적인 조정 정도가 가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