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기업어음(CP)과 신탁 규제를 자본시장법 시행 이전 형태로 되돌리는 방안을 추진한다. CP의 만기제한 규정을 다시 신설하고 특정금전신탁 편입 상품은 우량 자산으로 제한하는 게 골자다. 동양 사태가 과도한 규제 완화에서 비롯됐다는 판단에서다. 일각에선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에 나섰다는 비판도 나온다.
◆“CP 규제 완화는 패착”
금융당국 관계자는 “CP의 만기 1년 이상 발행을 전면 금지하고, 발행 과정에서 이사회 결의를 거치도록 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22일 밝혔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현재 이 같은 내용을 포함하는 CP 규제 강화 방안을 협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감사로 어수선한 분위기가 정리되는 대로 심도 있는 논의를 진행할 계획이다.
금융당국은 자본시장법 시행령을 고쳐서라도 현행 CP 제도를 손보지 않으면 동양 사태에서 불거진 ‘투자자 보호 이슈’를 해소하기 어렵다고 보고 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CP 규제 완화는 결과적으로 실패한 정책”이라며 “과거 증권거래법이 옳은 방향이라면 돌아가는 게 낫다”고 강조했다.
2009년 2월 시행된 자본시장법은 CP 발행 요건을 대폭 완화하고 만기 제한도 폐지했다. 그 결과 규제상 각종 이점을 누리기 위한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발행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등 감시체계에 허점이 발견되기도 했다. 동양그룹의 경우 회사채보다 금융당국의 감시가 느슨한 허점을 악용해 ‘장기 CP’를 발행, 개인투자자들에게 판매했다.
◆신탁·MMF도 규제
신탁의 경우 폐지됐던 ‘계열사 CP 편입 제한(신탁업 감독규정)’ 일부를 되살리는 동시에 각종 규제 회피 문제를 자세히 점검할 계획이다. 투자자 보호 장치가 전반적으로 미흡하다는 판단에서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모든 편입 상품의 신용등급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제한하는 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고 규제 강화 의지를 드러냈다.
신탁과 별도로 CP 수요의 또 다른 한 축인 머니마켓펀드(MMF) 규제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 8일 금융당국은 자산운용사들에 공문을 보내 “다음달 1일부터 MMF 가중평균만기(듀레이션)를 현행 90일에서 75일로 줄이라”고 주문했다. 한 자산운용사 채권운용본부장은 “비교적 만기가 길고 유동성이 떨어지는 CP의 편입 비중을 줄이라는 얘기”라며 “그동안 시행을 미뤄왔는데 동양 사태로 서두르게 된 것 같다”고 전했다.
일부 시장 관계자들은 ‘뒷북’ 대응이라는 비판을 내놓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크레디트 애널리스트는 “최근 수년간 신탁과 CP는 동전의 양면처럼 붙어 다니며 급속히 성장해왔다”며 “선진국과 반대로 유독 한국에서만 각종 규제를 피할 수 있는 그림자 금융(shadow banking)이 급성장하는 동안에도 금융당국은 손을 놓고 있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