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국영방송인 CCTV가 ‘삼성 때리기’에 나섰다.

CCTV는 지난 21일 ‘삼성은 내장 멀티미디어카드 문제를 피해갈 수 없다’는 제목의 30분짜리 프로그램에서 삼성 휴대폰의 문제점을 집중 부각시켰다. ‘외국 기업 길들이기’에 나선 중국 정부가 삼성을 다음 타깃으로 삼은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CCTV는 구입한 지 9개월밖에 안 된 갤럭시S3가 ‘먹통’이 되는 현상이 하루에도 수십번 일어났다는 한 소비자의 사례를 소개하며 그 원인이 ‘내장 멀티미디어카드’ 결함에 있다고 주장했다. 또 휴대폰 수리업자 등의 인터뷰를 통해서도 문제를 들춰냈다. 이달 초에는 신화망 등 다른 관영 매체들이 모 인터넷 사이트에 올라온 글을 인용해 갤럭시S4 배터리 폭발사고가 있었다는 내용을 전하며 삼성의 신뢰도에 의문을 제기했다.

CCTV는 삼성 스마트폰 갤럭시S와 갤러시노트가 갑자기 멈추는 심각한 제품 결함이 보상 범위에 들어가지 않아 소비자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모토로라에서 엔지니어로 근무한 장샤오룽은 인터뷰에서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 어느 쪽 문제이든, 삼성의 책임이 분명하다”고 말했다.

관영매체 공격 뒤 中정부 '손보기'…애플도 당해

CCTV에 출연한 추바오창 변호사는 “몇몇 제품의 결함인지 제품 자체의 질인지 파악해야 한다”며 “제품의 질이 낮은 것으로 결론난다면 부정직한 기업은 소비자권리법으로 처벌받아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른 중국 언론들도 보조를 맞추고 있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중국법에 따르면 휴대폰을 판매하거나 제조하는 업체는 같은 문제로 두 번 이상 수리를 했지만 고장이 반복되면 새로운 제품으로 교체해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삼성 측은 “기술적인 부분을 포함한 사실관계를 확인한 뒤 필요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며 “고객에게 최고의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중국 정부의 ‘외국 기업 때리기’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중국은 1991년부터 3월15일 소비자의 날이면 외자기업을 비판해왔다. 관영 매체들이 일제히 해당 기업을 비난하면 중국 정부가 조사에 들어가는 식이다.

2010년에는 노트북에 검은 색 줄이 생기는 문제와 서비스 보증 기간 문제 등을 들어 휴렛팩커드(HP)를 표적으로 삼았다. 2011년에는 재활용 고무 사용량을 준수하지 않았다며 금호타이어를, 2012년에는 맥도날드와 까르푸를 집중 비판했다. 지난 3월에는 애플이 보증 기간 등 소비자 서비스에서 중국 소비자를 차별하고 있다고 지적해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의 사과를 받아내기도 했다.

올해 들어 외자기업 비판은 더욱 빈번해졌다. 폭스바겐은 기준 이하의 동력전달장치를 탑재한 차를 팔고 있다는 보도 이후 38만4181대를 리콜했다. 지난 8월에는 프랑스 다농, 미국 미드존슨, 애보트, 뉴질랜드 폰테라 등 6개 분유업체가 가격 담합을 이유로 총 6억6873억위안(약 1218억원)에 달하는 벌금을 부과받았다. CCTV는 삼성 휴대폰 문제를 지적하기 하루 전날 ‘스타벅스:중국에서만 비싸다’라는 20분짜리 프로그램을 방영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외국계 기업들에 중국이 중요해지는 만큼 당국의 압력 우려도 커지고 있다”며 “이번 경우도 언론이 독자적으로 비판한 것인지 당국의 조사에 앞선 전주곡인지는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다”고 전했다.

강영연 기자/베이징=김태완 특파원 yy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