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글로비스의 스테나폴라리스호가 국적 선박으론 처음으로 북극항로 시범운항을 마친 22일 전남 여수 광양항 사포부두에서 열린 축하행사에서 김경배 현대글로비스 사장(앞줄 왼쪽 세 번째), 손재학 해양수산부 차관(네 번째), 칼 요한 하그만 스테나그룹 회장(두 번째) 등 주요 참석자들이 박수를 치고 있다. 신경훈 기자 nicepeter@hankyung.com
현대글로비스의 스테나폴라리스호가 국적 선박으론 처음으로 북극항로 시범운항을 마친 22일 전남 여수 광양항 사포부두에서 열린 축하행사에서 김경배 현대글로비스 사장(앞줄 왼쪽 세 번째), 손재학 해양수산부 차관(네 번째), 칼 요한 하그만 스테나그룹 회장(두 번째) 등 주요 참석자들이 박수를 치고 있다. 신경훈 기자 nicepeter@hankyung.com
신경훈 기자
신경훈 기자
한국 국적선 최초로 북극항로 운항에 나섰던 스테나폴라리스가 22일 새벽 광양항에 들어왔다. 지난달 17일 러시아 우스트루가항에서 나프타 4만4000여t을 싣고 떠난 지 35일 만이다. 이번 항해의 성공은 빙하가 녹으면서 개발이 가시화되고 있는 북극권 개발에 대한 한국의 의지와 역량을 대내외에 알렸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는 평가다.

◆북극권 개발 참여에 탄력

이번 항해에 동행한 남청도 해양대 교수는 “한국이 지난 5월 북극이사회 영구 옵서버 자격을 얻은 상황에서 북극항로 운항 성공으로 향후 북극권 개발에 참여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게 됐다”고 말했다. 또한 북극항로가 활성화될 경우 한국의 항만들이 국제 물류의 중심축으로 부상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황진회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 해운시장분석센터장은 “북극항로가 완전히 열리면 한국의 항만들이 거리에서나 기능적인 면에서 가장 유리한 곳에 있다”며 “세계 물류의 중심축이 바뀌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북극항로 시범운항 성공] 35일간의 북극항해…"한국, 세계 해양물류 새 거점으로"
하지만 이 같은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몇 가지 선결 과제가 있다. 우선 북극의 얼음 문제다. 북극의 얼음이 녹고 있어 2008년부터 상선의 항해가 가능해졌지만 해빙이 앞으로 어느 정도 이어질지는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다. 위성지도를 보면 올해는 얼음이 작년보다 오히려 늘어나 있는 상태다. 다음은 러시아 쇄빙선 문제다. 러시아가 제공하는 쇄빙선은 6대에 불과하다.

이승헌 현대글로비스 해기사는 “작년에는 총 46건의 북극항로 운항이 있었지만 올해는 60건이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며 “6대로 안내하면 일정 차질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기약 없는 쇄빙선

안전을 위해 엔진과 프로펠러를 2개씩 갖춘 스테나폴라리스는 선장2명의 지휘 아래 지난달 23일 북위 66도33분 북극권에 들어섰다. 어둡고 진눈깨비가 내리던 북극해의 하늘이 밝아지며 한국의 첫 항해를 반기듯 무지개가 떴다. 하지만 이것도 잠깐, 북극해는 심한 변덕을 부렸다.

지난달 25일 스테나폴라리스는 모진 풍랑으로 아이스파일럿을 태운 보트를 만나지 못해 하루를 허비하고 말았다. 이어 며칠 동안 망망대해를 순항하던 우리의 여정은 지난달 30일 얼음을 만나면서 반전됐다. 탑승객들은 환호성을 질렀지만 승무원들은 상당히 긴장한 모습이었다.

사샤 스테파노비치 선장은 “작년 이맘때는 북극항로 구간에 얼음이 거의 없었는데 올해는 상당히 늘어났다”며 “북극해의 얼음은 해마다 늘었다 줄었다를 반복한다”고 말했다. 첫 번째 쇄빙선을 기다리느라 하루를 기다린 스테나폴라리스는 얼음을 지나 항해를 계속했다.

이달 4일 우리 배는 두 번째 쇄빙선을 만나기 위해 북극해 한가운데 멈춰섰다. 바다는 온통 하얀 얼음으로 덮여 있었다. 북극의 얼음은 아름다웠다. 기자는 30년이 지나면 세상에서 사라질지도 모르는 북극해의 얼음을 열심히 카메라에 담았다. 그런데 선장이 어두운 얼굴로 나타났다. “쇄빙선이 언제 올지 모릅니다. 현재 다른 배를 안내하고 있는데 끝나면 오겠다는 연락만 있습니다. 시점은 얘기를 안 합니다.” 바스코 알렉산더 선장은 이렇게 말하고 조종실로 올라갔다. 우리는 3일 동안 얼음바다에 묶여 있어야만 했다. 그동안 바다코끼리 가족을 코앞에서 만날 수 있었다. 또한 먼발치에서나마 북극곰 한 마리가 지나가는 걸 목격하기도 했다.

◆해빙구간 1300㎞


다행히 6일 밤 쇄빙선을 만난 우리는 처음보다 단단해진 얼음을 뚫고 항해를 이어갔다. 가끔 쾅쾅거리며 얼음과 선박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지만 안전에는 문제가 없었다. 모두 1300㎞에 달하는 해빙 구간을 뚫은 스테나폴라리스는 11일 오후 드디어 북극권을 벗어났다.

22일 아침 스테나폴라리스는 호수처럼 잔잔한 여수 앞바다를 가르며 육지로 다가갔다. 항구에는 현대글로비스와 해양수산부, 그리고 이번에 배를 빌려준 스테나해운 관계자 등 환영객들의 환호성이 한국의 가을 하늘처럼 맑고 선명하게 울려 퍼졌다. “100여년 전 우리는 북극해가 있는 줄도 몰랐습니다. 21세기에도 넋 놓고 있어선 안 되겠지요. 북극항로를 개척하는 것은 세계 물류의 맥을 한국으로 끌어모으는 것입니다.” 남 교수는 이렇게 말하며 광양항에 발을 디뎠다.

광양=신경훈 기자 nicepet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