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후핵연료, 8년 잠복한 메가톤급 '갈등 이슈' 수면 위로
원자력발전 폐기물인 사용후핵연료 처리 방법을 논의할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원회’가 이르면 이달 말 출범한다. 국내 최고(最古) 원자력발전소인 고리 1호기의 사용후핵연료 포화 시기가 3년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경남 밀양 송전탑 사태보다 더한 사회적 격론을 일으킬 수 있는 ‘메가톤급 이슈’가 공론 테이블에 오르는 것이다.

◆공론화위 위원 추천 마무리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22일 “김영주 전 산업자원부 장관 등으로 구성된 추천위원회가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원회 위원 추천작업을 마무리 지었다”며 “이르면 이번달 안에 위원회가 출범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용후핵연료는 원자로 연료로 쓰인 핵연료 물질을 말한다. 경북 경주시에 건설하고 있는 중·저준위 방사성 폐기물(방폐장)과 달리 방사선과 열이 매우 강하다. 현재 처리시설이 없어 개별 원전 내 임시저장시설에 저장하고 있다.

문제는 2016년 부산 기장군 고리 원전을 시작으로 월성(2018년) 한빛(영광·2019년) 한울(울진·2021년) 등 사용후핵연료 임시저장소가 포화상태에 이른다는 점이다. 전국 23기 원전에서 한 해 발생하는 사용후핵연료는 700t. 2024년이면 국내 모든 원전의 임시저장시설이 꽉 찰 것으로 예상된다.

◆중간저장이 현실적 대안

사용후핵연료를 처리하는 방식은 크게 세 가지다. 우선 플루토늄 등 사용후핵연료에 남은 물질을 재사용할 수 있는 ‘재처리’가 있다. 하지만 한국은 한·미 원자력협정에 따라 현재로서는 재처리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지하 300~1000m에 수십만년간 묻는 ‘영구처분’을 할 수도 있지만 이 역시 한계가 있다. 부지 선정이 쉽지 않을 뿐더러 향후 사용후핵연료를 기술적으로 수월하게 재처리할 수 있게 될 때의 기대이익도 무시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서균렬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전 세계에서 사실상 스웨덴만 영구처분 방침을 정했다”며 “영구처분 여부는 처리 기술 개발 등을 고려해 장기적으로 결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중간저장’이 가장 현실적인 대안으로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영구처분 전까지 지상에 보관·관리하는 것이다. 수조(습식저장)나 콘크리트·금속용기(건식저장)에 통상 50년 정도 저장하는 방식이다.

◆부안사태의 ‘트라우마’


사용후핵연료 처리 방식이 정해진다고 해도 과제는 남는다. 바로 부지 선정 문제다. 아직 공론화 전이기 때문에 관련 여론은 잠잠한 편이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논의가 이뤄지면 부지 선정을 둘러싼 갈등은 걷잡을 수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대표적인 사례가 2003년의 이른바 ‘부안사태’다. 당시 김종규 부안 군수가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처리장 유치를 선언하자 지역 주민들은 강력 반발했다. 갈등이 1년 이상 진행되는 동안 주민들이 김 군수를 감금·폭행하는 사태가 벌어졌고 이에 연루된 160여명의 주민들은 사법처리됐다. 결국 주민투표에서 91.8%가 반대하는 바람에 부지 선정은 취소됐다. 정부는 2005년 경주를 새로운 방폐장 부지로 선정했지만 1986년 관련법을 만들고 부지 물색에 나선 지 무려 19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뒤였다.

문제는 정부가 이때 사용후핵연료 처리 부지를 동시에 선정하지 못했다는 것. 방폐장 문제로 한번 홍역을 치른 터라 방사능이 훨씬 강한 사용후핵연료 처리부지 문제는 엄두도 내지 못한 것이다. 당시 노무현 정부는 “국민적 공감대를 모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이 문제는 그로부터 8년 동안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때문에 사용후핵연료 문제를 다시 공론화하는 것이 정부로서는 여간 부담스럽지 않은 상황이다. 공론화위원회 위원으로 내정된 한 위원은 “사용후핵연료 문제는 부안 사태나 밀양 송전탑 건설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의 휘발성을 갖고 있다”며 “정부가 자칫 무게중심을 잘못 잡을 경우 엄청난 파장이 일 것”이라고 말했다.

■ 사용후핵연료

원자로 연료로 쓰인 핵연료 물질. 강한 방사선과 높은 열을 방출하기 때문에 사람이 접근할 수 없다. 고준위폐기물이라고도 불린다.

■ 중간저장

사용후핵연료를 처리 또는 영구처분하기 전까지 통상 50년 이상 저장하는 것. 수조에 보관하는 습식저장과 콘크리트나 금속 용기에 보관하는 건식저장으로 나뉜다.

조미현 기자 mwis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