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선 前 감독 "승부 스트레스·癌도 골프 덕에 이겨냈죠"
“농구 외길 인생을 걷는 저에게 골프는 친구 같은 존재입니다. 농구 세계에 살다 보면 복잡한 관계 속에서 많은 것에 신경 쓰며 살아야 하는데 골프는 혼자서 하는 운동이다 보니 마음을 비우고 싶을 때 딱 좋은 운동이죠. 암을 이겨낼 때도 큰 힘이 됐습니다.”

‘농구계의 골프 고수’ 최인선 전 SK 나이츠 프로농구 감독(63·사진)은 골프를 ‘힘들 때 찾아가는 친구’에 비유했다. 전원주택의 정원에서 매일 골프 스윙 연습을 한다는 최 전 감독을 22일 경기 광주 오포면에 있는 그의 자택에서 만났다.

“농구는 조직력이 중요한 운동입니다. 좁은 곳에서 10명이 하는 운동이니 복잡 미묘한 게 많습니다. 선수와 감독의 관계, 감독과 구단의 관계 등 신경 쓸 것이 너무 많습니다. 골프는 농구와 정반대 운동이에요. 혼자서 자신과의 싸움이죠. 농구 감독을 하면서 받은 중압감과 스트레스를 잊고 싶을 때 골프연습장에 나갔어요. 한샷 한샷 치다 보면 머리와 마음이 저절로 비워집니다. 농구를 잊고 싶을 때 골프는 명약이었습니다.”

최 전 감독은 감독 시절 한국 프로농구 사상 최초로 200승을 달성한 농구계의 살아있는 신화다. 1988년 실업농구 기아의 감독으로 취임해 1988년부터 1995년까지 농구대잔치 7회 우승을 거머쥐고, 프로농구가 시작된 이후 기아 엔터프라이즈(1996년)와 SK 나이츠(2000년)도 정상에 올려놨다. 2004년까지 SK 나이츠 감독으로 활동했다.

골프채를 처음 잡은 것도 농구가 인연이 됐다. 전·현직 농구 감독들의 모임인 ‘명인회’에서 여는 골프모임에 참가하기 위해 최 전 감독은 1991년 골프를 시작했다. 구력 22년인 그는 “제일 늦게 골프를 시작했는데 모임에서 지고 싶지 않다는 승부욕이 타올랐다”고 했다. 실력은 빠르게 늘었고 농구계 골프모임에서 종종 1등을 차지하기도 했다. 현재는 핸디캡 7의 싱글 골퍼다. 베스트 스코어는 2001년 지산CC에서 기록한 1언더파.

농구 감독으로서 승승장구하던 최 전 감독에게 2005년 청천벽력 같은 일이 일어났다. 대장암 3기 판정을 받은 것. 진단받은 다음날 종양과 직장의 일부분을 떼어내는 수술을 받았고, 5개월여간 항암치료를 했다. 암투병 중에 골프는 의지할 수 있는 좋은 친구였다.

“수술한 뒤 곰곰이 생각해보니 살아야겠다는 의욕이 샘솟았습니다. 퇴원 직후에 일본 센다이로 골프 여행을 갔어요. 아직 완쾌되지 않았기 때문에 몸도 불편했고 이전보다 거리가 3분의 2 수준으로 줄었지만 공을 칠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좋았습니다.”

이후에 골프는 자신이 건강하다는 것을 남들에게 보여주는 좋은 수단이었다. 2007년 열린 농구인 골프대회에서 당당히 우승을 차지했다. 최 전 감독은 “파만 잡으면 우승할 수 있겠더라”며 “욕심을 부리지 않고 홀 가운데만 노렸다”고 했다. 2008년엔 피지프로골프협회(FPGA)에서 발급하는 시니어투어 프로 선발전에서 합격하며 프로 자격증까지 땄다. 최 전 감독은 매일 아침 2시간 반 동안 조깅과 근력운동에 이어 골프 스윙 연습까지 체력관리에 집중하고 있다.

“싱글은 참 외로운 것이더군요. 라운드 도중 실수하지 않으려다 보니 라운드가 피곤해져요. 요즘엔 실력은 스코어카드에 있는 게 아니라 내 머릿속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골프를 제대로 즐길 수 있죠. 에이지 슈터(자기 나이 이하의 타수를 기록하는 골퍼)가 되는 게 꿈입니다. 건강을 잘 유지하면서 골프를 즐기면 충분히 가능하겠죠?”

서기열 기자 phil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