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감한 원색·실용성 지향…김기덕 감독이 베니스 영화제에서 신었던 그 신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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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st Practice - 스페인 신발 브랜드 캠퍼
수선공 출신 안토니오가 창업, 4대째 가업…철저히 가족 경영
스페인브랜드 첫 해외 성공 사례, 바르셀로나五輪이후 亞에 알려져
투박하고 대담한 원색 결합…독창적 디자인으로 '정평', '스페인스러움' 고수가 성공 비결
호텔·스포츠마케팅…이미지 제고
수선공 출신 안토니오가 창업, 4대째 가업…철저히 가족 경영
스페인브랜드 첫 해외 성공 사례, 바르셀로나五輪이후 亞에 알려져
투박하고 대담한 원색 결합…독창적 디자인으로 '정평', '스페인스러움' 고수가 성공 비결
호텔·스포츠마케팅…이미지 제고
영화 ‘피에타’로 지난해 9월 이탈리아 베니스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김기덕 감독. 당시 영화제에 참석하기 전 그가 국내에서 ‘피에타’ 홍보 행사를 다닐 때 유독 사람들의 시선을 끈 것은 그의 신발이었다. 회색빛으로 끈 부분만 빨간색인 운동화였다. 김 감독은 한눈에도 낡아 보이는 이 운동화를 맨발로 뒷부분을 꺾어 신고 다녔다. 베니스영화제 시상식 당일에도 이 신발을 신고 나왔다.
김 감독이 신었던 운동화는 스페인의 유명 신발 브랜드 ‘캠퍼(Camper·카탈루냐어로 농부라는 뜻)’의 제품이다. 가격도 약 32만원으로 겉모양에 비해 비교적 비싼 편이다. 김 감독이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광고 효과는 엄청났다. 국내에서 해외 브랜드 마니아들 사이에서만 알려져 있던 캠퍼는 ‘김기덕 신발’이란 별명을 얻으며 빠르게 인지도를 높였다.
○126년간 4대째 지켜온 가족경영 캠퍼는 1975년 선보인 브랜드다. 현재 70여개국에서 팔려나가는 세계적인 캐주얼 신발기업이다. 하지만 이 회사의 실제 역사는 126년 전인 187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캠퍼의 실질적 창업주인 안토니오 플룩사는 1877년 스페인 동부 마요르카 섬에 가죽구두 공장을 차렸다. 원래 구두 수선공이었던 그는 “내 손으로 나만의 신발을 만들겠다”는 꿈을 가진 사람이었다. 혈혈단신으로 배를 타고 영국으로 건너가 신발 제작 공정을 배웠다. 당시 영국은 산업혁명으로 유럽에서 가장 앞선 제조업 기술을 갖고 있었다. 이 때문에 남유럽의 많은 수공예 장인들이 영국으로 기술 유학을 떠났다. 안토니오 플룩사도 그 중 한 사람이었다.
그는 아들 로렌조 플룩사에게 공장을 물려준 뒤 세상을 떠났다. 로렌조는 공장 규모를 더 키운 뒤 자신과 똑같은 이름의 아들에게 3대째 경영을 맡겼다. 이 로렌조 플룩사가 1975년 캠퍼 브랜드를 내놓은 사람이다. 현재는 그의 아들인 미겔 플룩사 최고경영자(CEO·38)가 4대째 경영을 맡고 있다. 비상장사이며, 철저하게 가족 경영을 고수한다. 2010년 서울 가로수길에 아시아 최대 규모의 매장을 내며 국내에도 진출했다.
브랜드의 역사에 비해 캠퍼란 고유 상표의 등장이 늦었던 이유는 프란체스코 프랑코 군사독재 정권 시절 스페인 경제가 극도로 폐쇄적이었기 때문이었다. 자영업자들은 자신의 손으로 브랜드를 자유롭게 만들 수 없었다. 수출입도 정부의 통제 하에 놓였고, 마음대로 유학을 떠나지도 못했다. 1975년은 프랑코가 사망한 해다. 로렌조 플룩사는 바로 그해 캠퍼 상표를 출시했다.
로렌조 플룩사는 아들 미겔 플룩사에게 해외 생활경험을 적극 권장했다. 암울한 시대 때문에 답답한 삶을 살아야 했던 자신의 전철을 밟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겔은 어려서부터 미국에서 학교를 다녔고 20대 땐 스페인에 돌아와 바르셀로나대에서 경영학을 공부한 뒤 다시 미국에서 뉴욕대 경영학석사(MBA) 학위를 땄다.
○투박함과 대담함의 절묘한 결합
캠퍼 신발 디자인의 특징은 흔히 ‘투박한 스타일과 대담한 원색의 조화’로 묘사된다. 캠퍼가 1975년 당시 내놓은 첫 제품인 ‘카말레온’은 폐타이어를 밑창으로 재활용했고, 그 위에 노란색과 갈색의 캔버스 천을 덧댄 형태로 만들었다. 마요르카 섬 농부들이 일할 때 편하게 신기 위해 스스로 신발을 만드는 것을 보며 영감을 얻은 것이다. 플룩사 CEO는 “우리 회사가 지중해의 나라인 스페인 출신이라는 걸 항상 잊지 않고 있다”며 “과감한 색채와 실용성, 편안함과 유머감각을 가미하는 게 캠퍼가 지향하는 목표”라고 설명했다.
캠퍼는 스페인의 패션 브랜드 중 가장 먼저 해외 진출에 성공한 사례로 평가받는다. 캠퍼가 해외에 널리 알려지게 된 계기는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그 전까지만 해도 스페인은 패션계에서 거의 소외된 존재나 다름없었다. ‘스페인은 저가 노동력과 값싼 상품만 생산하는 나라’란 이미지가 너무 강했기 때문이었다. 캠퍼는 이 시기에 프랑스 파리에 첫 해외 매장을 열었다. 캠퍼가 프랑스 파리와 영국 런던, 이탈리아 밀라노에 진출하고, 특유의 독특한 디자인이 화제를 모으기 시작하면서 스페인을 대표하는 패션 브랜드로 유럽에서 자리매김하기 시작했다.
캠퍼를 아시아에 알리는 데 기여한 건 일본인들이다. 바르셀로나올림픽 이후 스페인에 관광하는 일본인이 많아졌고, 스페인 곳곳에 있는 캠퍼 매장에 관심을 보이는 일본 사람들도 자연히 늘어났다. 그러면서 다른 아시아 소비자들 사이에서도 캠퍼가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했다. 미겔 CEO는 “일본에서의 성공은 아주 운이 좋았다”며 “이를 계기로 미국과 다른 나라의 매출 증가에도 큰 영향을 줬다”고 말했다.
캠퍼는 매장 디자인도 매우 독창적이기로 정평이 나 있다. 강렬한 붉은색과 밝은 흰색이 물결치는 형상은 캠퍼의 상징처럼 인식되고 있다. 특히 매장 인테리어를 디자인할 때 각기 다른 국적의 건축가들과 컬래버레이션(collaboration·서로 다른 특징을 가진 업종 간의 협업)을 한다. 미국 뉴욕에 매장을 세울 때 일본 건축가 반 시게루가 설계를 담당한 것이 대표적이다.
캠퍼의 수석 디자이너 알프레도 하베를리는 “심각한 분위기의 명품 매장들과 달리 캠퍼 매장은 화려한 색감을 살려 젊은이들이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공간이 되도록 만들려고 한다”고 강조했다.
캠퍼는 해외 시장 진출 확대를 계속해 나가고 있지만, 각국 소비자들의 ‘입맛’에 맞춰 자신들의 디자인 특성을 바꾸지 않겠다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미겔 CEO는 “캠퍼가 성공한 것은 디자인에 ‘스페인스러움’을 담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며 “스페인 브랜드로서의 캠퍼만이 가진 특징을 버리면 성공이 오래 가지 못할 것이라고 본다”고 강조했다.
○호텔사업, 요트경기 참가에도 나서
캠퍼는 호텔 경영과 스포츠마케팅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물론 브랜드 이미지 제고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다.
캠퍼는 현재 독일 베를린과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호텔을 운영하고 있다. 두 호텔 모두 특이한 디자인과 운영 방식으로 잘 알려져 있다. 우선 객실이 복도를 사이에 두고 거실과 침실이 따로 떨어져 있다. 바깥 경치를 볼 수 있는 길가 쪽에 거실을, 조용한 정원이 있는 쪽에 침실을 배치했다.
캠퍼는 무동력 요트 스포츠인 ‘볼보 오션 레이스’의 후원사로도 참가하고 있다. 전기 엔진 없이 오로지 사람의 힘과 바람, 파도만으로 약 9개월간 오대양을 한 바퀴 도는 레이스다. 미겔 CEO는 “기업에선 팀워크의 조화가 생명”이라며 “무동력 요트 레이스야말로 캠퍼의 팀워크 정신을 강조할 수 있는 스포츠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
김 감독이 신었던 운동화는 스페인의 유명 신발 브랜드 ‘캠퍼(Camper·카탈루냐어로 농부라는 뜻)’의 제품이다. 가격도 약 32만원으로 겉모양에 비해 비교적 비싼 편이다. 김 감독이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광고 효과는 엄청났다. 국내에서 해외 브랜드 마니아들 사이에서만 알려져 있던 캠퍼는 ‘김기덕 신발’이란 별명을 얻으며 빠르게 인지도를 높였다.
○126년간 4대째 지켜온 가족경영 캠퍼는 1975년 선보인 브랜드다. 현재 70여개국에서 팔려나가는 세계적인 캐주얼 신발기업이다. 하지만 이 회사의 실제 역사는 126년 전인 187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캠퍼의 실질적 창업주인 안토니오 플룩사는 1877년 스페인 동부 마요르카 섬에 가죽구두 공장을 차렸다. 원래 구두 수선공이었던 그는 “내 손으로 나만의 신발을 만들겠다”는 꿈을 가진 사람이었다. 혈혈단신으로 배를 타고 영국으로 건너가 신발 제작 공정을 배웠다. 당시 영국은 산업혁명으로 유럽에서 가장 앞선 제조업 기술을 갖고 있었다. 이 때문에 남유럽의 많은 수공예 장인들이 영국으로 기술 유학을 떠났다. 안토니오 플룩사도 그 중 한 사람이었다.
그는 아들 로렌조 플룩사에게 공장을 물려준 뒤 세상을 떠났다. 로렌조는 공장 규모를 더 키운 뒤 자신과 똑같은 이름의 아들에게 3대째 경영을 맡겼다. 이 로렌조 플룩사가 1975년 캠퍼 브랜드를 내놓은 사람이다. 현재는 그의 아들인 미겔 플룩사 최고경영자(CEO·38)가 4대째 경영을 맡고 있다. 비상장사이며, 철저하게 가족 경영을 고수한다. 2010년 서울 가로수길에 아시아 최대 규모의 매장을 내며 국내에도 진출했다.
브랜드의 역사에 비해 캠퍼란 고유 상표의 등장이 늦었던 이유는 프란체스코 프랑코 군사독재 정권 시절 스페인 경제가 극도로 폐쇄적이었기 때문이었다. 자영업자들은 자신의 손으로 브랜드를 자유롭게 만들 수 없었다. 수출입도 정부의 통제 하에 놓였고, 마음대로 유학을 떠나지도 못했다. 1975년은 프랑코가 사망한 해다. 로렌조 플룩사는 바로 그해 캠퍼 상표를 출시했다.
로렌조 플룩사는 아들 미겔 플룩사에게 해외 생활경험을 적극 권장했다. 암울한 시대 때문에 답답한 삶을 살아야 했던 자신의 전철을 밟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겔은 어려서부터 미국에서 학교를 다녔고 20대 땐 스페인에 돌아와 바르셀로나대에서 경영학을 공부한 뒤 다시 미국에서 뉴욕대 경영학석사(MBA) 학위를 땄다.
○투박함과 대담함의 절묘한 결합
캠퍼 신발 디자인의 특징은 흔히 ‘투박한 스타일과 대담한 원색의 조화’로 묘사된다. 캠퍼가 1975년 당시 내놓은 첫 제품인 ‘카말레온’은 폐타이어를 밑창으로 재활용했고, 그 위에 노란색과 갈색의 캔버스 천을 덧댄 형태로 만들었다. 마요르카 섬 농부들이 일할 때 편하게 신기 위해 스스로 신발을 만드는 것을 보며 영감을 얻은 것이다. 플룩사 CEO는 “우리 회사가 지중해의 나라인 스페인 출신이라는 걸 항상 잊지 않고 있다”며 “과감한 색채와 실용성, 편안함과 유머감각을 가미하는 게 캠퍼가 지향하는 목표”라고 설명했다.
캠퍼는 스페인의 패션 브랜드 중 가장 먼저 해외 진출에 성공한 사례로 평가받는다. 캠퍼가 해외에 널리 알려지게 된 계기는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그 전까지만 해도 스페인은 패션계에서 거의 소외된 존재나 다름없었다. ‘스페인은 저가 노동력과 값싼 상품만 생산하는 나라’란 이미지가 너무 강했기 때문이었다. 캠퍼는 이 시기에 프랑스 파리에 첫 해외 매장을 열었다. 캠퍼가 프랑스 파리와 영국 런던, 이탈리아 밀라노에 진출하고, 특유의 독특한 디자인이 화제를 모으기 시작하면서 스페인을 대표하는 패션 브랜드로 유럽에서 자리매김하기 시작했다.
캠퍼를 아시아에 알리는 데 기여한 건 일본인들이다. 바르셀로나올림픽 이후 스페인에 관광하는 일본인이 많아졌고, 스페인 곳곳에 있는 캠퍼 매장에 관심을 보이는 일본 사람들도 자연히 늘어났다. 그러면서 다른 아시아 소비자들 사이에서도 캠퍼가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했다. 미겔 CEO는 “일본에서의 성공은 아주 운이 좋았다”며 “이를 계기로 미국과 다른 나라의 매출 증가에도 큰 영향을 줬다”고 말했다.
캠퍼는 매장 디자인도 매우 독창적이기로 정평이 나 있다. 강렬한 붉은색과 밝은 흰색이 물결치는 형상은 캠퍼의 상징처럼 인식되고 있다. 특히 매장 인테리어를 디자인할 때 각기 다른 국적의 건축가들과 컬래버레이션(collaboration·서로 다른 특징을 가진 업종 간의 협업)을 한다. 미국 뉴욕에 매장을 세울 때 일본 건축가 반 시게루가 설계를 담당한 것이 대표적이다.
캠퍼의 수석 디자이너 알프레도 하베를리는 “심각한 분위기의 명품 매장들과 달리 캠퍼 매장은 화려한 색감을 살려 젊은이들이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공간이 되도록 만들려고 한다”고 강조했다.
캠퍼는 해외 시장 진출 확대를 계속해 나가고 있지만, 각국 소비자들의 ‘입맛’에 맞춰 자신들의 디자인 특성을 바꾸지 않겠다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미겔 CEO는 “캠퍼가 성공한 것은 디자인에 ‘스페인스러움’을 담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며 “스페인 브랜드로서의 캠퍼만이 가진 특징을 버리면 성공이 오래 가지 못할 것이라고 본다”고 강조했다.
○호텔사업, 요트경기 참가에도 나서
캠퍼는 호텔 경영과 스포츠마케팅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물론 브랜드 이미지 제고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다.
캠퍼는 현재 독일 베를린과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호텔을 운영하고 있다. 두 호텔 모두 특이한 디자인과 운영 방식으로 잘 알려져 있다. 우선 객실이 복도를 사이에 두고 거실과 침실이 따로 떨어져 있다. 바깥 경치를 볼 수 있는 길가 쪽에 거실을, 조용한 정원이 있는 쪽에 침실을 배치했다.
캠퍼는 무동력 요트 스포츠인 ‘볼보 오션 레이스’의 후원사로도 참가하고 있다. 전기 엔진 없이 오로지 사람의 힘과 바람, 파도만으로 약 9개월간 오대양을 한 바퀴 도는 레이스다. 미겔 CEO는 “기업에선 팀워크의 조화가 생명”이라며 “무동력 요트 레이스야말로 캠퍼의 팀워크 정신을 강조할 수 있는 스포츠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