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저드의 미니멀리즘 조각.
도널드 저드의 미니멀리즘 조각.
현대 예술계에 충격을 던진 사건 두 가지.

먼저 1952년 8월29일 뉴욕주의 작은 도시 우드스톡에서 일어난 일이다. 데이비드 튜더라는 피아니스트가 한 콘서트에서 실험음악 작곡가 존 케이지(1912~1992)의 ‘4분33초’를 연주하기 위해 박수갈채 속에 등장했다. 그런데 그는 피아노 앞에 앉자마자 건반 덮개를 덮더니 이후 손가락 하나 까딱하질 않는다. 관객은 웅성대기 시작했다. 그러나 피아니스트는 요지부동이었다. 그렇게 4분33초가 흘렀다. 그는 이내 연주를 마쳤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가 한 행동이라고는 건반을 덮었다 열었다 세 번씩 반복한 게 전부였다.

또 하나의 에피소드. 1958년 4월 프랑스 니스의 이리스 클레르화랑. 이브 클랭이라는 전위예술가가 ‘보이드(Void·無)’라는 제목의 전시회를 열었다. 수천 명이 이 전시를 보기 위해 길게 줄을 늘어섰다. 그런데 전시장 내부로 들어간 사람들은 기가 막혔다. 하얀색으로 칠해진 미술관 안에는 캐비닛 하나 외에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전시 타이틀대로 ‘무’였다. 허탈한 관객은 비난을 퍼부었지만 그 다음 날도 사람들은 이 ‘텅 빈 전시장’을 구경하기 위해 줄을 섰다.

이 어이없는 두 가지의 사건은 당대 관객으로부터 분노를 샀지만 지금은 20세기 예술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건들로 기록됐다. 이유는 뭘까. 바로 작가의 인위적인 표현과 개입을 최소화하고 관객으로부터 최대 반응을 유도하려 한 현대미술의 완결판이었기 때문이다. 한때 선불교에 심취했던 존 케이지는 작가의 개입을 최소화한 ‘무아(無我)’ ‘무위(無爲)’의 음악으로, 클랭은 전시실 내부에 흰색 페인트칠만 함으로써 작가의 숨결을 철저히 차단했던 것이다.

시각예술에서 표현을 최소화하는 미니멀 아트는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미술계를 뜨겁게 달궜던 추상표현주의(액션페인팅)의 과도한 감정 분출과 팝아트의 천박함에 대한 반발로 일어난 움직임이었다.

미니멀 아트의 흐름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먼저 화가들을 중심으로 일어난 ‘하드 에지 페인팅’을 들 수 있다. 이 계열 화가들이 꿈꾼 이상적인 그림은 감정을 완전히 제거해 마치 기계로 그린 것처럼 정확히 제작하는 것이었다. 이들이 ‘날카롭고 단단한 테두리’의 단순한 형태를 선호하는 것은 그런 면에서 당연했다. 이렇게 작가의 개입을 배제한 그림은 작가의 손을 떠나는 순간 마치 공산품처럼 중립적인 대상이 되는 것이다.

프랭크 스텔라(1936~)는 이런 경향을 극단으로 몰아간 작가다. 그는 조그마한 감정적·개성적 흔적도 남기지 않기 위해 가느다란 흰색 선으로 분리된 짙은 색의 스트라이프를 기계적으로 배열한 작품들을 선보였다.

게다가 ‘캔버스는 사각형’이라는 고정관념을 깨기 위해 다양한 형태의 캔버스를 만들어냈다. ‘셰이프드 캔버스(Shaped-canvas)’로 불리는 이 캔버스는 그림은 대상을 사실적으로 재현한 환영의 공간이라는 믿음을 제거하기 위한 것이었다. 작가의 개성이 드러나는 붓 대신 기계적인 제도 공구를 사용하고 페인트와 금속성 안료를 사용한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였다.

스텔라는 평소 자신은 그림에 단 하나의 메시지도 숨겨 놓지 않았다고 단언했다. 그는 관객을 향해 “당신의 눈에 보이는 게 전부야”라고 외쳤다.

표현을 최소화하려는 정신은 조각가들에 의해 풍성한 결실을 보게 되는데 이를 ‘미니멀리즘’이라고 한다. 물론 미니멀리즘에는 표현을 극단적으로 절제한 회화도 포함되지만 두각을 나타낸 작가 대부분이 조각가여서 오늘날 조각운동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도널드 저드(1928~1994)는 금속이나 플라스틱, 유리, 합판 상자 같은 산업 생산물을 활용해 납작한 상자 모양의 입방체를 벽면에 선반처럼 기계적으로 배열한 작품들을 내놨고, 댄 플래빈(1933~1996)은 백색, 혹은 컬러 형광등을 벽이나 바닥에 기계적으로 배치했다.

[CEO를 위한 미술산책] 작가 개입 최소화…단순미로 최대한의 감동 유도
미니멀 작가들이 표현을 극단적으로 자제했다고 해서 그들이 예술 개념마저 부정한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예술의 본질을 흐리는 감정의 과도한 분출, 지나친 설명 요소와 세부 묘사를 추방하고 최소한의 표현으로 최대한의 감동을 유도하려 했다.

본질은 단순하고 명쾌하게 마련이다. 미니멀 아트 이후의 예술가들이 한동안 표현의 절제 쪽으로 나아간 것은 그런 단순미의 무한한 힘을 깨달았기 때문이리라.

정석범 문화전문기자 sukbum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