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 부르는 악마의 식물, 루이16세의 생일선물…사연 많은 감자의 역사
감자는 옥수수와 더불어 유럽에서 기근 문제를 해결하고 인구증가를 가져온 농업혁명의 핵심 작물이다. 하지만 도입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유럽인이 감자를 처음 접한 것은 16세기 전반 스페인의 프란시스 피사로(1475~1541)가 잉카제국을 정복하는 과정에서였다. 유럽인에게 감자는 매우 생소한 작물이었다. 특히 재배 방식이 특이했다. 그때까지 유럽인이 알던 작물이란 대부분 씨앗을 뿌려 재배하는 것이었는데, 감자의 경우엔 감자 자체를 잘게 잘라 심었고, 그것이 하나의 온전한 작물로 성장했기 때문이다. 미신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한 유럽인에게 감자의 울퉁불퉁하고 시커먼 외형, 수상한 재배 방식, 별다른 노력을 들이지 않아도 잘 자라는 속성 등은 ‘악마의 식물’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도록 만들었다. 감자는 한센병을 일으키는 작물이라는 오해도 받았다.

이런저런 이유로 유럽에서는 오랫동안 감자 재배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감자는 비천한 사람들의 생계용 음식으로만 인식됐다. 프랑스인 앙트완 파르망티에(1737~1813)가 독일과의 ‘7년 전쟁’에 참전했다 포로가 됐을 때 독일인은 이들 프랑스 포로에게 1년 넘게 감자만 제공했다. 그런데 파르망티에는 감자가 훌륭한 음식이라는 점을 체험하게 됐고, 파리로 돌아와 감자 보급에 나섰다.

감자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없애기 위해 그는 왕이 감자에 관심을 갖게 하려고 노력한다. 1785년 8월 베르사유궁에서 루이 16세(그림)의 생일축하 파티가 열렸을 때 파르망티에는 연보랏빛 꽃으로 만든 꽃다발을 바친다. 감자꽃으로 만든 꽃다발이었다. 루이 16세는 이 꽃다발을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의 가슴에 꽂아준다. 이에 감격한 파르망티에는 “폐하, 이제 굶주림이란 불가능합니다”라고 외쳤다고 한다. 이후 수많은 귀족이 감자꽃을 찾아 나섰다는 것이다.

일반 백성과 농부의 마음을 얻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파르망티에는 전략적으로 접근했다. 그는 루이 16세가 하사한 파리 근교의 땅에 감자를 재배하면서 병사들을 시켜 낮에는 경계를 엄하게 하고, 밤에는 허술하게 하도록 했다.

병사들이 경계를 설 정도로 귀중한 이 작물이 무엇인지 호기심을 느끼게 하자는 생각에서였다. 호기심이 생긴 백성들이 밤에 훔쳐다 맛본 뒤 재배하기 시작한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