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쓰는 경제학원론] 생명보험 가입한 마술사…수학적 확률이냐, 불안감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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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우 유 씨 미'를 통해 본 보험 경제학
마땅히 줘야 할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은 보험사 상대로 복수전 펼치는 이야기
4명의 마술사 고용해 마술쇼처럼 꾸며
보험사 회장 통장에서 돈 빼내카트리나 피해자들에게 나눠 줘
마땅히 줘야 할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은 보험사 상대로 복수전 펼치는 이야기
4명의 마술사 고용해 마술쇼처럼 꾸며
보험사 회장 통장에서 돈 빼내카트리나 피해자들에게 나눠 줘
“여러분에겐 공통점이 하나 있죠. 모두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피해를 본 분들이란 겁니다. 보험회사는 모두 같은 곳 ‘트레슬러 보험사’를 이용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허술한 약관 때문에 보상도 못 받았습니다.”
1년 전만 해도 길거리나 작은 무대에서 공연하던 무명의 마술사 대니얼 아틀라스(제시 아이젠버그 분), 메리트 오스본(우디 해럴슨 분), 헨리(아일라 피셔 분), 잭(데이브 프랑코 분)은 전설의 마술 조직 ‘디아이’의 초대장을 받고 ‘포 호스맨’이라는 이름으로 뭉쳤다. 그들의 첫 번째 공연은 5000명의 관객 앞에서 프랑스의 한 은행으로 3초 만에 이동해 300만유로(약 44억원)를 훔쳐 관객들에게 뿌리는 것이었다. 이 사건으로 포 호스맨은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보험료 vs 보험금
표를 구하기도 어려워진 그들의 두 번째 공연. 관객들에게 각자 은행 잔액을 메모지에 적으라고 한 젊은 마술사들은 마술쇼 후원자인 아서 트레슬러 회장(마이클 케인 분)을 무대로 부른다. 회장의 은행 잔액은 1억4457만달러. 종이 위로 라이트를 비추자 회장의 잔액에서 7만달러가 빠져나갔다. 대신 한 관객의 계좌에 7만달러가 입금됐다. 실제 상황에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회장의 예금잔액은 금세 바닥이 났다. 알고 보니 부당하게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은 트레슬러 회장의 돈을 카트리나 피해자들에게 나눠준 것이었다.
지난 8월 개봉한 ‘나우 유 씨 미(Now You See Me)’는 마땅히 줘야 할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은 보험사에 원한을 품은 사람이 보험사를 상대로 복수전을 펼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마술에 필요한 각종 트릭을 교묘하게 엮어 생각하는 재미를 더해주는 영화다.
대개 보험사들은 보험금을 지급하는 데 인색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고객들로부터 보험료는 꼬박꼬박 챙기면서 막상 보험금을 지급해야 할 상황이 오면 이것저것 따지면서 얼굴을 바꾼다. 오죽하면 보험상품 광고문구 중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라는 표현이 등장하겠는가.
보험사도 기업이기 때문에 수익을 내야 살아남을 수 있다. 그 기준이 손해율이다. 손해율이 100%라면 보험료와 보험금이 똑같다는 얘기다. 하지만 손해율이 100%에 이르면 보험사는 적자다. 인건비, 마케팅 비용 등 회사를 유지하는 데 들어가는 사업비를 건지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실제 보험사가 목표로 하는 손해율은 100% 미만이다. 한국 자동차보험의 경우 대개 77% 안팎이다. 100원의 보험료를 거둬 77원을 지급할 수 있도록 보험 구조를 짠다는 얘기다.
기대이익 추정 vs 위험 대하는 태도
다시 영화로 들어가 보자. 나중에 드러나지만 포 호스맨 네 명이 보험사에 원한을 가진 것은 아니다. 그들은 누군가의 조종을 받아 복수를 대리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배후 조종자의 아버지는 리오넬 슈라이크(일라이어스 코티스 분)라는 이름의 마술사였다. 그는 금고에 갇힌 채 강물에서 탈출하는 마술을 시도하다가 죽는다. 그는 혹시 실패할 수 있다는 생각에 어린 아들과 아내를 생각해 생명보험을 들어둔 상태였다. 하지만 보험사는 보험금 지급을 거부했다. 아버지의 허망한 죽음을 지켜본 아들이 복수의 일념에 사로잡히는 순간이었다.
그렇다면 슈라이크는 왜 보험을 든 것일까. 다름 아닌 미래의 불확실성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보험을 들 때는 보험료와 사건이 발생할 확률, 그로 인한 손해(피해)액 등을 고려하게 된다. 예를 들어 사고가 날 확률이 4분의 1이고 보상금이 4억원인 보험이 있다고 하자. 이 경우 보험 가입에 따른 기대이익은 1억원이다. 따라서 1억원의 보험료를 내면 가입자나 보험사나 공정한 게임이 만들어지게 된다.(물론 앞서 언급했듯이 보험사가 떼는 사업비를 감안하면 보험료는 더 올라갈 수 있다.)
하지만 개인이 사건 사고가 발생할 수 있는 정확한 확률과 적정 보험료(금)를 계산해낼 수는 없다. 가입 여부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다. 기꺼이 위험부담을 감수하는 사람들은 1억원짜리 보험료가 5000만원으로 떨어져도 가입을 주저할 가능성이 있다. 수익이 불안정한 투기성 자산을 구입하거나 카지노에서 도박을 즐기는 사람들일수록 그럴 것이다. 재해보험 가입률이 낮은 것에서도 위험을 대하는 농어민들의 태도를 유추할 수 있다. 정부는 농어민들이 태풍 적조 등 자연재해로 피해를 볼 경우에 대비해 재해보험료의 70%가량을 국고에서 보조해주고 있지만 정작 가입률은 절반 정도에 불과하다. 비록 싸더라도 ‘생돈’이나 마찬가지인 보험료를 낼 바에야 미래의 손실 위험을 감수하겠다는(→카지노 도박자들이 보험을 잘 들지 않는 까닭) 사람이 많다는 얘기다.
반면 위험을 최대한 피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보험료가 다소 비싸더라도 보험 가입을 서두를 가능성이 높다. 이들은 재테크를 할 때도 가급적 안정적이고 변동성이 덜한 포트폴리오를 짜는 경향이 강하다. 이런 점에서 보면 슈라이크는 위험 회피적인 인물이었다. 비록 생전에 기대했던 보험지급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았지만….
보험사의 역선택 vs 가입자의 도덕적 해이
물론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는 모든 사안에 대해 보험사를 탓할 수는 없다. 슈라이크의 경우 사망 원인이 불의의 사고였느냐, 아니면 충분히 예견하고 피할 수 있는 사고였느냐가 보험금 지급의 쟁점이 됐을 수도 있다.
보험사는 기본적으로 가입자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보험에 들었는지 알 수 없다. 사망보험금을 노리고 사람을 죽이거나 스스로 자살했다는 뉴스가 종종 들려온다는 점에서 보험사의 어려운 입장이 이해가 가기도 한다.
보험사는 가입자보다 가입자에 대한 정보가 늘 부족하기 때문에 역선택을 할 가능성이 있다. 예를 들어 100만원의 보험료를 받고 암에 걸릴 경우 보험금 1000만원을 지급하는 상품이 있다고 하자. 보험사는 젊고 건강한 사람이 보험에 들길 바라지만 막상 보험을 찾는 사람들은 노약자나 고령자일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보험료를 올리면 된다고 생각하기 쉽겠지만 젊고 건강한 사람들은 오히려 보험에서 더 멀어지게 된다.
가입자의 도덕적 해이가 생길 수도 있다. 자동차 운전자가 보험에 가입하지 않았다면 안전 운전에 최선을 다할 것이지만 보험에 가입했을 경우는 상대적으로 안전 운전을 게을리할 수 있다. 결국 사고 가능성은 그만큼 높아지고 결과적으로 보험사의 손해율도 높아진다.(→자동차 보험 가입자의 도덕적 해이, 보험이 사고 가능성을 높이는 이유) 그래서 보험사들도 자구책을 모색한다. 사고경력이나 운전시간, 나이 등에 따라 보험료를 차등 적용하는 것. 사고가 발생한 뒤 고의성 여부를 정밀하게 따져보는 것도 손해율을 줄일 수 있는 수단이다.
그나저나 엄청난 재산을 잃은 트레슬러 회장은 보험을 들어놓았을까. 그러지 않았을 것이다. 은행 잔액이 자신의 눈앞에서 순식간에 사라질 것이라는 상상은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사실 모든 위험을 완벽하게 커버할 수는 없는 일이다. 보험은 통계적 분석이 가능한 영역에서만 작동하는 금융상품일 뿐이다.
강영연 기자 yykang@hankyung.com
1년 전만 해도 길거리나 작은 무대에서 공연하던 무명의 마술사 대니얼 아틀라스(제시 아이젠버그 분), 메리트 오스본(우디 해럴슨 분), 헨리(아일라 피셔 분), 잭(데이브 프랑코 분)은 전설의 마술 조직 ‘디아이’의 초대장을 받고 ‘포 호스맨’이라는 이름으로 뭉쳤다. 그들의 첫 번째 공연은 5000명의 관객 앞에서 프랑스의 한 은행으로 3초 만에 이동해 300만유로(약 44억원)를 훔쳐 관객들에게 뿌리는 것이었다. 이 사건으로 포 호스맨은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보험료 vs 보험금
표를 구하기도 어려워진 그들의 두 번째 공연. 관객들에게 각자 은행 잔액을 메모지에 적으라고 한 젊은 마술사들은 마술쇼 후원자인 아서 트레슬러 회장(마이클 케인 분)을 무대로 부른다. 회장의 은행 잔액은 1억4457만달러. 종이 위로 라이트를 비추자 회장의 잔액에서 7만달러가 빠져나갔다. 대신 한 관객의 계좌에 7만달러가 입금됐다. 실제 상황에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회장의 예금잔액은 금세 바닥이 났다. 알고 보니 부당하게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은 트레슬러 회장의 돈을 카트리나 피해자들에게 나눠준 것이었다.
지난 8월 개봉한 ‘나우 유 씨 미(Now You See Me)’는 마땅히 줘야 할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은 보험사에 원한을 품은 사람이 보험사를 상대로 복수전을 펼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마술에 필요한 각종 트릭을 교묘하게 엮어 생각하는 재미를 더해주는 영화다.
대개 보험사들은 보험금을 지급하는 데 인색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고객들로부터 보험료는 꼬박꼬박 챙기면서 막상 보험금을 지급해야 할 상황이 오면 이것저것 따지면서 얼굴을 바꾼다. 오죽하면 보험상품 광고문구 중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라는 표현이 등장하겠는가.
보험사도 기업이기 때문에 수익을 내야 살아남을 수 있다. 그 기준이 손해율이다. 손해율이 100%라면 보험료와 보험금이 똑같다는 얘기다. 하지만 손해율이 100%에 이르면 보험사는 적자다. 인건비, 마케팅 비용 등 회사를 유지하는 데 들어가는 사업비를 건지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실제 보험사가 목표로 하는 손해율은 100% 미만이다. 한국 자동차보험의 경우 대개 77% 안팎이다. 100원의 보험료를 거둬 77원을 지급할 수 있도록 보험 구조를 짠다는 얘기다.
기대이익 추정 vs 위험 대하는 태도
다시 영화로 들어가 보자. 나중에 드러나지만 포 호스맨 네 명이 보험사에 원한을 가진 것은 아니다. 그들은 누군가의 조종을 받아 복수를 대리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배후 조종자의 아버지는 리오넬 슈라이크(일라이어스 코티스 분)라는 이름의 마술사였다. 그는 금고에 갇힌 채 강물에서 탈출하는 마술을 시도하다가 죽는다. 그는 혹시 실패할 수 있다는 생각에 어린 아들과 아내를 생각해 생명보험을 들어둔 상태였다. 하지만 보험사는 보험금 지급을 거부했다. 아버지의 허망한 죽음을 지켜본 아들이 복수의 일념에 사로잡히는 순간이었다.
그렇다면 슈라이크는 왜 보험을 든 것일까. 다름 아닌 미래의 불확실성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보험을 들 때는 보험료와 사건이 발생할 확률, 그로 인한 손해(피해)액 등을 고려하게 된다. 예를 들어 사고가 날 확률이 4분의 1이고 보상금이 4억원인 보험이 있다고 하자. 이 경우 보험 가입에 따른 기대이익은 1억원이다. 따라서 1억원의 보험료를 내면 가입자나 보험사나 공정한 게임이 만들어지게 된다.(물론 앞서 언급했듯이 보험사가 떼는 사업비를 감안하면 보험료는 더 올라갈 수 있다.)
하지만 개인이 사건 사고가 발생할 수 있는 정확한 확률과 적정 보험료(금)를 계산해낼 수는 없다. 가입 여부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다. 기꺼이 위험부담을 감수하는 사람들은 1억원짜리 보험료가 5000만원으로 떨어져도 가입을 주저할 가능성이 있다. 수익이 불안정한 투기성 자산을 구입하거나 카지노에서 도박을 즐기는 사람들일수록 그럴 것이다. 재해보험 가입률이 낮은 것에서도 위험을 대하는 농어민들의 태도를 유추할 수 있다. 정부는 농어민들이 태풍 적조 등 자연재해로 피해를 볼 경우에 대비해 재해보험료의 70%가량을 국고에서 보조해주고 있지만 정작 가입률은 절반 정도에 불과하다. 비록 싸더라도 ‘생돈’이나 마찬가지인 보험료를 낼 바에야 미래의 손실 위험을 감수하겠다는(→카지노 도박자들이 보험을 잘 들지 않는 까닭) 사람이 많다는 얘기다.
반면 위험을 최대한 피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보험료가 다소 비싸더라도 보험 가입을 서두를 가능성이 높다. 이들은 재테크를 할 때도 가급적 안정적이고 변동성이 덜한 포트폴리오를 짜는 경향이 강하다. 이런 점에서 보면 슈라이크는 위험 회피적인 인물이었다. 비록 생전에 기대했던 보험지급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았지만….
보험사의 역선택 vs 가입자의 도덕적 해이
물론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는 모든 사안에 대해 보험사를 탓할 수는 없다. 슈라이크의 경우 사망 원인이 불의의 사고였느냐, 아니면 충분히 예견하고 피할 수 있는 사고였느냐가 보험금 지급의 쟁점이 됐을 수도 있다.
보험사는 기본적으로 가입자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보험에 들었는지 알 수 없다. 사망보험금을 노리고 사람을 죽이거나 스스로 자살했다는 뉴스가 종종 들려온다는 점에서 보험사의 어려운 입장이 이해가 가기도 한다.
보험사는 가입자보다 가입자에 대한 정보가 늘 부족하기 때문에 역선택을 할 가능성이 있다. 예를 들어 100만원의 보험료를 받고 암에 걸릴 경우 보험금 1000만원을 지급하는 상품이 있다고 하자. 보험사는 젊고 건강한 사람이 보험에 들길 바라지만 막상 보험을 찾는 사람들은 노약자나 고령자일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보험료를 올리면 된다고 생각하기 쉽겠지만 젊고 건강한 사람들은 오히려 보험에서 더 멀어지게 된다.
가입자의 도덕적 해이가 생길 수도 있다. 자동차 운전자가 보험에 가입하지 않았다면 안전 운전에 최선을 다할 것이지만 보험에 가입했을 경우는 상대적으로 안전 운전을 게을리할 수 있다. 결국 사고 가능성은 그만큼 높아지고 결과적으로 보험사의 손해율도 높아진다.(→자동차 보험 가입자의 도덕적 해이, 보험이 사고 가능성을 높이는 이유) 그래서 보험사들도 자구책을 모색한다. 사고경력이나 운전시간, 나이 등에 따라 보험료를 차등 적용하는 것. 사고가 발생한 뒤 고의성 여부를 정밀하게 따져보는 것도 손해율을 줄일 수 있는 수단이다.
그나저나 엄청난 재산을 잃은 트레슬러 회장은 보험을 들어놓았을까. 그러지 않았을 것이다. 은행 잔액이 자신의 눈앞에서 순식간에 사라질 것이라는 상상은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사실 모든 위험을 완벽하게 커버할 수는 없는 일이다. 보험은 통계적 분석이 가능한 영역에서만 작동하는 금융상품일 뿐이다.
강영연 기자 yy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