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의 나라'로 보여주는 욕심의 끝
무대는 끊임없이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비스듬히 경사진 사각 나무판 무대에서 배우들이 맨발로 움직인다. 새의 몸짓으로 역동적인 삼각 군무를 펼치다 원을 그리며 빙글빙글 뛰어다니기도 한다. 새의 영역이던 무대는 점점 기울어져 거대한 성벽이 됐다가 다시 완만해져 위대한 새의 나라 ‘조국(鳥國)’의 안마당으로 변한다.

국립극단이 기획한 ‘아리스토파네스 희극 3부작’ 시리즈의 마지막 무대로 서울 서계동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서 공연 중인 연극 ‘새’(윤조병 극본, 윤시중 연출)는 단출하고 현대적인 무대·언어 미학으로 고전 희극을 풀어낸다.

시리즈 전작인 ‘개구리’ ‘구름’과는 사뭇 다르다. 원작이 쓰여진 2500여년 전 그리스 아테네 상황과 ‘오늘의 한국’을 애써 꿰맞추려 하지 않는다. ‘개그 콘서트’식의 대중문화 패러디나 정치·사회적 이슈를 웃음코드로 차용하지 않는다. 최근에 공연한 뮤지컬을 보지 않아도, 최신 유행 가요나 시사 이슈, TV스타들의 특징 등을 몰라도 마음껏 웃고 즐길 수 있다.

공연은 원작의 뼈대와 구성은 그대로 살리되 내용은 과감히 줄이면서 조금씩 윤색해 인물과 결말을 살짝 비틀었다. 인물들의 대사는 간결하고 쉽다. 어렵거나 추상적 표현은 전혀 없이 일상에서 살아 숨 쉬는 언어들을 툭툭 리듬에 맞춰 던진다. 원작이나 전작들처럼 장황하게 늘어놓거나 묘사하지 않는다. 극이 주로 ‘새의 나라’에서 벌어지는 만큼 날개 단 인간들이 ‘새대가리’라고 놀리는 새의 수준에 맞춘 것 같다. 그래서 더 웃기고 재미있고, 뭔가 상상하게 만든다.

빚을 지고 현실세계에서 도망친 ‘교활 덩어리’ 피스가 자리와 상황 변화에 따라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원작에선 남성인 피스가 여성으로 나오는 것도 흥미롭다. 여생을 편안하게 보낼 수 있는 곳을 찾던 피스는 인간과 신들의 세계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조국’을 구상하고 건설하는 지도자가 되고, 다시 왕에 오르면서 탐욕과 권력욕에 물든다.

‘새의 나라’에 만족하지 못하고 신의 세계까지 올라가 천상을 지배하려던 피스는 신이 된 듯한 착각에 빠져 그만 날개를 스스로 떼어버리고 추락한다. 원작의 해피엔딩과는 달리 극은 유토피아에 대한 인간의 헛된 꿈과 끝을 모르는 욕심의 종착점을 직설적으로 제시한다.

새의 특성을 분장과 의상, 몸짓으로 보여주는 배우들이 나무판 무대를 타거나 넘거나 뚫거나 휘돌며 극을 만든다. 플루트와 타악기가 어우러져 빚어내는 신비롭고 매력적인 음악이 무대에 입혀져 공감각적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흥겹고 즐거운 놀이와 환상의 연극성이 충만한 무대다. 공연은 내달 3일까지. 1만~3만원.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