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여성 기업인들의 한숨
“너도나도 ‘창조경제의 희망은 여성’이라고 하는데, 여성 기업인이 느끼기엔 ‘빈말’ 같아요. 정부 정책과 제도는 죄다 남성 위주잖아요. 어두운 숲속을 헤매는 기분입니다.”(서울 소재 A무역회사 사장)

지난 25~26일 서울 양재동 더케이서울호텔에서 열린 ‘전국 여성 최고경영자(CEO) 경영연수 대회’는 여성 기업인들의 하소연장을 방불케 했다. 중소기업청과 한국여성인협회 주최로 열린 이번 행사는 전국 여성 기업인 650명이 참가할 정도로 열기가 뜨거웠다. 사업하며 느꼈던 울분을 토하면서 서로를 위로하는 ‘자매애’를 확인하는 독특한 성격의 자리였다.

남성 중심의 기업 생태계 현장에서 느낀 고충과 애로사항은 끝이 없었다. 의류업을 하는 한 사장은 “가장 힘든 건 남성 중심의 기업환경”이라며 “남자들은 술자리 접대에서 쌓은 인맥을 무기로 사용하지만, 우리들은 실력으로 승부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또 다른 사장은 “한 남성 구직자가 ‘여사장이 하는 회사가 몇 년이나 가겠나’고 수군거리는 것을 들었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몇 년 전 주방용품 유통업에 뛰어든 한 여사장은 “창업은 누구에게나 어려운 일이지만, 여성 기업인은 더 높은 진입장벽에 부딪친다”며 “걸음마 단계의 여성 기업이 어느 정도 경쟁력을 갖출 때까지 정부가 지원해 주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여성이 CEO인 기업은 국내 전체 중소기업 312만개 중 120만여개로 38%에 달한다. 하지만 현실 속에서 여성 경제인은 여전히 ‘이방인’이다. 법과 제도는 여전히 남성 위주다. 2008년부터 작년까지 중기청의 연구개발(R&D) 지원을 받은 여성 기업은 전체의 6%에 불과했다. 협회 관계자는 “남성들이 세운 표준에 맞춰 해당 기업을 선정하기 때문에 경영이 열악한 소규모 여성 기업에는 이런 지원책이 ‘그림의 떡’”이라고 지적했다.

여성 CEO들은 “말로만 ‘여성 기업 활성화’를 외칠 게 아니라, 여성들이 기업현장에서 체감할 수 있도록 ‘맞춤형 방식’을 도입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여성 기업 전용 성장펀드나 정책자금 할당이 대안으로 나왔다. “여성표준의 기업환경이 더 강한 경제를 만들 것”이라는 한 기업인의 말에 귀 기울일 때다.

김정은 중소기업부 기자 likesmi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