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기초연금 비용추계 제대로 해봐야
어느 지역구 국회의원에게서 들은 이야기다. 요즘처럼 날씨가 청명한 가을엔 거짓말을 많이 하게 된단다. 국회도 열려 있는데 하루에도 축제나 운동회가 몇 개씩 돼 어떤 날은 밥 한 끼 제대로 못 먹고 술로만 배를 채우며 축사만 하게 되는 날도 있단다. 연령 70대인 어르신 축구단 출범식에 가선 “10년 후에 이 자리에서 꼭 80세 어르신과 축구단 출범식을 같이하겠습니다. 그러실 수 있지요”라고 흥을 돋운단다. 또 생활인 탁구대회에 가선 이렇게 얘기한다고 한다. “제가 집사람 소개받을 때 두꺼운 코트를 입고 있어 몸매가 어떤지 모르겠어서 무슨 운동을 좋아하냐고 물으니 탁구를 친다고 해요. 탁구 잘 치면 당연히 몸매도 좋을 거라고 확신해 결혼했는데 신혼 첫날밤에 보니 제 판단이 딱 들어맞았습니다. 여기 계신 여성분들 보십시오. 얼마나 날씬하십니까.” 기분 좋은 거짓말에 반응도 정말 좋다는 것이다. 최근엔 ‘착한 거짓말’조차도 정치인의 말이라면 지킬 수 없는 거짓말은 아닌지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지난 대선 새누리당 공약인 월 20만원 기초노령연금 지급을 선별적으로 바꾼 것을 두고 야당과 시민단체에서 박근혜 정부를 싸잡아 ‘거짓말 정권’이라고 공격 중이다. 거짓말 지적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기초연금 공약 외에도 4대 중증질환 진료비 전액 국가부담, 고교 무상교육, 반값등록금 등이 다 해당된다. 올해 국회에 제출한 예산안으론 모든 공약을 도저히 지키기 어렵기 때문이다. 좀 더 비약해보면 여야 구분 없이 ‘민생국감’ ‘정책국감’을 하겠다고 공언해놓고 모두 정쟁에 휘말리면서 국정감사가 제대로 된 적이 없으니 국민 입장에서 보면 매번 ‘거짓말 국감’인 셈이다.

사실 이번 기초연금제도는 새로운 제도 도입이라기보다는 기존 기초노령연금을 재정지속가능성과 형평성을 감안해 변경하자는 것이다. 이 제도가 국민연금 가입률이 30%도 안되는 현 노인세대를 위한 한시적인 것이고 미래 노인세대인 30~40대도 국민연금을 제대로 내면 기초연금 보장분을 충분히 보전받을 수 있다는 긍정적인 평가가 사실인지, 아니면 미래 노인세대에 대한 역차별이라는 것이 사실인지에 대해 전문가들조차 해석이 다르다. 이런 상황에서 야당 협조 없이 이번 국회에서 기초연금법안의 수정 없는 통과는 불가능해 보인다. 국민 입장에서는 뭐가 거짓말인지 알 길이 없다.

이런 헷갈리는 국감을 제도적으로 막는 방법 중 하나가 법안비용을 제대로 추계하는 것이다. 한국은 이미 1973년에 예산상의 조치를 수반하는 법률안에 대해 예산명세서를 첨부하기 시작했고, 13대 국회 때부터는 실질적으로 해당되는 의원발의 법안부터 비용추계서를 첨부하기 시작했다. 17대 국회 21.8%, 18대 국회 31.8%, 19대 국회 36.3%로 비용첨부율이 꾸준히 늘었다.

당연히 격렬한 논의가 진행 중인 기초연금법안의 경우도 비용추계서가 첨부돼 있다. 하지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예산안의 수정과정을 추적해 재정소요를 점검하는 법적 절차가 없다. 원안보다 수정안·대안이 통과법률의 85.3%나 되는 것이 현실이다.

현재 법안비용추계서는 법안 접수단계에서만 첨부되고 있어 위원회 심사과정에서 수정된 내용은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수정안·대안에 대한 비용추계서의 첨부를 법제화하게 되면 예산안이 국회 심의 중에서 수정되는 과정에 대해 추적이 가능해져 국민 입장에서 사실을 밝혀내고 거짓말을 규명하는 것이 수월해진다.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을 보고 거짓말 논쟁을 할 것이 아니라 기초연금을 도입하는 목적인 어려운 노인 중심의 복지해결이라는 본질에 충실하기 위해선 비용에 대해 명확히 알아야 한다. 불충실한 사실 확인에서 거짓말 논쟁이 나오는 것이다. 국회가 거짓말 논쟁에서 비껴가는 시작은 제대로 된 비용추계다.

이인실 < 서강대 경제학 교수 insill723@sogang.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