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리병원 '영'자만 나와도 국회서 난리"…규제 완화로 선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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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산업 전략 수정
정부, 병원에 여행업 허가…외국인 환자 유치
'병상 5% 룰'·메디텔 거리제한도 풀기로
정부, 병원에 여행업 허가…외국인 환자 유치
'병상 5% 룰'·메디텔 거리제한도 풀기로
정부가 27일 영리병원 전면 도입을 보류하기로 함에 따라 의료산업 활성화 방안을 놓고 또 다른 논란이 예상된다. ‘현실적 선택’이란 측면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다른 한편에선 ‘해보기도 전에 포기부터 하느냐’는 비판이 나올 수 있다.
○영리병원 “사회적 합의 어렵다”
정부의 영리병원 논의 중단 배경에는 ‘사회적 합의가 어렵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기획재정부 고위 관계자는 이날 “지난 10년간 ‘영리냐, 비영리냐’로 논쟁을 해왔는데 영리병원의 ‘영’자만 나와도 국회에서 난리가 난다”며 “이런 상황에서 영리병원을 고집하는 것은 현실적 접근이 아니다”고 말했다.
기재부는 박근혜 정부 출범 후 첫 서비스 산업 대책을 내놓은 지난 7월에 이미 영리병원과 같은 이해관계가 대립되는 사안에 대해선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당시에도 무리하게 영리병원을 강행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간접적으로 내비친 것이다.
영리병원이 생각만큼 ‘파괴력 있는 대책’이 아니라는 과거 경험도 고려됐다. 경제자유구역과 제주지역에 이미 제한적으로 영리병원 설립이 가능하지만 실제 투자자가 잘 나서지 않는다는 것이다.
영리병원 없이도 의료산업 발전이 가능하다는 계산도 깔려 있다. 외국인 환자 유치 실적이 단적인 예다. 국내 병원의 외국인 환자 유치가 허용된 것은 2009년 5월 의료법이 개정되면서부터다. 당시 6만명 정도에 그쳤던 외국인 환자 수는 매년 큰 폭으로 늘어나며 지난해 15만명을 넘어섰다. 정부 관계자는 이를 두고 “의료 산업 발전에 영리병원이 꼭 필요한 건 아니라는 증거”라고 해석했다.
물론 국내 병원의 외국인 환자 유치 실적은 아시아 경쟁국에 비해 훨씬 뒤처진다. 2010년에 이미 태국은 한국의 10배나 되는 156만명의 외국인 환자를 끌어모았다. 인도(73만명)와 싱가포르(72만명)도 한국보다 외국인 환자 유치 실적이 5배나 많다.
○의료 규제는 과감히 푼다
정부는 이에 따라 오는 12월에 발표할 4차 투자활성화 대책(의료산업 발전대책)에서 영리병원 문제는 꺼내지 않기로 했다. 대신 그밖의 의료산업 규제를 폭넓게 완화할 방침이다. “영리병원 문제만 빼고 A부터 Z까지 다 들여다보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
현재 거론되는 주요 대책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병원에 여행업을 허용하는 것이다. 현행 의료법상 병원은 외국인 환자를 직접 유치할 수 없다. 여행사가 외국인 환자를 유치해오면 치료만 할 뿐이다. 강종석 기재부 서비스경제과장은 “환자 입장에선 중개 수수료 때문에 치료 비용이 높아질 수 있는 데다 브로커들이 ‘질 낮은’ 병원으로 환자들을 데려가면서 한국 병원에 대한 이미지가 나빠지는 문제도 있다”고 지적했다.
메디텔(의료관광용 호텔) 거리 규제를 푸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다. 현재 메디텔은 병원으로부터 반경 1㎞ 안에 지어야 하는데 이를 풀어주겠다는 것이다. 거리 제한을 완전히 푸는 방안과 3~5㎞ 정도로 완화하는 방안이 유력하다.
대학병원 등 43개 상급 종합병원의 병실 가운데 외국인 입원 환자 비율을 5%로 제한하는 ‘5%룰’도 손질 대상이다. 현재 국내 상급 종합병원들은 이 비율이 1% 안팎이어서 당장 이 규제 때문에 외국인 환자 유치에 애를 먹는 것은 아니지만 규제 완화 효과는 기대 이상으로 클 수 있다.
정기택 경희대 의료경영학과 교수는 “투자자들은 이런 규제를 보고 정부가 의료 산업 육성에 대한 의지가 있는지, 없는지 판단한다”며 “중국은 리커창 총리, 일본은 아베 신조 총리가 의료산업 활성화에 나서고 있는 만큼 우리도 의료산업 규제 완화를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다.
의료산업이 활성화되면 상당한 고용 창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10억원 투자당 고용창출효과는 제조업이 4.9명인 데 비해 의료서비스업은 16.3명이다.
현오석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지난 21일 충북 오송생명과학단지 방문 현장에서 “매출 165조원인 삼성전자의 고용이 16만명에 그치는 데 반해 매출 1조원의 아산병원은 1만명을 고용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 영리병원
투자자로부터 자본을 유치해 병원을 운영하고 발생한 수익을 투자자에게 되돌려주는 주식회사 형태의 병원. 투자개방형 의료법인이라고도 한다. 현행 의료법은 의료기관 설립자격을 의사와 비영리법인으로 제한해 영리병원 설립을 막고 있다. 다만 경제자유구역과 제주에선 특별법에 따라 외국자본에 한해 영리병원 설립이 가능하다.
주용석/김우섭/고은이 기자 hohoboy@hankyung.com
○영리병원 “사회적 합의 어렵다”
정부의 영리병원 논의 중단 배경에는 ‘사회적 합의가 어렵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기획재정부 고위 관계자는 이날 “지난 10년간 ‘영리냐, 비영리냐’로 논쟁을 해왔는데 영리병원의 ‘영’자만 나와도 국회에서 난리가 난다”며 “이런 상황에서 영리병원을 고집하는 것은 현실적 접근이 아니다”고 말했다.
기재부는 박근혜 정부 출범 후 첫 서비스 산업 대책을 내놓은 지난 7월에 이미 영리병원과 같은 이해관계가 대립되는 사안에 대해선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당시에도 무리하게 영리병원을 강행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간접적으로 내비친 것이다.
영리병원이 생각만큼 ‘파괴력 있는 대책’이 아니라는 과거 경험도 고려됐다. 경제자유구역과 제주지역에 이미 제한적으로 영리병원 설립이 가능하지만 실제 투자자가 잘 나서지 않는다는 것이다.
영리병원 없이도 의료산업 발전이 가능하다는 계산도 깔려 있다. 외국인 환자 유치 실적이 단적인 예다. 국내 병원의 외국인 환자 유치가 허용된 것은 2009년 5월 의료법이 개정되면서부터다. 당시 6만명 정도에 그쳤던 외국인 환자 수는 매년 큰 폭으로 늘어나며 지난해 15만명을 넘어섰다. 정부 관계자는 이를 두고 “의료 산업 발전에 영리병원이 꼭 필요한 건 아니라는 증거”라고 해석했다.
물론 국내 병원의 외국인 환자 유치 실적은 아시아 경쟁국에 비해 훨씬 뒤처진다. 2010년에 이미 태국은 한국의 10배나 되는 156만명의 외국인 환자를 끌어모았다. 인도(73만명)와 싱가포르(72만명)도 한국보다 외국인 환자 유치 실적이 5배나 많다.
○의료 규제는 과감히 푼다
정부는 이에 따라 오는 12월에 발표할 4차 투자활성화 대책(의료산업 발전대책)에서 영리병원 문제는 꺼내지 않기로 했다. 대신 그밖의 의료산업 규제를 폭넓게 완화할 방침이다. “영리병원 문제만 빼고 A부터 Z까지 다 들여다보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
현재 거론되는 주요 대책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병원에 여행업을 허용하는 것이다. 현행 의료법상 병원은 외국인 환자를 직접 유치할 수 없다. 여행사가 외국인 환자를 유치해오면 치료만 할 뿐이다. 강종석 기재부 서비스경제과장은 “환자 입장에선 중개 수수료 때문에 치료 비용이 높아질 수 있는 데다 브로커들이 ‘질 낮은’ 병원으로 환자들을 데려가면서 한국 병원에 대한 이미지가 나빠지는 문제도 있다”고 지적했다.
메디텔(의료관광용 호텔) 거리 규제를 푸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다. 현재 메디텔은 병원으로부터 반경 1㎞ 안에 지어야 하는데 이를 풀어주겠다는 것이다. 거리 제한을 완전히 푸는 방안과 3~5㎞ 정도로 완화하는 방안이 유력하다.
대학병원 등 43개 상급 종합병원의 병실 가운데 외국인 입원 환자 비율을 5%로 제한하는 ‘5%룰’도 손질 대상이다. 현재 국내 상급 종합병원들은 이 비율이 1% 안팎이어서 당장 이 규제 때문에 외국인 환자 유치에 애를 먹는 것은 아니지만 규제 완화 효과는 기대 이상으로 클 수 있다.
정기택 경희대 의료경영학과 교수는 “투자자들은 이런 규제를 보고 정부가 의료 산업 육성에 대한 의지가 있는지, 없는지 판단한다”며 “중국은 리커창 총리, 일본은 아베 신조 총리가 의료산업 활성화에 나서고 있는 만큼 우리도 의료산업 규제 완화를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다.
의료산업이 활성화되면 상당한 고용 창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10억원 투자당 고용창출효과는 제조업이 4.9명인 데 비해 의료서비스업은 16.3명이다.
현오석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지난 21일 충북 오송생명과학단지 방문 현장에서 “매출 165조원인 삼성전자의 고용이 16만명에 그치는 데 반해 매출 1조원의 아산병원은 1만명을 고용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 영리병원
투자자로부터 자본을 유치해 병원을 운영하고 발생한 수익을 투자자에게 되돌려주는 주식회사 형태의 병원. 투자개방형 의료법인이라고도 한다. 현행 의료법은 의료기관 설립자격을 의사와 비영리법인으로 제한해 영리병원 설립을 막고 있다. 다만 경제자유구역과 제주에선 특별법에 따라 외국자본에 한해 영리병원 설립이 가능하다.
주용석/김우섭/고은이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