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포럼] 미국 정치는 왜 타락했나
오랜만의 미국 출장에서 가장 거슬렸던 것이 호텔 엘리베이터다. 수도 워싱턴의 중심가 호텔인데도 느려 터지고 덜컹대는 엘리베이터는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30년도 더 된 듯한 GE의 엘리베이터는 셧다운(정부 일부폐쇄) 파동을 겪은 미국 정치와 묘하게 오버랩됐다.

셧다운은 한국보다 결코 덜하지 않은 미국 정치의 양극화에 뿌리가 있다. 워싱턴포스트의 글렌 케슬러 칼럼니스트는 “현실에선 같이 살지만 정치적으로는 각자 완전 딴 세상에 산다”고 지적했다. 정치에 환멸을 느끼는 것은 한국이나 미국이나 똑같은가 보다.

양극화 뿌리는 게리맨더링

정치 양극화는 우선 제도가 만들어낸다. 하원 선거구는 양당 야합으로 거의 게리맨더링 수준이다. 2년마다 뽑는 하원 435석 중 대략 60석 정도만 주인이 바뀔 뿐, 대부분은 특정 정당의 전유물이다. 최근 작고한 빌 영 의원, 불법시위로 수갑이 채워진 찰스 랭걸 의원처럼 무려 22선(44년)이 가능한 이유다. 당선보다 경선이 더 중요하므로 타협의 인센티브도 없다.

공천 프라이머리(예비경선)가 양극화를 더욱 부채질한다. 일반 국민은 무관심하고 적극적인 관심층만 투표하니 극단적인 주장을 펼수록 유리한 구조다. 게다가 선거자금 사용이 용이해 지난해 대선 선거자금은 60억달러(약 6조4000억원)에 달했다. 이 중 상당액은 극단적이고 선동적인 TV 정치광고에 쏟아부었다. 이익집단들이 맨입으로 정치자금을 냈을 리도 만무하다. 여기에다 정파적인 언론이 상황을 악화시키고 트위터는 갈등 증폭장치로 작용한다.

이런 배경에서 나랏빚이 해마다 1조달러씩 불어나도 6000억달러짜리 오바마케어가 강행됐고, 티파티는 강경 대치로 되레 입지를 넓혔다. 셧다운은 3개월 유예됐을 뿐 해결된 것은 하나도 없다. 정치가 갈등의 담합구조로 전락한 결과다. 최초의 민주국가가 바로 그 민주적 프로세스 탓에 세계의 걱정거리가 된 셈이다.

정치가 갈등의 담합으로 전락

미국 정치는 구조적 결함에도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다. 제도가 재건축이 아닌 ‘관습의 축적’이기 때문이다. 호텔의 낡은 엘리베이터처럼 문제가 극에 달해 도저히 못 견딜 지경이 되지 않는 한 웬만해선 그대로 간다. 미국 헌법은 1787년 제정 이래 27차례 개정됐지만 수정조항 27가지를 추가했을 뿐이다. 한국처럼 송두리째 뜯어고치는 게 아니다. 심지어 수정조항 27조(의원 보수변경 제한)는 프랑스 혁명 때(1789년) 발의돼 203년 뒤인 1992년에야 비준돼 시행됐을 정도다.

조너선 스위프트는 ‘걸리버 여행기’(1726년) 3부 하늘을 나는 섬(라퓨타)에서 정치 갈등에 대해 풍자적 해법을 제시했다. 양당에서 각기 100명의 지도자를 골라낸다. 훌륭한 외과의사가 이들의 뇌를 반으로 잘라 반대 당 사람들의 뇌에 붙인다. 그러면 두 개의 뇌가 두개골 속에서 논쟁을 벌이지만 얼마 안 가 서로를 이해하고 국민이 바라는 조화로운 사고와 중용이 생겨날 것이란 이야기다.

한국 정당들 역시 반대를 위한 반대와 정쟁으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한다. 정치가 단 하루라도 국민을 편하게 해준 날이 있는가. 민주주의는 너무도 소중한 가치임에 틀림없지만 과연 가장 이상적인 제도인지는 의문이 들게 한다. 라퓨타식 해법이라도 도입해야 하나.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