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폴라 감독이 연출한 이 영화는 감시당하는 줄 뻔히 알면서도 손을 쓸 수 없는 개인의 무력함을 확인시켜준다. 당시엔 닉슨 행정부가 야당 선거사무소를 도청한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미국이 떠들썩했다. 이 작품은 1974년 칸영화제에서 그랑프리의 영예를 안았고, 닉슨은 그 해 백악관을 떠났다. 1977년 박동선 사건 때는 미국이 청와대를 도청한 게 들통나 양국 관계가 얼어붙었다.
대부분의 국가는 법으로 도청을 금하고 있지만, 안보나 테러 예방 차원에서 예외 조항을 두기도 한다. 최근 미국이 세계 80여곳에 비밀 도청 조직을 두고 각국 정상들의 통화까지 엿들은 사실이 드러나 난리법석이다. 도대체 미국 첩보망이 얼마나 촘촘하길래 속수무책일까.
휴대전화에서 기지국으로 가는 통화내용을 무선신호로 추출해 음성 정보로 전환하는 방식은 이미 낡은 수법에 속한다. 요즘은 전 세계 통신 정보의 80%가 오가는 해저 광케이블을 통째로 훑는다고 한다. 인터넷 검색과 이메일, 페이스북, 트위터 정보도 다 빼낸다. 하늘에선 적외선·비디오 카메라를 장착한 위성과 무인기가 그 일을 한다.
국제사회의 비난과 달리 미국 정치권의 반응은 의외다. 보수와 진보 가릴 것 없이 “정당한 국가안보 임무이고 독일과 프랑스 등의 수많은 국민도 구했다”면서 정부를 옹호하고 나선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새와 벌과 스파이(Birds, Bees and Spies)’라는 제목의 사설까지 썼다. 새와 벌은 섹스와 출산을 뜻하는 은어다. 새의 산란과 벌의 꽃가루 수분에 빗댄 성교육 용어이기도 하다. 내놓고 말할 순 없지만 모두가 묵인하는 비밀이라는 얘기다.
우리 속담에도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고 한다. 영원한 비밀이란 없는 법이다. 그동안 미국인들은 테러 예방을 위해서라면 자유를 제한해도 좋다는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다른 반응도 나오는 모양이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는 소설로 끝나야지 현실이 되어선 안 된다는 문구까지 시위 현장에 등장했다. 하긴 ‘빅 브러더’ 가 모든 것을 감시하는 세상에서는 새와 벌, 스파이는 또 어떻게 구분하나.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