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채 KT 회장이 29일(현지시간) 르완다 수도 키갈리에 있는 어반호텔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검찰 수사에 대한 입장 등을 이야기하고 있다. 지난 22일 검찰의 압수수색 이후 이 회장이 자신의 거취에 대해 언급한 것은 처음이다. 키갈리 사진공동취재단
이석채 KT 회장이 29일(현지시간) 르완다 수도 키갈리에 있는 어반호텔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검찰 수사에 대한 입장 등을 이야기하고 있다. 지난 22일 검찰의 압수수색 이후 이 회장이 자신의 거취에 대해 언급한 것은 처음이다. 키갈리 사진공동취재단
“거대 쓰나미를 어찌 돌파하겠나.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언제까지일지 모르지만 끝까지 최선을 다할 뿐이다.”

‘아프리카 혁신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르완다를 방문 중인 이석채 KT 회장은 29일(현지시간) 르완다 키갈리 어반호텔에서 동행 기자들과 간담회를 열고 검찰의 배임 혐의 수사와 사퇴압력설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그는 투자 명목으로 인수한 기업 대부분이 적자라며 참여연대가 고발한 배임 혐의에 대해 “KT가 그동안 실시한 인수합병이 실패한 적 있느냐”며 “벤처기업은 인수하면 (수익을 내는 데) 시간이 걸리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 회장은 비자금으로 보이는 계좌가 발견됐다는 일부 언론 보도에 대해선 “그걸 믿느냐”며 “지난 4~5년 동안 KT를 투명한 회사로 만들려고 노력했다. 우리는 1급수에서만 사는 물고기”라고 주장했다. 그는 1997년 한보사건 때 자신의 계좌에서 거액이 발견됐다는 언론 보도를 상기하며 “당시 언론이 나를 최고 나쁜 사람으로 썼다. 어떤 논객은 나더러 태평양에 빠져 죽으라고 썼다. (언론이) 미안하다고 생각하지 않느냐. 모르지, 내가 하나님과 계약해 돈을 지구에 안 두고 하늘에 뒀는지…”라는 말로 의혹을 부인했다.

이 회장은 ‘과거 뒷모습이 아름답고 싶다고 말했다’는 한 기자의 지적엔 솔직한 심정을 토로했다. 그는 “내가 장·차관을 오래 못했지만 지난 자리에는 엄청난 업적이 있다. 모두 현실을 개혁하는 것이다. 보통 사람이라면 총을 12번 맞았을 것이다. 부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살아남은 것이다. 옛날에도 나는 목숨을 몇 번 버렸다. (김영삼) 대통령 수행하러 갔을 때 (누군가) 자동차 앞바퀴 볼트를 다 뺀 적도 있다. 협박도 많았다. 여기 (KT) 와서도 마찬가지다. 나 죽인다는 사람 여럿 있었다. 타워팰리스로 (집을) 옮긴 것도 나는 괜찮은데 가족이 안심할 수 없어서”라고 말했다.

현재 상황을 정면 돌파하겠느냐는 질문에 이 회장은 “나는 정면 돌파란 단어를 모른다”며 “세상의 종말이 와도 사과나무를 심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일각에서 제기된 독재 경영과 관련해선 “이석채에 밉보이면 임원도 하루아침에 나가야 한다는 말이 있다던데 사실이 아니다”며 “KT는 한 개인이 아니라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기업”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흔들리는 KT 지배구조에 대해서도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이어 “내 나이쯤 되면 사심이 없어진다”며 “(아프리카 진출을 통해 KT와 국민에게) 훨씬 넓은 세상을 물려주고 싶은 것뿐”이라고 했다.

최근 검찰의 이 회장에 대한 강도 높은 수사와 관련, 일각에선 KT가 2007년 새누리당 대선 후보 경선 시절 이명박 전 대통령의 정책특보(홍보단장)를 지낸 임현규 씨를 올 7월 부사장으로 영입한 것이 결정적 계기가 됐다는 얘기가 나온다. 임 부사장은 경선 당시 박근혜 후보를 비방한 혐의로 징역 8개월, 집행유예 2개월을 선고받아 ‘박근혜 저격수’로 불렸다. 청와대 관계자는 최근 “이 회장이 영입하지 말았어야 할 사람을 영입했다”고 말했다.

한편 정몽준 새누리당 의원은 이날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중진 연석회의에서 이 회장에 대한 검찰수사와 관련, “배임과 비자금 조성 혐의가 제기되고 있지만 시중에선 이를 정치적으로 받아들이는 시각이 더 많다”며 “죄가 있으면 조사받고 처벌받는 게 당연하나 새 정권이 출범하면 반복되는 지난 정권 인사의 축출 과정이 아닌가 하는 말이 많은 것이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정 의원은 이어 “만에 하나 정권이 바뀌었으니 자기사람을 심겠다는 의도라면 국민이 실망한다”며 “오얏나무 아래서는 갓도 고쳐 쓰지 않는다는 옛말이 있는데 오해 없게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회장은 케냐 또는 우간다를 거쳐 11월1일 귀국할 예정이다.

키갈리=전설리/서울=추가영 기자 slj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