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세진 교수의 경제학 톡] (57) 비정규직 190만명 시대
경제학에서 사회현상을 분석할 때 사람에 대해 두 가지 가정을 한다. 합리성(rationality)과 이기심(selfishness)이다. 합리성이란 어떤 목적을 추구하는 데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택한다는 의미고, 이기심이란 그 목적이 자신의 만족을 최대화하는 것에 있다는 뜻이다. 즉 사람은 이기적인 목적을 세우고 이를 이루기 위해 합리적으로 행동한다는 가정이다. 좋은 의도를 갖는 많은 정책들이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하는 경우를 보면 사람의 합리성과 이기심, 특히 이기심을 간과한 결과인 때가 많다. 노동시장에 대한 정책 몇 가지를 이런 관점에서 살펴보자.

비정규직보호법으로 통칭되는 법률들이 있다. 가장 논란이 되는 내용 중 하나는 어떤 사람이 비정규직으로 2년 이상 근무하면 정규직으로 전환되도록 한 규정이다. 법규상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차이는 비정규직은 계약기간이 정해져 있고 정규직은 그렇지 않다는 정도지만, 고용의 안정성에 크게 차이가 있는 것 외에도 비정규직은 노동조합 등을 통한 협상력 제고가 사실상 어려워 임금 및 처우가 정규직에 비해 뒤떨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해당 법규의 의도야 당연히 비정규직을 줄이고 정규직을 늘리려는 것이었겠지만, 시행 6년인 지금 가장 불거진 문제는 많은 비정규직 근로자가 2년 후 다른 직장을 알아봐야 하는 현실이다. 고용주의 이기적 입장에서 여러 가지 이유로 정규직 근로자를 늘리는 것이 부담스럽다면 비정규직을 2년씩만 고용하는 것이 합리적 선택인 것이다.

2014년부터 시행되는 고등교육법 개정안에 대학은 대학의 시간강사들과 반년이 아닌 1년 단위로 계약하고 그들에게 4대 보험 혜택을 주도록 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4대 보험은 국가가 운영하는 네 가지 사회보험으로 연금보험, 건강보험, 산업재해보상보험(산재보험), 고용보험을 포함하는데, 직장을 통해 가입하면 고용주가 보험료의 반 이상을 부담하기 때문에 근로자 입장에서는 혜택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법 시행을 앞두고 이미 많은 대학들에서 교수들이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강의 시간을 늘리는 등 시간강사 수를 줄이기 위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런 대학들을 도덕적으로 비난할 수는 있겠지만, 정책입안자들이 대학의 이기적인 대응을 예상하지 못했다면 정말 유감스런 일이다.

지난주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대학을 졸업한 비정규직 근로자가 사상 최대인 190만명에 육박한다고 한다. 비정규직 근로자의 임금이 약 143만원으로 정규직 근로자의 약 255만원보다 112만원 적었는데, 연령과 교육수준, 근속기간 등을 동등한 조건으로 놓고 계산한다면 정규직이 250만원을 받을 때 비정규직은 220만원 정도 받는 셈이라고 한다.

임금에 이렇게 차이가 나는 이유는 비정규직 근로자가 평균적으로 더 젊고 근속기간이 짧기 때문이기도 하다. 많은 청년이 비정규직을 전전해야 하는 현실을 개선하려면 먼저 고용주의 이기심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야 한다. 의도만 좋은 정책은 역효과만 일으키기 때문이다.

민세진 < 동국대 경제학 교수 sejinmin@dongguk.ed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