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정부도 엇박자 내는 '근로시간 단축'
“현장을 몰라요, 현장을.”

산업통상자원부의 한 간부는 기획재정부와 고용노동부가 도입하려는 근로시간 단축방안을 놓고 이렇게 말하며 혀를 끌끌 찼다. 주당 최장 근로시간을 현행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줄이는 게 새 방안의 골자다. 기존 근로자들의 장시간 근로 부담을 줄이는 한편 단축되는 시간만큼 다른 인력을 추가로 고용해 일자리를 늘리자는 정책이다. 이런 내용을 담은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이번 정기국회 기간 내 처리가 추진되고 있다.

하지만 같은 정부 내에서 산업부가 이처럼 강경하게 반대 목소리를 내는 건 의외였다. 산업부 간부의 논리는 명료했다. “근로시간 단축으로 당장 임금이 줄어들 텐데, 근로자들이 좋아하겠느냐”는 것이다.

한국노동연구원은 근로시간 단축제가 시행될 경우 제조업과 서비스업 종사자의 초과 근로수당이 40% 이상(연간 2조852억원) 줄어들 것으로 분석했다. 종업원 1000명 미만 중소·중견기업 근로자들의 임금 감소액은 연간 1조7379억원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산업부 간부는 고용 유연성 문제까지 도마에 올렸다. 정부가 근로시간 단축을 통해 일자리를 늘려야 한다면서 노조 파업 때 외부에서 대체 근로자를 고용해 투입하는 것은 왜 허용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정진행 현대자동차 사장도 지난달 29일 윤상직 산업부 장관과 30대 그룹 사장단 간 간담회에서 고용을 확대해달라는 정부 주문에 “고용 유연성이 이렇게 취약한 상황에서 고용 형태를 규제하는 나라가 어디 있느냐”고 불만을 토로했다.

기업들은 근로시간 단축이 정부의 전형적인 탁상공론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노조가 줄어든 근로시간에 비례해 감소하는 임금을 보전해달라고 요청할 게 뻔하다는 이유에서다. 임금 보전분에다 신규 인력 고용에 따른 추가 인건비를 감안하면 기업 부담은 가중될 수밖에 없다.

근로시간 단축제 도입을 축으로 한 ‘고용률 70% 달성’은 박근혜 대통령의 핵심 공약이다. 그러나 공약이라는 이유만으로 밀어붙이는, 현장과 동떨어진 정책은 기업을 옥죄는 또 하나의 규제사슬일 뿐이다. 박 대통령이 이런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김홍열 경제부 기자 com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