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석 씨의 ‘포로’.
김호석 씨의 ‘포로’.
세상이 혹독한 시련을 안길 때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나. 오는 5일까지 견지동 아라아트센터에서 열리는 개인전 ‘그리움이 숨 막혀 그림이 된 김호석 붓’에 걸린 작품들은 자기 치유의 붓질을 보여준다.

화가 김호석은 울산 반구대 암각화 보존 문제를 놓고 관청과 오랫동안 지루한 줄다리기를 벌여야 했다. 그 와중에 재직 중인 대학 강의에서 사용한 표현을 놓고 제자와 소송을 벌이는 기막힌 현실과도 마주해야 했다. 내면에서 끓어오르는 분노를 마냥 누르고만 있을 수는 없었던 그는 가족과 함께했던 소소한 일상의 즐거움을 떠올리며 마음을 토닥였다.

딸이 엄마와 함께 DMB(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를 시청하는 ‘통하라’, 새치를 뽑아주며 함박웃음을 터뜨리는 ‘포로’는 어떤 난관 속에서도 변함없이 울타리가 돼주는 가족 유대의 힘을 새삼 확인시켜 준다. 1990년대에 전통적인 수묵채색 인물화를 현대적 감각으로 소화해 크게 주목받았던 그의 필력과 남다른 관찰력이 유감없이 발휘된 작품들이다.

그러나 분노를 턱밑까지 드러낸 작품도 눈에 띈다. 상반신은 벗은 채 한 손에 칼을 들고 관객을 노려보는 소년은 마치 작가의 착잡한 심사를 드러낸 자화상 같다. 털 뽑힌 닭이 벽에 매달린 모습을 묘사한 ‘닭집 여자’, 탁주잔 가장자리에 발을 붙이고 술을 빨아 먹는 파리가 인상적인 ‘탁주에 발을 씻다’는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신랄한 은유다.

작가는 그러나 이런 울분을 거친 감정적 붓질로 풀어내지 않았다. 사물의 요체만을 담담히 그려내는 문인화적 격조를 잃지 않았다. 서정적 감수성은 오히려 깊어졌다. 소소한 일상사지만 그 얼마나 정겹고 애틋한가. 평화로운 일상에 대한 숨 막힐 듯한 그리움은 전시의 제목처럼 그렇게 그림이 됐다. (02)733-1981

정석범 문화전문기자 sukbum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