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외환시장 개입 자제' 강력 요구…정부 "환율급락 용인못해" 정면 대응
미국 정부가 한국의 원화가치가 저평가돼 있다며 “외환당국이 환율시장 개입을 자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 재무부가 30일(현지시간) 의회에 제출한 ‘반기 환율정책 보고서’에서다.

보고서는 국제통화기금(IMF)의 자료를 인용해 원화가 경제 기초여건보다 2~8% 저평가돼 있으며 필요 이상으로 외환보유액을 더 쌓을 필요가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한국의 외환시장 개입이 무질서한 시장 환경과 같은 예외적인 조건에서만 이뤄지도록 권고할 것이라면서 “주요 20개국(G20)의 수준에 맞춰 외환시장 개입 후 이를 즉시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시장 개입은 원화가치 상승 압력을 막기 위한 목적 대신 금융시장의 리스크 방지를 위해 사용되도록 촉구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한국 정부가 경상수지 흑자 폭을 늘리기 위해 환율시장에 개입했다는 정황이 포착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경상수지와 시장 개입, 수출정책 부문은 4월 보고서에는 없던 내용으로, 이번에 요구 수위를 더욱 높인 것이다.

기획재정부는 이에 대해 기존 환율정책 기조를 유지하겠다는 태도를 보였다. 기재부 관계자는 “환율이 급변동할 때 스무딩 오퍼레이션(미세조정)이 필요하다는 게 우리의 일관된 입장”이라며 “이번 보고서 때문에 정책이 영향받을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급격한 환율 하락(원화가치 급등)은 막겠다는 것이다. 그는 이어 “미 재무부 환율보고서는 의회의 요청으로 1년에 두 번 나오는 정기보고서로, 이번 보고서 수위가 상반기와 별로 다르지 않다”고 덧붙였다.

기재부는 ‘한국 정부가 G20 수준에 맞춰 외환시장 개입 내용을 즉각 공개해야 한다’는 미국 환율보고서의 요구에 대해서도 “한국 상황과 맞지 않다”고 반박했다. 또 다른 기재부 관계자는 “선진국은 대부분 기축통화인 데다 우리보다 외환시장 규모가 큰 반면 한국은 규모가 작고 역외투기세력도 많다”며 “시장 개입 정보를 공개하면 오히려 외환시장 혼란을 부추길 수 있어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31일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일보다 50전 오른 달러당 1060원70전에 마감, 나흘 만에 상승세로 돌아섰다. 월말을 맞아 수출업체의 네고(달러화 매도) 물량이 몰리면서 1059원 선까지 내려가기도 했지만 이내 1060원 선을 회복했다. 한 외환시장 관계자는 “장 막판에 주식시장에서 외국인이 매도로 돌아서면서 환율 상승 압박이 커졌다”며 “미 재무부 언급과 상관없이 환율 수준을 지키려는 외환 당국의 개입도 있었던 것 같다”고 추정했다.

워싱턴=장진모 특파원/주용석 기자 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