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 브뤼셀의 피핑 톰 무용단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무용수 김설진(32) 정훈목 씨(35)는 벨기에가 현대무용 강국이 된 비결로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첫손가락에 꼽았다. 가브리엘라 카리조와 프랭크 샤르티에가 2000년 창단한 피핑 톰 무용단은 국내에는 생소하지만 유럽에선 유명한 무용단체. 영화와 연극적인 댄스, 음악이 절묘하게 결합된 실험적인 몸짓으로 주목받고 있다. 2~3일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 무대에서 ‘반덴브란덴가 32번지’를 연기하는 이들을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 사무실에서 만났다.
이들은 “한국에서 정부지원금을 가장 많이 타는 단체가 받는 돈이 벨기에에선 가장 적은 수준”이라며 “규모가 큰 7~8개 단체는 모든 단원과 스태프의 월급을 충당할 수 있는 정도여서 금액이 몇 백억까지 된다”고 말했다. 덕분에 무용수들은 작품에만 집중할 수 있다. 국내 현대무용수들이 생계 유지를 위해 낮에 아르바이트, 레슨을 하는 것과는 천지차이다.
이들은 또 “벨기에는 20년간 차곡차곡 쌓은 인적 네트워크와 극장 간 연계 시스템이 잘돼 있고 지원금도 무용단체 규모에 따라 합리적으로 배분한다”며 “특히 일을 그만둬도 월급의 70~80%를 받을 정도로 예술인 복지가 잘돼 있어 무용수마다 차이는 있지만 150만원 정도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다”고 전했다. 객석을 채우는 다양한 관객도 현대무용 발전의 든든한 토대다.
“벨기에 사람들은 흔히 ‘심심한데 무용이나 보러 갈까’라고 해요. 슈퍼에서 장을 보고 있는데 지난 공연 잘 봤다고 인사를 건네는 등 무용이 대중적인 장르죠. 어린이 전용극장이 많아 어릴 때부터 견학 가듯 무용을 보고 함께 공연에 대해 토론하는 것도 우리에겐 낯선 풍경이고요.”
이들이 이번에 공연하는 ‘반덴브란덴가 32번지’는 2009년 벨기에에서 초연해 유럽과 미국에서 150회 이상 공연하며 화제가 됐던 작품.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의 일본 영화 ‘나라야마 부시코’를 모티브로 한 무용극으로 한겨울 산 중턱의 허름한 트레일러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뿌리, 가족, 문화의 굴레에서 벗어나고자 몸부림치지만 좌절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피핑 톰 무용단은 모든 작품을 안무가와 무용수들이 함께 만드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들은 “안무가들은 작품에 대한 간단한 배경과 제목만 주고 무용수에게 뭐든 보여달라고 한다”며 “움직임 캐릭터 스토리 관계 등 무엇이든 아이디어를 내서 같이 만들어간다”고 설명했다. 또 “흔히 무용이라면 안무가가 순서를 짜주고 무용수들이 안무를 외워 기능적으로 공연하는 게 많은데 피핑 톰은 희소성을 중시하기 때문에 무용수 개인의 삶을 끄집어내 작품으로 만든다”고 덧붙였다. 3만~7만원. (02)2005-0114
김인선 기자 ind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