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재개발구역 해제 이후 소형주택 신축이 봇물을 이루면서 난개발 우려가 커지고 있는 서울 당산동6가 일대.  이현일 기자
지난해 재개발구역 해제 이후 소형주택 신축이 봇물을 이루면서 난개발 우려가 커지고 있는 서울 당산동6가 일대. 이현일 기자
31일 서울 지하철 2·9호선 환승역인 당산역 이면도로 안쪽. 오세훈 전 시장의 ‘한강변 르네상스’ 계획에 따라 ‘초고층 주거타운’으로 탈바꿈할 것으로 기대됐던 곳이다. 하지만 지난해 뉴타운사업이 백지화되면서 이곳에 소형주택 신축공사가 우후죽순처럼 벌어지고 있다.

20~30년된 낡은 주택을 헐고 다세대·연립주택 등을 짓는 것이다. 사람이 지나기도 불편한 좁고 구불구불한 골목은 그대로 두고 건물만 새로 올라간다. 골목길은 공사 차량 한 대가 지나기 어려울 정도다.

○대책 없는 뉴타운 해제에 주민 분통

서울시가 작년부터 추진해온 ‘뉴타운 출구전략(사업추진 여부 정리)’이 본격화되면서 재개발을 포기한 낙후지역이 늘어나고 있다. 개발계획이 사라지자 무분별한 건물 신축이 증가하면서 난개발에 따른 주거환경 악화(슬럼화)가 사회 문제로 부상하고 있다.

이명박 전 시장 시절부터 지난 10년간 투기 광풍을 몰고온 ‘뉴타운’은 부동산시장 침체가 장기화되면서 사업추진 동력을 잃었다. 서울시가 시내 571개 뉴타운·재개발구역에 대한 실태조사에 착수한 이후 88개 구역이 사업포기를 선언했다.

지난 9월 뉴타운에서 해제된 서울 창신·숭인 뉴타운의 경우 사업 포기 이후 슬럼화 위기에 빠졌다. 주민들은 낮에도 골목길을 지나다니기 무섭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뉴타운을 대체할 개발계획이 나오지 않자 한때 3.3㎡당 2700만원까지 치솟았던 동네 집값은 1000만~1200만원까지 떨어졌다.

작년 8월 재개발구역이 해제된 이후 난개발이 이뤄지고 있는 당산동6가와 양평동4가 일대도 마찬가지다. 당산동 강남공인 관계자는 “도로 등 기반시설이 열악한 지역은 뉴타운과 같은 ‘대규모 재개발’이 안 되면 주거환경 개선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일부 주민이 반대한다는 이유로 후속 대책도 없이 무턱대고 개발 해제부터 하는 바람에 주민들이 공황상태에 빠졌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실속 없는 맞춤형 후속대책

뉴타운 해제된 당산·창신동 "대책없이 풀어놔 난개발·슬럼지역 전락"
서울시는 지난 30일 뉴타운 수습방안 후속대책으로 ‘6대 현장 공공지원 강화책’을 발표했다. 뉴타운에서 해제되면 주민들이 다양한 대안사업을 선택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주거환경이 개선되려면 도로 등 기반시설과 공동이용시설, 범죄예방시설 등의 확충이 필수인데 서울시가 예산 지원을 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단계적으로 지원을 해나갈 방침이지만 예산 마련이 쉽지는 않은 상황”이라고 털어놨다. 시는 또 마을 단위로 재생사업을 펼치는 ‘소규모 정비사업’도 추진 중이다.

김세용 고려대 건축학과 교수는 “대규모 낙후지역에서는 골목길 정비와 주민편의시설 확충 등의 소규모 개발방식이 또 다른 난개발로 이어질 수 있다”며 “장기적 도시개발 차원의 종합 관리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