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검찰청 중앙수사부의 마지막 수사였던 저축은행 비리 사건으로 기소된 전직 고위 공무원 등이 잇따라 무죄 확정 판결을 받았다. 대법원은 김두우 전 청와대 홍보수석, 김장호 전 금융감독원 부원장보에 이어 31일 이철규 전 경기지방경찰청장, 김광수 전 금융정보분석원장(FIU)의 무죄를 확정했다. “유죄를 입증할 만한 직접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다”는 것이 무죄 판단의 근거였다.

검찰은 무리하게 기소를 강행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2011년 9월부터 지난 2월까지의 저축은행비리합동수사단 활동이 ‘대형 비리의 성공적 합동수사 모델’이라는 검찰 내부 평가도 크게 퇴색됐다. 합수단은 2월까지 김찬경 전 미래저축은행 회장 등 62명을 구속 기소하고 75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김광수 前 금융정보분석원장, 수뢰혐의 무죄 확정

검찰 '저축은행 사태' 무리한 기소…무죄 잇따라
“사필귀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저같이 억울한 공직자가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31일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김광수 전 금융정보분석원(FIU) 원장(56·차관보급·사진)은 “떳떳했기에 견딜 수 있었지만 주변의 따가운 시선을 받았던 가족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며 “이번 일로 안 해도 됐을 인생 공부를 많이 했다”고 토로했다.

대법원2부(주심 김용덕 대법관)는 부산저축은행 경영진에게서 청탁과 함께 금품을 받은 혐의(뇌물수수 등)로 기소된 김 전 원장에게 이날 무죄를 확정했다.

김 전 원장은 금융위원회 금융서비스국장이던 2008년 9월 “대전저축은행을 인수토록 도와 달라”는 청탁을 받고 김양 부산저축은행 부회장 등에게서 4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2011년 11월 구속 기소됐다.

앞서 저축은행 사태가 한창이던 2011년 6월2일 당시 여의도 금융감독원 건물에 있던 그의 집무실로 검찰 수사관들이 압수수색을 위해 들이닥쳤다. 엘리트 경제관료라는 안팎의 평가를 받아온 그는 20여년의 화려한 이력을 뒤로하고 나락으로 떨어졌다.

1심에서는 징역 1년6월에 벌금 1000만원, 추징금 2800만원을 선고받았으나 2·3심에서는 “김 부회장의 진술에 신빙성이 부족하고 관련자 진술이 서로 모순된다”는 이유로 무죄를 받았다.

김 전 원장 기소 당시 대검 중수1과장이었던 윤석열 여주지청장은 항소심 판결문부터 ‘기소 검사’로 이름을 올렸다.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사건 특별수사팀장이었던 윤 지청장은 최근 보고 누락 여부를 둘러싸고 지휘부와 갈등을 빚었다.

김 전 원장은 곧 복직 절차를 밟는다. 그는 향후 계획을 묻자 “이제부터 또 무엇인가를 시작할 것”이라고 답변했다.

김 전 원장과 친분이 두터운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은 “그동안 어려운 금융 현안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함께했던 훌륭한 공직자라 명예를 회복해 기쁘다”며 “저축은행 구조조정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어려움을 겪었는데 이제 나도 큰 짐을 내려놓게 됐다”고 말했다.

이철규 前 경기경찰청장, 알선수재 혐의 무죄 확정

검찰 '저축은행 사태' 무리한 기소…무죄 잇따라
“대검 중수부에서 이 사건으로만 7회에 걸쳐 기소했습니다. 죄가 없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어떻게든 엮어 넣으려고 그런 거죠.”

이철규 전 경기지방경찰청장(56·간부후보 29기·사진)은 대법원에서 무죄 확정 판결을 받은 31일 그간의 심경을 털어놨다.

대법원2부(주심 신영철 대법관)는 유동천 전 제일저축은행 회장 등에게서 수사무마 청탁 명목으로 금품을 받은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로 기소된 이 전 청장에게 이날 무죄 확정 판결을 내렸다.

이 전 청장은 중·고교 선배인 유 전 회장에게서 “경찰 수사가 잘 마무리되도록 힘써 달라”는 청탁과 함께 2008~2011년 4회에 걸쳐 3000만원을 받은 혐의 등으로 지난해 3월 구속 기소된 지 1년8개월 만에 명예를 회복했다.

윤대진 당시 저축은행합동수사단 1팀장(현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장)은 “2010년 봄, 2011년 가을” 식으로 돈을 건넨 날짜조차 특정하지 못하는 유 전 회장의 막연한 진술을 토대로 기소했다.

1·2·3심 재판부가 “유 전 회장이 정확한 기억이 없는 데도 확실한 사실인 것처럼 말해 신빙성이 떨어지는 데다 자신이 다른 혐의로 재판을 받던 상황이라 수사상 편의를 제공받으려고 허위진술을 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판단한 이유다.

이 전 청장은 수사권 조정 여부를 두고 검·경이 격돌할 때마다 강경한 목소리를 내 왔던 인물이다. 저축은행 파문으로 검찰 수사 대상에 포함됐을 때 경찰 안팎에서 “표적수사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그는 “검찰은 (검·경 수사권 조정과 관련된 게) 아니라고 하지만 세상 사람들은 수사 배경을 알지 않겠느냐”며 “검찰이 나를 집어넣으려고 제일저축은행 임직원 관련 몇 년치 자료를 갖다 놓고 압박하며 수사했다”고 말했다.

향후 거취와 관련, 이 전 청장은 “사표를 왜 내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20개월 동안 보직 없이 지냈다”며 “사표를 낼 수 있다고 해도 안 내겠다”고 단호한 입장을 밝혔다.

류시훈/이상은/김선주 기자 saki@hankyung.com bad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