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인물] 버나드 쇼는 우물쭈물하지 않았다
‘20세기 최고의 극작가’로 꼽히는 조지 버나드 쇼의 묘비명으로, 국내에선 모 통신사 광고를 통해 잘 알려진 문장이다. 그러나 이는 오역이었다. 원문은 “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내 오래 살다보면 이런 일 생길 줄 알았다니까)” 게다가 쇼는 94년 동안 살면서 우물쭈물하지 않았다.

1856년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태어난 쇼는 어려운 가정형편 탓에 초등학교만 마쳤다. 책에 파묻혀 지내다 20세 때 런던으로 갔다. 도서관과 토론모임을 전전하던 쇼의 이름이 외부로 알려진 건 카를 마르크스의 저서 ‘자본론’이 간접적인 계기가 됐다. 이 책에 심취한 쇼는 좌파 클럽인 ‘페이비언 협회’ 설립을 주도해 ‘페이비언 사회주의론’을 공동집필했다.

이후 신문에 투고를 하며 극작가, 비평가, 대중연설가로 변신했다. ‘워렌부인의 직업’(1893) ‘악마의 제자’(1897) ‘시저와 클레오파트라’(1898) ‘인간과 초인’(1903)을 잇따라 내놓으며 유럽 문학계의 ‘핫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잔다르크를 다룬 ‘성녀 존’(1923)으로 1925년 노벨문학상도 받았다. 이후에도 우물쭈물하지 않고 왕성한 집필을 이어갔다. 1913년작인 ‘피그말리온’은 1938년 영화화돼 아카데미 각본상도 거머쥐었다.

탁월한 식견과 위트 넘치는 비평가라는 호평과 함께 지나치게 설교적이며 오만한 인물이란 악평이 교차했던 쇼. 2차 대전 중 아내를 잃고는 런던을 떠나 낙향해 신부전으로 눈을 감았다. 63년 전 오늘이다.

백승현 기자 arg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