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딱 나흘 남았는데 잡혔어"
“아이고, 여보. 딱 4일 남았었는데…. 지금 잡혀버렸어.”

지난달 28일 서울 양재동의 한 빌라 앞. 김모씨(57)는 부인에게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어 마지막 하소연을 했다. 사기 혐의로 고소된 2006년부터 7년간 수사망을 피해온 그였다. 그러나 공소시효 만료일(1일)을 나흘 앞두고 새벽 사우나에서 느긋하게 돌아오던 도중 집 앞에서 붙잡히고 만 것. 새벽부터 집 앞에서 잠복한 서울중앙지검 현장수사지원반 수사요원들은 김씨를 즉각 체포했다.

김씨는 혀를 내두를 정도로 지능적인 사기범이었다고 검찰은 전했다. 검찰 관계자는 “서민들을 대상으로 전세금 사기를 수시로 벌여 18차례에 걸쳐 고소를 당했지만 워낙 주도면밀하게 범행을 저질러 모두 ‘혐의 없음’ 처분을 받거나 기소 유예를 받았다”며 “수사 시스템까지 훤히 알고 있어 이번 사건에서도 공소시효가 유지되는 7년간 수사망을 요리조리 피해 다녔다”고 말했다.

검찰에 따르면 2006년 서울 도곡동에서 부동산업을 하던 김씨는 한 세입자를 속여 전세보증금 3억6000만원을 뜯어낸 혐의로 고소됐다. 검찰은 김씨에게 수차례 출석을 통보했으나 김씨가 지능적으로 수사망을 피해온 탓에 7년간 붙잡지 못했다. 검찰 관계자는 “주거지를 수차례 옮기고 연락처를 바꾼 것은 기본”이라며 “소재가 불분명한 상태에서 가끔은 ‘자진 출석하겠다’고 먼저 전화를 걸어오는 등 체포영장 발부 사유를 피하기 위한 ‘관리’도 철저했다”고 말했다. 한 차례 자진 출석했다가 조사가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도주한 적도 있다고 검찰은 밝혔다.

그러나 공소시효 만료 대상 범죄자를 검토하던 검찰이 김씨의 소재지를 파악하면서 덜미가 잡혔다. 검찰은 시효가 얼마 남지 않은 만큼 김씨를 체포하자마자 곧바로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진행했고, 통상 밤 늦게 심사 결과를 내는 법원도 이례적으로 심사가 끝나자마자 1~2시간 뒤 영장을 발부했다.

서울중앙지검 형사7부(부장검사 김형렬)는 세입자를 속여 억대 전세금을 뜯어낸 혐의(사기)로 지난달 31일 김씨를 구속 기소했다.

정소람 기자 r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