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고위직 이틀에 한명꼴 '낙마'…고급 사교클럽에 첩 두고 호화생활
“열한 번째 호랑이를 잡았다.”

지난달 29일 중국 공산당 기율위원회가 랴오사오화 구이저우성 쭌이시 서기를 당규 및 법률 위반 혐의로 조사 중이라고 밝히자 중국 언론들은 일제히 이같이 보도했다. 시진핑 국가주석이 “호랑이든 파리든 가리지 않고 때려잡겠다”고 반부패 선언을 한 뒤 부성장급 이상 고위 관료(호랑이)가 11명째 낙마했다는 것이다.

지난해 11월 공산당 총서기로 취임한 시 주석의 첫 일성은 ‘반부패’였다. 그는 “현재 당은 당원의 부패와 인민과의 괴리, 형식적 관료주의 등으로 어려운 도전에 직면해 있다”며 “당을 더욱 엄격히 관리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로부터 1년여가 지났지만 당과 정부를 휩쓸고 있는 반부패 바람은 오히려 거세지고 있다. 그만큼 부패가 심각하다는 방증이다. “부패 척결 없는 중국의 선진화는 불가능하다”는 지적이다. 물론 제도 개선 없는 공포정치식 부패 청산이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지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도 적지 않다.

◆심각한 부패 문화

베이징 한복판에 있는 자금성에서 북쪽으로 5㎞ 남짓 가면 쑹주사와 즈주사라는 절이 나란히 있다. 건축된 지 600년이 넘어 베이징시에서 시급문화보호재로 지정한 곳이다.

그러나 이 절에는 스님도 신도도 없다. 일반인들도 출입을 못한다. 대신 돈 많은 회원들이 고급 음식을 먹으러 온다. 사업가들이 이 절을 사들여 일종의 고급 회원제 사교클럽인 후이쒀(會所)로 바꿨기 때문이다. 물론 불법이지만 이런 후이쒀는 베이징에 셀 수 없이 많다. 시내 번화가나 한적한 리조트에는 물론이고 국가급 공원 내에서도 버젓이 영업을 한다. 후이쒀 안에는 식당은 물론 골프연습장 사우나클럽 극장 등 첨단 편의시설도 있다.

후이쒀의 최고 고객은 중국의 고위 공무원들이다. 이들의 월급은 1만위안(약 175만원)이 채 되지 않지만 한 끼 식사값은 1만위안이 넘는 경우가 많다. 한 장에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에 이른다는 사교클럽 회원권을 가진 공무원들도 적지 않다. 당기율검사위원회가 지난 5월 감찰계통에서 일하는 모든 공직자들에게 “선물로 받은 회원카드를 돌려줘라”고 지시한 것도 그동안 공직사회에 회원카드 상납이 얼마나 만연해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최근 베이징에서는 촌위원회의 부주임 관리가 3억원을 들여 아들의 결혼식을 치렀다가 파면됐다. 지방 국장급인 한 관리는 최고 7000만원인 명품시계를 11개나 차고 다니다가 부정축재혐의로 쇠고랑을 찼다. 비리혐의로 파면된 고위 공직자들의 70% 이상이 첩을 두고 돈을 펑펑 써왔다. 돈 많은 공직자들은 부인과 자식은 해외로 보내고 재산도 빼돌린다. 당기율검사위에 따르면 소위 나관(裸官·벌거벗은 관리)으로 불리는 이들이 무려 118만명에 달한다. 이들이 2000년 이후 10년간 해외로 빼돌린 돈이 2조7000억달러에 달한다는 통계도 있다. 후진타오 전 주석이 시 주석에게 권좌를 물려주면서 “부패를 청산하지 않으면 당도 나라도 다 망한다”고 개탄한 것도 이런 이유다.

◆국가의 명운이 달린 정치투쟁

시 주석은 지난해 말 총서기에 취임한 것을 계기로 관료·형식·향락주의와 사치풍조를 뜻하는 ‘사풍(四風)’ 척결을 강조하며 강력한 반부패 정책을 펴왔다. 그는 고위 공직자들의 레드카펫, 청중 동원, 교통 통제 등을 금지하는 8항 규정을 통과시켜 신선한 충격을 줬다. 인민해방군에 대해서는 마오타이 등 고급 백주(白酒)를 마시지 못하도록 하고 사치성 호화공연도 금지시켰다. 리커창 총리는 공무원들의 소위 삼공경비(해외출장비, 접대비, 차량구매 및 유지비)를 줄이도록 하고 내역 공개도

진키로 했다. 사정관련 공무원들은 모든 회원카드를 폐기해야 했다. 최근에는 공무원의 공기업 임원 겸직을 한 개로 제한하고 퇴직 후에는 3년간 근무지역의 공기업에 취업을 금지시키는 조치도 나왔다.

당기율위원회는 전면에 나서 부패공무원을 색출하고 있다. 최근 10개의 중앙순시조가 산시 지린 안후이 후난 광둥 윈난 등 6개 성과 신화사 국토자원부 상무부 삼협그룹 등 4개 기관 및 공기업에 파견돼 부패혐의를 조사 중이다. 중국의 최고 검찰원에 따르면 올 1~8월 공무원 뇌물수수와 횡령 등의 사건은 2만2617건, 3만938명에 달한다. 청장 및 국장급 이상 고위 관료도 129명이나 연루됐다. 이틀에 한 명꼴로 고위 공무원이 낙마를 한 셈이다. 제일재경일보는 거의 모든 성에서 고위 관원들이 낙마했고 주로 중앙 정부와 전국인민대표회의, 금융관련 국유기업에 부패 관료들이 많았다고 전했다.

◆제도 개혁 없는 부패 척결 한계

중국의 반부패에 대한 최대 관심은 시 주석이 ‘왕호랑이’까지 잡느냐와 공직자 재산공개 등 제도적인 예방책을 마련할 수 있느냐에 모아지고 있다.

현재 궁지에 몰린 왕호랑이는 후진타오 정권에서 정치국 상무위원을 지낸 저우융캉 정법위 서기다. 그는 국유석유회사를 통해 성장한 정치세력인 석유방 대부로 보시라이 전 충칭시 서기의 정치적 후원자 역할을 해왔다. 그는 석유기업들로부터 수천억원의 재산을 모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미 시진핑 정부는 그의 양대 세력기반인 쓰촨방(저우융캉이 쓰촨성 서기 시절 그를 따르던 인맥)과 석유방(석유회사를 기반으로 성장한 정치인들) 인물들을 잡아들여 저우융캉의 목을 죄고 있다. 지난해 말과 올해 초에 리춘청 전 쓰촨성 당 부서기와 궈융샹 전 쓰촨성 부성장 등 쓰촨방 인물 20여명이 조사를 받으면서 저우융캉에 대한 사법처리설이 흘러나왔다. 전문가들은 시진핑 정부가 반부패 작업을 통해 정적들을 제거하고 페트로차이나 등 국유기업 개혁의 물꼬를 트는 일석이조 효과를 노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부패문제에 관한 한 현 집권세력 역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과감한 제도적 개혁이 이뤄지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이미 서방 언론들은 서민 총리라던 원자바오 전 총리 일가가 수천억원대 재산을 보유하고 있고 시 주석 가족들도 부동산 재벌이라는 사실을 폭로했다. 최근에는 전력산업을 장악하고 있는 리펑 전 총리 딸이 거액의 뇌물을 수수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베이징=김태완 특파원 tw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