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김우중의 시련] 가족·측근이름 은닉재산 환수 vs 3者 재산 판결없이 추징 위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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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18조 환수 위한 '김우중 추징법'
"수출대금 '불법적'으로 부실메우기 동원"
"개인적 착복 없었고 '징벌적'차원 부과"
"중대한 공익 사안…소급 적용 가능"
"헌법이 정한 형벌 불소급 원칙 위배"
"수출대금 '불법적'으로 부실메우기 동원"
"개인적 착복 없었고 '징벌적'차원 부과"
"중대한 공익 사안…소급 적용 가능"
"헌법이 정한 형벌 불소급 원칙 위배"
1999년 11월, 대우그룹은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에 들어가며 패망했다. ‘단군 이래 최대 경제사고’라고 할 정도로 국가 경제에 미친 파장은 컸다. 대우그룹은 공중분해됐고 은행 등 금융회사의 부실이 눈덩이처럼 커져 30조원의 공적자금이 투입됐다.
파장이 워낙 컸기에 대우 임직원에 대한 처벌 강도는 높았다. 법원은 2006년 11월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김우중 전 회장(사진)에게 징역 8년6개월에 추징금 17조9253억원을 선고했다. 31명의 옛 대우 임직원에 대해서도 징역형과 추징금 연대 납부 책임을 부과했다.
그로부터 7년이 지난 올해, 법무부는 17조9253억원의 대우 미납 추징금을 환수하기 위해 관련법 개정 작업에 들어갔다. 이른바 ‘김우중 추징법’을 만들어 김 전 회장이 가족이나 측근 명의로 숨겨둔 재산을 찾아 환수하겠다는 것이다. 김우중 추징법은 ‘사회 정의’를 실현하는 수단일까, 아니면 무리한 법 집행일까. 엇갈린 주장과 평가가 나온다.
◆쟁점1:대우 추징금의 실체?
형사소송법과 범죄 수익 은닉 규제·처벌법은 범죄 수익 환수와 관련해 몰수와 추징 두 제도를 두고 있다. 몰수는 범죄 행위를 통해 얻은 재산을 환수하는 것이다. 추징은 불법 취득 재산을 몰수할 수 없을 때 범죄와 직접 관련은 없지만 이에 상응하는 재산을 환수하는 규정이다. 이때 몰수와 추징의 대상은 범죄자가 불법 행위로 취득한 재산이다.
김우중 추징법에 대한 논란은 여기서 비롯된다. 전두환 추징법의 경우 전두환 전 대통령이 불법으로 취득한 재산이 존재하고, 그 재산이 아들들에게 흘러들어간 정황이 검찰 수사 과정에서 파악됐다.
반면 김 전 회장에 대한 추징금은 성격이 다르다. 2006년 11월 서울고법의 판결을 보면, 재판부는 추징금을 부과하면서 김 전 회장이 계열사 부실을 메우기 위해 해외 수출대금을 국내에 입금하지 않고, 해외 현지법인의 차입금을 당국에 신고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비밀 해외자금 관리 총괄기구인 ‘영국 금융센터(BFC)’를 통해 이런 방식으로 17조9253억원의 해외법인 차입금, 수출대금이 불법으로 부실 메우기에 동원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추징금에 해당하는 재산을 개인적으로 횡령하거나 착복하지 않았다는 게 김 전 회장과 대우 임직원들의 주장이다. 당시 해외법인의 차입금과 수출대금은 모두 기존 차입금 상환에 썼지 개별적으로 숨기지는 않았다는 것. 이런 주장의 근거는 2005년 4월 대법원 판결이다. 당시 대법원은 장병주 전 (주)대우 사장 등에 대한 판결문에서 “도피 재산이 피고인들이 아닌 회사 소유라거나 피고인들이 이를 갖거나 이득을 취하지 않았더라도 소위 징벌적 성격의 처분으로 추징해야 한다”고 했다. 장 전 사장은 당시 징역 3년(집행유예 5년)과 함께 3조7127억원의 추징금을 부과받았다. 바꿔 말하면 개인적으로 취득한 재산은 없지만 법 위반에 따른 징벌적 차원에서 추징금을 부과한다는 의미다.
박창욱 대우세계경영연구회 사무국장은 “개인이 착복한 재산이 없는데도 전두환 추징법과 같은 잣대를 들이대는 건 부당하다”고 말했다. 또 “대우에 투입된 공적자금이 30조원이라지만 지금까지 회수된 돈이 이보다 8000억원가량이나 많고 옛 대우 계열사들은 대부분 정상적으로 살아남아 국가 경제에 기여하고 있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쟁점2:위헌 논란 없나?
추징금의 실체와는 별개로 법학계에선 위헌 시비가 불거지고 있다. 형법 제48조 등에 따르면 몰수와 추징은 법원이 확정 판결을 통해 명시한 불법 취득 이득 및 재산에 대해 집행할 수 있다. 특히 추징은 몰수와 달리 확정판결 이후 범죄와 연루된 재산으로 밝혀지더라도 별도 판결을 거쳐야 가능하다는 게 대체적인 해석이다.
그런데 법무부 개정안은 확정판결 이후에라도 범죄와 연관된 재산을 제삼자가 취득했을 경우 별도 법원 판결 없이도 추징할 수 있게 허용한다. 예를 들어 A씨가 회사 자산을 횡령해 B씨에게 팔았다고 가정하자. A씨가 법원에서 확정판결을 받을 때까지 B씨가 산 자산이 횡령된 것인지를 검찰이 미처 파악하지 못했더라도 뒤늦게 이 사실을 알았다면 B씨 소유 자산을 강제로 추징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 규정은 김 전 회장 등 대우 관련 사건뿐 아니라 모든 일반 범죄에 적용될 가능성이 있다. 또한 추징 과정에서 검찰에 무소불위의 권한을 부여한다. 의심 가는 제삼자에게 검찰 출석이나 서류 제출을 요구할 수 있고 금융거래 정보 요청과 압수·수색도 할 수 있게 허용한다.
김우중 추징법 자체가 모순이란 지적도 나온다. 이 법은 ‘제삼자가 그 정황을 알면서 취득한 범죄 수익이나 여기서 유래한 재산’을 추징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법률상 범죄를 통해 직·간접적으로 얻은 재산은 몰수의 대상이지 추징 대상은 아니라는 게 법조계 지적이다.
홍완식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제삼자 입장에선 자신이 얻은 재산이 범죄로 인한 불법 취득 재산인지를 파악하기 어렵다”며 “더구나 법원 판결도 없이 제삼자의 재산을 추징하는 건 헌법이 정한 형벌 불소급 원칙에 위배된다”고 지적했다. 홍 교수는 “법은 정의와 안정성을 동시에 추구해야 하는데, 김우중 추징법은 정의에 지나치게 치중한 나머지 안정성을 해칠 우려가 크다”고 덧붙였다.
‘위헌이 아니다’는 측에서도 일부 논란 가능성을 인정한다. 장용근 홍익대 법대 교수와 선종문 서울지방변호사회 부회장은 “중대한 공익을 위해서라면 김우중 추징법처럼 형벌을 소급해 적용하는 것도 가능하다”면서도 “다만 법원 판결 없이 제삼자 재산을 추징할 수 있게 허용하는 건 재산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태명/정소람/배석준 기자 chihiro@hankyung.com
파장이 워낙 컸기에 대우 임직원에 대한 처벌 강도는 높았다. 법원은 2006년 11월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김우중 전 회장(사진)에게 징역 8년6개월에 추징금 17조9253억원을 선고했다. 31명의 옛 대우 임직원에 대해서도 징역형과 추징금 연대 납부 책임을 부과했다.
그로부터 7년이 지난 올해, 법무부는 17조9253억원의 대우 미납 추징금을 환수하기 위해 관련법 개정 작업에 들어갔다. 이른바 ‘김우중 추징법’을 만들어 김 전 회장이 가족이나 측근 명의로 숨겨둔 재산을 찾아 환수하겠다는 것이다. 김우중 추징법은 ‘사회 정의’를 실현하는 수단일까, 아니면 무리한 법 집행일까. 엇갈린 주장과 평가가 나온다.
◆쟁점1:대우 추징금의 실체?
형사소송법과 범죄 수익 은닉 규제·처벌법은 범죄 수익 환수와 관련해 몰수와 추징 두 제도를 두고 있다. 몰수는 범죄 행위를 통해 얻은 재산을 환수하는 것이다. 추징은 불법 취득 재산을 몰수할 수 없을 때 범죄와 직접 관련은 없지만 이에 상응하는 재산을 환수하는 규정이다. 이때 몰수와 추징의 대상은 범죄자가 불법 행위로 취득한 재산이다.
김우중 추징법에 대한 논란은 여기서 비롯된다. 전두환 추징법의 경우 전두환 전 대통령이 불법으로 취득한 재산이 존재하고, 그 재산이 아들들에게 흘러들어간 정황이 검찰 수사 과정에서 파악됐다.
반면 김 전 회장에 대한 추징금은 성격이 다르다. 2006년 11월 서울고법의 판결을 보면, 재판부는 추징금을 부과하면서 김 전 회장이 계열사 부실을 메우기 위해 해외 수출대금을 국내에 입금하지 않고, 해외 현지법인의 차입금을 당국에 신고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비밀 해외자금 관리 총괄기구인 ‘영국 금융센터(BFC)’를 통해 이런 방식으로 17조9253억원의 해외법인 차입금, 수출대금이 불법으로 부실 메우기에 동원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추징금에 해당하는 재산을 개인적으로 횡령하거나 착복하지 않았다는 게 김 전 회장과 대우 임직원들의 주장이다. 당시 해외법인의 차입금과 수출대금은 모두 기존 차입금 상환에 썼지 개별적으로 숨기지는 않았다는 것. 이런 주장의 근거는 2005년 4월 대법원 판결이다. 당시 대법원은 장병주 전 (주)대우 사장 등에 대한 판결문에서 “도피 재산이 피고인들이 아닌 회사 소유라거나 피고인들이 이를 갖거나 이득을 취하지 않았더라도 소위 징벌적 성격의 처분으로 추징해야 한다”고 했다. 장 전 사장은 당시 징역 3년(집행유예 5년)과 함께 3조7127억원의 추징금을 부과받았다. 바꿔 말하면 개인적으로 취득한 재산은 없지만 법 위반에 따른 징벌적 차원에서 추징금을 부과한다는 의미다.
박창욱 대우세계경영연구회 사무국장은 “개인이 착복한 재산이 없는데도 전두환 추징법과 같은 잣대를 들이대는 건 부당하다”고 말했다. 또 “대우에 투입된 공적자금이 30조원이라지만 지금까지 회수된 돈이 이보다 8000억원가량이나 많고 옛 대우 계열사들은 대부분 정상적으로 살아남아 국가 경제에 기여하고 있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쟁점2:위헌 논란 없나?
추징금의 실체와는 별개로 법학계에선 위헌 시비가 불거지고 있다. 형법 제48조 등에 따르면 몰수와 추징은 법원이 확정 판결을 통해 명시한 불법 취득 이득 및 재산에 대해 집행할 수 있다. 특히 추징은 몰수와 달리 확정판결 이후 범죄와 연루된 재산으로 밝혀지더라도 별도 판결을 거쳐야 가능하다는 게 대체적인 해석이다.
그런데 법무부 개정안은 확정판결 이후에라도 범죄와 연관된 재산을 제삼자가 취득했을 경우 별도 법원 판결 없이도 추징할 수 있게 허용한다. 예를 들어 A씨가 회사 자산을 횡령해 B씨에게 팔았다고 가정하자. A씨가 법원에서 확정판결을 받을 때까지 B씨가 산 자산이 횡령된 것인지를 검찰이 미처 파악하지 못했더라도 뒤늦게 이 사실을 알았다면 B씨 소유 자산을 강제로 추징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 규정은 김 전 회장 등 대우 관련 사건뿐 아니라 모든 일반 범죄에 적용될 가능성이 있다. 또한 추징 과정에서 검찰에 무소불위의 권한을 부여한다. 의심 가는 제삼자에게 검찰 출석이나 서류 제출을 요구할 수 있고 금융거래 정보 요청과 압수·수색도 할 수 있게 허용한다.
김우중 추징법 자체가 모순이란 지적도 나온다. 이 법은 ‘제삼자가 그 정황을 알면서 취득한 범죄 수익이나 여기서 유래한 재산’을 추징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법률상 범죄를 통해 직·간접적으로 얻은 재산은 몰수의 대상이지 추징 대상은 아니라는 게 법조계 지적이다.
홍완식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제삼자 입장에선 자신이 얻은 재산이 범죄로 인한 불법 취득 재산인지를 파악하기 어렵다”며 “더구나 법원 판결도 없이 제삼자의 재산을 추징하는 건 헌법이 정한 형벌 불소급 원칙에 위배된다”고 지적했다. 홍 교수는 “법은 정의와 안정성을 동시에 추구해야 하는데, 김우중 추징법은 정의에 지나치게 치중한 나머지 안정성을 해칠 우려가 크다”고 덧붙였다.
‘위헌이 아니다’는 측에서도 일부 논란 가능성을 인정한다. 장용근 홍익대 법대 교수와 선종문 서울지방변호사회 부회장은 “중대한 공익을 위해서라면 김우중 추징법처럼 형벌을 소급해 적용하는 것도 가능하다”면서도 “다만 법원 판결 없이 제삼자 재산을 추징할 수 있게 허용하는 건 재산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태명/정소람/배석준 기자 chihi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