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창욱 교수가 만든 애플리케이션(앱) ‘서울대 전립선암 계산기’의 첫 화면. 정 교수는 이 앱이 ‘의료기기에 해당한다’는 식약처의 유권해석을 받고 앱 배포를 중단했다. 홍선표 기자
정창욱 교수가 만든 애플리케이션(앱) ‘서울대 전립선암 계산기’의 첫 화면. 정 교수는 이 앱이 ‘의료기기에 해당한다’는 식약처의 유권해석을 받고 앱 배포를 중단했다. 홍선표 기자
“의료용 애플리케이션(앱·응용프로그램)을 의료기기로 분류하고 무료 보급을 중단시켰으면 뚜렷한 가이드라인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3일 서울대병원 연구실에서 만난 정창욱 의대 비뇨기과 교수의 표정에는 답답함이 묻어났다. 4년간의 연구 성과를 토대로 지난 4월 만들어 무료 보급하던 스마트폰 앱 ‘서울대 전립선암 계산기’를 최근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의료기기로 분류, 보급을 중단시켰기 때문이다. 이 앱은 2000년대 서울대병원과 계열 병원에서 치료받은 전립선암 환자 5000여명의 데이터를 토대로 나이와 전립선 크기, 특이 항원 수치 등을 입력하면 암 발생 확률을 계산해 준다. 그동안 비뇨기과 전문의 등 수백명이 내려받았다.

정 교수는 “의료기기로 분류되면 의료기기 제조업체만 만들 수 있어 개인이나 병원의 의료용 앱 제작은 불가능하다”며 “흉부외과에서도 폐암 발생 확률을 알려주는 앱을 만들려다 최근 취소했다”고 전했다.

◆‘뛰는’ 기술에 ‘기는’ 제도

의료 기술과 모바일 기기를 결합한 ‘모바일 헬스케어’가 차세대 성장 동력으로 떠오르고 있지만 관련 법규는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법규가 시급하게 보완되지 않으면 국내 의료용 앱 시장을 내줄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현행 의료기기법은 의료기기를 질병을 진단·치료·경감·처치 또는 예방할 목적으로 사용되는 제품으로 규정하고 있다. 의료용 앱도 질병 진단과 치료에 쓰이면 의료기기로 분류된다는 것이 식약처 유권해석이다.

유희상 식약처 의료기기정책과 사무관은 “수천명의 임상 데이터를 사용한 앱이라고 해서 결과가 정확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며 “앱이 신뢰할 만한 결과를 보여주는지 판단하기 위해선 의료기기 등록 절차를 통해 국가기관이 평가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의료계는 개발이 간편하고, 누구나 업데이트와 다운로드가 가능해 이용이 쉬운 스마트폰 앱의 특성을 반영해 관련 가이드라인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지난 9월 ‘의료용 모바일 앱 최종 가이드라인’을 발표해 의료용 앱 개발자들에게 명확한 지침을 제시했다.

◆이어지는 의료용 앱 개발 포기

정 교수는 보급이 중단된 ‘전립선암 계산기’ 앱에 대한 문의가 이어지자 의료기기 제작업체의 도움을 받는 방법을 찾고 있다. 의료기기 제작업체 이름으로 앱을 출시하고 이 앱에 해당 회사의 광고를 싣는 방식이다. 정 교수는 “개인이 회사를 설립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병원이 수익성 없는 사업을 위해 회사를 설립하는 것도 기대할 수 없다”며 “앱을 개발한 후 네댓 팀이 어떻게 개발했는지 물어왔지만 전립선암 계산기 사례를 듣고 아예 개발을 포기했다”고 털어놨다.

의료정보 소프트웨어 개발 업체인 네오젠소프트의 오채수 대표는 “앱을 주문한 업체에서 의료기기로 등록해야 되는지를 물어오면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 식약처에 문의하지 말라’고 권유하는 게 현실”이라며 “명확한 기준이 마련돼야 보다 많은 의사와 병원들이 앱 개발에 나설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식약처가 유명한 의료용 앱을 선별적으로 단속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유사 의료기기 적발 업무를 맡은 식약처 직원은 8명이다. 신문, 방송, 인터넷, 광고 등에서 이름이 알려진 제품 위주로 단속할 수밖에 없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구글 플레이마켓과 앱스토어 등에는 ‘전립선암 계산기’와 비슷한 앱이 여러 개 있다.

홍선표 기자 ricke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