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수학능력시험이 코앞에 다가온 지난 주말, 전국의 사찰은 고3 자녀를 둔 학부모들로 북새통이었다. 성당과 교회 등 기독교 성지도 수험생 가족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자식 잘되기를 바라는 부모 마음이야 때와 장소를 가리는 게 아니지만, 시험을 며칠 앞둔 시점에는 조바심과 간절함이 더할 수밖에 없다.

‘입시 기도발’ 잘 받기로 소문난 대구 팔공산 갓바위 부근은 그야말로 인산인해였다. 이곳은 부처 머리에 쓴 갓 모양이 학사모와 비슷해서 자녀 합격을 기원하는 부모들이 가장 많이 찾는다. 연간 방문객 300여만명 중 대부분이 10월과 11월에 몰려 주말 이틀 동안만 20만명이 넘는다. 교실 한 칸 남짓한 뜰에 1000여명이 콩나물시루처럼 들어차는데, 갓바위를 붙들고 기도하거나 동전을 붙이는 사람도 흔히 볼 수 있다.

전국 3대 기도처로 유명한 남해 금산 보리암, 양양 낙산사 홍련암, 강화 낙가산 보문사도 학부모들의 기도 소리가 끊이지 않는 ‘입시기도 성지’다. 특히 금산 보리암은 이성계가 지극정성으로 염원한 뒤 조선을 개국했다고 해서 ‘통 큰 기도’의 현장으로 꼽힌다. 설악산 봉정암은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절이라는 이유로 인기다. 여수 향일암과 청도 운문사 사리암, 서울 강남 봉은사에도 인파가 넘친다.

조선시대 선비들이 과거 보러 가던 문경새재의 장원급제길, 신라 화랑들이 자주 찾았다는 경북 울진의 월송정, 최근 산청세계전통의약엑스포의 기 체험장소로 화제를 모은 거북 모양의 귀감석도 마찬가지다. 얼마 전 급부상한 강릉 오죽헌은 5만원 지폐 속의 신사임당이 5000원 지폐의 율곡 이이를 9차례나 장원급제하도록 키운 곳이라고 해서 많이 찾는다.

천주교의 서울 합정동 절두산성지와 대구 성모당, 개신교의 주요 교회에도 ‘수능 기도’와 찬양이 울려퍼진다. 어제는 서울 노량진역 육교에 붙은 수험생 응원 문구가 종일 화제였다. 대학생 5명이 마포대교 ‘생명의 다리’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육교를 ‘응원의 다리’로 변신시킨 것이다. LG전자 등 기업들도 임직원 자녀들에게 격려카드와 선물을 전했다.

레이디스 코드 멤버들은 자신들의 곡을 개사한 수능 응원가까지 내놨다. ‘오늘이 바로 수능 대박일이야/ 위풍당당 머리부터 발끝까지/ 아무런 걱정말고/ 힘을 내서 수능대박/ 당당하게 나를 믿고….’ 수험생으로서야 힘들고 지쳤겠지만 이 정도 대접받는 것도 요 얼마간이다. 이 계절이면 나라 안에서 가장 큰 대접받는 사람이 바로 이들이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