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만난 한 대기업 사장은 국정감사 증인으로 불려나간 후일담을 들려줬다. 그는 점심도 일찍 먹고 낮 12시 국회의사당에 도착해 국감이 끝난 밤 10시까지 10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처음엔 무사히 지나가게 해달라고 기도했는데, 10시간 동안 가만히 있으니 나중엔 질문 하나라도 해줬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증인들 대부분이 나처럼 10시간 동안 묵언수행만 하고 돌아갔다”는 말도 했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빚어졌는지를 해당 상임위원회에서 취재하려고 해도 깔끔하게 궁금증이 해소되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시민단체인 바른사회시민회의(바른사회)의 분석 자료집을 접했다.
이 단체가 발행한 2010년부터 2012년까지의 ‘국정감사 통계자료집’(자료집)에 따르면 일단 해당 증인을 누가 불렀는지 알 수 없다. 2010년엔 국감을 하는 15개 상임위원회 중 8곳이 어느 국회의원이 누구를 무슨 이유로 증인으로 세웠는지 공개했지만, 지난해부터는 기획재정위원회 외에는 일절 공개하지 않고 있다. 의원들이 ‘묻지마 증인 채택’을 할 수 있었던 핵심 이유다.
불러만 놓고 한마디도 못한 증인 수도 감춰졌다. 지난해 자료집에선 증인 심문을 못한 사례가 1건으로 기재됐지만, 사실은 달랐다. 바른사회가 각 상임위 기록을 들춰봤더니 2개 상임위에서만 10건이 나왔다. 국감이 지연된 횟수도 실제와 달랐다. 지난해 자료집에선 한 시간 이상 국감이 지연된 횟수가 8회였지만, 여기엔 작년 10월 정무위원회와 행정안전위원회에서 중단된 사례가 빠졌다.
공식 기록과 비공식 기록이 다른 이유는 뭘까. 자료집을 낸 국회사무처 의사국 관계자는 “상임위에서 보내온 기록대로 자료집을 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한 상임위 관계자는 “의사국이 보낸 양식에 맞춰 있는 그대로 적어 보냈다”고 해명했다.
이런 핑퐁게임에 올해만 사상 최대인 193명의 기업인이 국회로 불려나갔다. 내년엔 얼마나 많은 기업인들이 증언대에 서서 한마디도 못한 채 돌아가야 할지 궁금하다. 심각한 문제점이 드러났는데도 의원들은 개선책 마련에 인색하다.
정인설 산업부 기자 surisuri@hankyung.com